본문 바로가기

[사설] 중국발 감염위기, 정부는 대중외교 정비하라

중앙선데이 2020.02.01 00:20 671호 30면 지면보기
중국 힘이 세긴 센가 보다. 세계보건기구(WHO)조차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 앞에 쩔쩔맨다. 확진자가 9600여명, 사망자가 170명에 육박하고 각국에서 2차 감염자가 속출한 지난달 31일에야 ‘국제공중보건비상사태’를 선언했다. 국제사회로부터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비상사태 선포 요구를 두 차례나 거부하고 달포 넘게 미적댄 끝에 찔끔 발표한 역대급 늑장 조치다. 그러면서도 WHO는 시종일관 중국을 감쌌다. “중국을 불신임하는 게 아니며 그들의 조치를 거듭 칭찬한다. 어떤 대중 무역이나 여행 제한도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중, 정보통제 말고 세계와 협력해야
정부, 이념 대신 현실주의로 대응할 때
위기가 준 역설적 교훈 인정하기를

어쩌다 WHO가 이렇게 됐을까. 2017년 600억 위안(약 10조원)을 WHO에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중국이 이를 무기로 WHO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휴먼 라이트 왓치 등 국제인권단체들은 “중국이 의도적으로 의료 전문가들의 상황 보고를 은폐하고, 모든 영향력을 동원해 국제기구의 의사결정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중국은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가 발생하자 석 달 넘게 이 사실을 숨기고 늑장 대응한 탓에 전 세계에서 8000여명을 감염시키고 774명을 숨지게 했다. 이번에도 질환 발생 19일이 지나서야 확진자 숫자를 공개하고, 그러면서도 사람 간 전염은 인정하지 않는 등 정보 은폐와 늑장 대응을 되풀이해 중국 이외 21개 국가에 확진자가 퍼지는 최악의 상황을 초래했다. 미국과 함께 세계 2대 강국이라는 위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중국은 이런 책임을 확실히 인정하고, 관련 정보를 국제기구와 투명하게 공유·협력하는 한편 외국인들의 모국 귀환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엑소더스’로 비치기 싫다고 한국을 포함한 이웃 나라들의 교민 수송에 제동을 거는 행태는 중국을 ‘옹졸하고 오만한 패권주의국’으로 추락시킬 뿐이다.
 
신종코로나 사태는 부실하기 짝이 없는 정부의 대중 외교 민낯도 드러냈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3년 가까이 “지나치다”는 비난까지 감수해가며 친중 외교로 일관해왔다. 이번에도 ‘우한 폐렴’ 대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표기해 달라고 언론에 협조를 구할 만큼 중국에 신경을 썼다. 그런 정부에게 중국이 돌려준 건 교민 수송 전세기 출발을 느닷없이 지연시키고, 비행기도 한 대로 제한한 푸대접이었다. 반면 앙숙이었던 일본엔 전세기 운항을 1순위로 허용하며 예우를 했다. 외교는 냉혹한 현실과 철저한 힘의 논리만으로 움직이는 무대임을 무시하고, 막연한 짝사랑으로 중국 비위 맞추기에 급급한 ‘이념 외교’의 허상이 드러난 상징적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뿐 아니다. 우한에서 교민 수송을 총지휘해야 할 총영사가 석 달째 공석이다. 전임 총영사가 언행 논란으로 지난해 11월 퇴직했는데 지금까지 후임을 지명하지 않아 전장에서 국민을 보호할 장수가 없는 상황을 자초했다. 그런데도 외교부는 오는 3~4월에야 후임 총영사를 임명할 예정이라니 어이가 없다.  
 
대중 외교 사령탑인 주중 대사도 심각한 문제다. 중국은 베이징 고위층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중국통이 아니면 뚫기 어려운 ‘죽의 장막’ 이다. 하지만 정부는 친문 진영의 정치인 노영민(현 대통령 비서실장)에 이어 미국 박사 출신 경영학자로 외교에 문외한인 장하성을 주중 대사로 보냈다. 신종코로나 사태에서 장 대사의 존재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건 어찌 보면 예견됐던 일이다. 전문 외교관들을 ‘적폐’로 몰아 숙청하고 주중 대사 같은 요직을 ‘코드 인사’로 일관했으니 정말 외교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제대로 뛰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것 아닌가. 정부는 이제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이념·코드 외교를 버리고 냉정한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실용외교 노선을 정립해야 한다. 그것이 신종코로나 사태가 우리 외교에 주는 엄중한 경고다.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