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간이 딱 맞네, 어떻게 했어?…밥상 차린 그가 꼭 듣고 싶은 말

중앙일보 2020.01.31 13:00

[더,오래] 박혜은의 님과 남 (67)

 
 
 
명절 연휴 친정을 들렀습니다. 마침 고모님 내외도 들리셔서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함께하게 되었죠. 이날도 예외없이 친정엄마의 음식 자체평가가 시작되었습니다.
 
"갈비가 너무 싱거운 것 같아 육수를 더 넣었더니 되려 짠 것 같은데 간이 맞을지 모르겠네.”
"잡채에 이것저것 평소랑 다른 것도 넣어봤는데 어떨런지 모르겠어.”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어머니는 처녀 시절 일찌감치 조리사 자격증도 따시고 요리를 가르친 적도 있던터라 사실 무슨 재료를 가지고도 뚝딱 요리를 완성해 내십니다. 그런 어머니께선 결혼 후 몇십년간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밥상을 차리셨는데도 늘 식사를 위해 가족이 둘러 앉을때면 스스로 음식품평을 하곤 하시죠. 오늘은 내가 먹어도 너무 맛있게 되었다고 말씀하기도 하고, 때로는 이젠 입맛도 변했는지 간을 못 맞추겠다고도 하십니다. 그리고 대게는 그 주요 대상이 아버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머니의 혼잣말 같기도 하지만 정성껏 맛있게 만든 음식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을 듣고도 싶은 것이 또 음식을 만든 사람의 마음이겠지요.
 
이제는 한번쯤 먼저 맛있다고 해주실만도 한데, 동시대 아버지들이 대게 그러시겠지만 특히나 저희 아버지는 표현이 잘 없는 분이십니다. 기껏해야 맛있네 정도의 표현에 그치고 말죠. 그것도 겉으로 보기에는 마지못해 하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정말 그러진 않으시단 걸 압니다. 좋은 걸 뭐 때마다 굳이 표현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시는 거겠지요.
 
심리학에서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야 말로 인간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심리적 욕구라 합니다.정성껏 맛있게 만든 음식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을 듣고도 싶은 것이 그런 마음이겠죠. [사진 Pixabay]

심리학에서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야 말로 인간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심리적 욕구라 합니다.정성껏 맛있게 만든 음식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을 듣고도 싶은 것이 그런 마음이겠죠. [사진 Pixabay]

 
그런데 다음날, 집으로 돌아와 밥을 먹는데 가만히 보니 저 역시 남편에게 같은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어때? 맛있지? 괜찮지? 남편의 동의를 구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새삼 웃음이 납니다.
 
조금 거창하게 말하자면 사람은 누구나 인정욕구를 가지고 있죠. 심리학에서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야 말로 인간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심리적 욕구라 합니다. 인정을 통해 사람은 생존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것을 확신하며, 자신이 가치있는 사람이라는 믿음을 통해 삶의 목표까지 생기게 만드는 기제라고 분석합니다.
 
하인즈 코헛(현대정신분석학의 큰 흐름인 자기심리학의 창시자)은 말합니다.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는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며 이를 무시하는 것은 산소의 존재나 필요성을 무시하는 것이다.” 때때로 당신은 충분히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말은 할 수 없는 일도 해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죠.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만 알면서도 구태여 말하지 않게 되는 존재가 특히 부부사이인 듯도 합니다. 볼꼴 안볼꼴 다 보이고 산다 하면서도 정작 표현해야 할 말보다 안해야 할 말들을 더 많이 뱉어내곤 합니다.
 
작년 하반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저 역시 참 재미있게 보았는데요. 드라마에 등장한 모든 배우들이 각자의 역할을 멋지게 소화해 낸 덕분이겠지만 극중 동백이의 아들로 등장한 필구역의 아역배우 김강훈군의 연기는 연기력 쟁쟁한 어른 배우들 사이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우리는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잘 듣기, 경청에 대해 귀가 닳도록 말합니다. 오랜시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 Pixabay]

우리는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잘 듣기, 경청에 대해 귀가 닳도록 말합니다. 오랜시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지만 잘 지켜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진 Pixabay]

 
최근 이 김강훈군의 라디오 공익광고가 귀에 자주 와 닿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사회의 다양한 곳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대화들 뒤에 김강훈 군은 말합니다. "이 대화의 문제는 듣기. 세상 대부분의 문제는 잘 들으면 풀수 있는 문제입니다. 말이 통하는 사회 ‘듣기'에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소통을 이야기하면서 잘 듣기, 경청에 대해 귀가 닳도록 말합니다. 오랜시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겠지만, 알면서도 잘 안지켜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우리는 아내에게 남편에게 듣고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다보면 정작 그 말은 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반대로 남편과 아내는 듣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그 말은 어떤 말인지는 그 사람의 평소 말과 행동을 조금만 찬찬히 들여다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축소판인 가정, 가정 대부분의 문제도 잘 들으면 풀 수 있는 문제입니다.
 
새삼스럽고 쑥쓰럽기도 하겠지만 2020년엔 한 번쯤 이런 대화를 해보는 건 어떨까요? “여보 내가 당신에게 듣고 싶은 말은…”
그리고 그 말에 토를 달지 말고 눈으로 몸으로 가만히 들어주세요.
 
굿커뮤니케이션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박혜은 박혜은 굿 커뮤니케이션 대표 필진

[박혜은의 님과 남] 은퇴 후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낼 집에서 자주 함께할 상대는 누구인가요? 그 상대와의 관계는 지금 안녕하신가요? 가장 가까운 듯하지만, 어느 순간 가장 멀어졌을지 모를 나의 남편, 나의 아내와 관계 향상을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강의와 코칭 현장에서 만난 수많은 고민을 바탕으로, 닿을 듯 닿지 않는 서로의 심리적 거리의 간격을 좁혀봅니다.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