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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우한 탈출 교민 "사람 마주칠까 무서워…공항 검역 3차례"

중앙일보 2020.01.31 05:48
“우한이 아닙니다.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에서 탈출한 거죠. 그에 비하면 격리는 오히려 안전한 거 아닌가요.”

 

중국 우한에 교환학생으로 온 이태영(25)씨는 31일 우한을 벗어나는 소회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공항당국이 교민들에 대한 엄격한 검역을 실시하고 있다. [이태영 제공]

공항당국이 교민들에 대한 엄격한 검역을 실시하고 있다. [이태영 제공]

31일 오전 5시 3분(현지시간, 한국시간 6시 3분)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汉)공항에서 1차 전세기 KE 9883편이 이륙했다. 당초 계획됐던 오후 3시보다 15시간 지연된 출발이었다. 1차 전세기에 탑승한 교민 수는 367명. 고열로 교민 1명이 검역을 통과하지 못했다. 

 
본지는 우한에 거주했던 유학생 등 3명을 통해 9시간에 걸친 전세기 탑승 과정을 취재했다. 확진자 수 2261명, 사망자 수 162명(31일 0시 기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우한 폐렴) 최대 피해지역인 우한으로부터의 탈출기다.  
 

집결지로 가는 길…"사람과 마주칠까 무서웠다"

공항으로 가는 교민 버스를 보조해주는 중국 직원이 방호복을 입고 있다. [정태일 후베이성 한인회 사무국장 제공]

공항으로 가는 교민 버스를 보조해주는 중국 직원이 방호복을 입고 있다. [정태일 후베이성 한인회 사무국장 제공]

 
30일 오후 7시. 우한에서 대학원을 다니고 있는 전후상(33)씨는 집결지인 우한총영사관 앞 한커우(汉口)로 향했다. 우한 봉쇄가 시작된 지난 23일 이후 집밖을 나선 건 처음이다. 전씨는 집에 돌아간다는 안도감보다 걱정이 앞섰다고 한다.  
 
 
문을 나섰을 때 기분은?
= 걱정이 많이 됐다. 집에 가는 것도 좋지만 혹시라도 감염되면 안 되니까. 집결지로 가는 길에 큰 병원이 하나 있다. 그 병원 앞을 지나치지 않으려고 한참을 돌아갔다. 혹시 그 병원에서 나오는 환자들과 마주칠까봐.

 
공항 가는 것도 쉽지 않다.
= N95(미세먼지 95% 방지) 마스크를 쓰고 싶었는데 못 구해서 그냥 일반 마스크를 썼다. 우한에서 좋은 마스크 구하기가 어렵다.  
 
오는 길에 마주친 사람은 봤나?
= 사실 사람은 한 명도 못 봤다. 길에 나밖에 없더라. 우한을 빠져 나오면서 한국 사람만 봤고 우한 사람은 못 본 것 같다.  
 
 낮에도 황량한 우한시는 밤이 되자 말그대로 ‘유령도시’로 변했다. 거리엔 사람도 차도 없었고 가로등과 가게의 간판불마저 꺼져 도시 전체가 어두웠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통로 쪽엔 아무도 앉지 않았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 승객들이 양쪽으로 떨어져 앉아 있다. 혹시 모를 감염을 막기 위해서다. [정태일 후베이성 한인회 사무국장 제공]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 승객들이 양쪽으로 떨어져 앉아 있다. 혹시 모를 감염을 막기 위해서다. [정태일 후베이성 한인회 사무국장 제공]

 
집결지는 우한시 4곳.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는 46인승 총 15대가 동원됐다. 시내에 가까운 광구(光谷)에 82명(버스 3대), 총영사관이 있는 한커우 30명(1대), 장한대 45명(2대), 우한대 23명(1대)였다.  
 
집결시간 오후 8시가 가까워지자 교민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교민들 중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분위기는 밝지 않았다. 말하는 사람도 없었다.  
 
눈에 띄는 건 버스 탑승을 돕는 중국인이었다. 교민들의 짐을 실어주는 그도 병원에서 보는 방호복을 입고 있었다.  
 
2차 전세기로 들어가는 홍윤표씨는 이날 광구에서 교민 82명의 인솔을 맡았다. 출발 전날부터 우한총영사관과 협조해 교민들의 신원과 특이사항 파악, 공항까지 이송을 담당했다.  
 
집결지 분위기는 어땠나
= 사람들은 차분했다. 특별히 말을 하는 사람도 없고 지시에 잘 따라줬다

 
버스 좌석수가 사람 수보다 많은데
= 교민들이 옆자리에 붙어 앉지 않게 하기로 처음부터 얘기가 됐다. 버스에 왼쪽 창가, 오른쪽 창가에 앉도록 했다. 서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앉도록 한 거다. 가족끼리는 같이 앉도록 했다. 가족은 집에서 늘 같이 있었기 때문에 괜찮다는 지침이 있었다.

 
제일 신경 쓰인 부분은
= 발열 있는 분이 있나 하는 거였다. 몸이 불편하다고 하는 분이 있어서 긴장했는데 보니까 허리가 아픈 분이었다. 안전하게 공항까지 가는 게 목표였다.

 
버스 밖엔 교민들이 탄 버스 밖에 보이지 않았다. 도로는 어두웠다. 공항까지 걸린 시간은 대략 40분 남짓. 보통 땐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데 차가 없으니 금방이었다.  
 
버스에서 누군가 통화하는 소리가 들리자 다른 교민이 “좀 조용히 가자”고 했다고 한다. 그만큼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우한 공항...“방호복 입은 중국인 2명이 동시에 검역...총 3차례 진행”

 
우한공항에 도착해 우한총영사관의 안내를 받고 있는 교민들[정태일 후베이성 한인회 사무국장 제공]

우한공항에 도착해 우한총영사관의 안내를 받고 있는 교민들[정태일 후베이성 한인회 사무국장 제공]

오후 9시10분. 공항에 버스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짐을 갖고 공항에 들어간 교민들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신체 이상 유무를 적은 서류를 제출하고 확인서를 받는 것이었다. 우한총영사관 명의의 이 확인서가 없으면 항공권도 받을 수 없다. 한국 정부의 1차 검역인 셈이다.  
교민들은 우한 공항에서 신체 이상 유무를 적은 서류를 제출하고 확인서를 받았다. [전후상 제공]

교민들은 우한 공항에서 신체 이상 유무를 적은 서류를 제출하고 확인서를 받았다. [전후상 제공]

 
공항엔 교민 외엔 아무도 없었다.  
 
지루한 대기시간이 이어졌다. 교민들은 이미 지쳐있었다. 발권이 시작된 건 오후 12시가 다 돼서다. 기다리는 동안 우한총영사관에선 음식과 음료를 준비해 나눠줬다. 저녁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수 있는 교민들에 대한 작은 배려였다.  
 
새벽 1시 30분, 중국 당국의 2차 검역이 시작됐다. 이태호씨는 평소보다 배 이상 엄격하게 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검역을 어떻게 하나
= 보통 1명이 하는 걸 오늘은 노란 방호복을 입은 직원 2명이 했다. 일단 몸 전체를 살펴보고 이어서 발열 검사를 했다. 이마에 체온을 재는 방식이었다. 이어서 짐 검사를 하는데 음식 종류는 사소한 것 하나도 전부 다 빼더라. 몸 상태를 물어보는 문진은 없었다. 한 사람에 5분 정도 걸렸다.  
 
평소와 뭐가 달랐나
= 굉장히 꼼꼼하게 체크한다고 느꼈고 뭔가 발견됐을 때 매우 단호하게 행동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우한 폐렴 바이러스가 외부로 나가면 안 되니까. 분위기가 엄중한 것 같다.

 
검역할 때 마스크는?
= 얼굴 확인할 때 잠깐 벗었다. 이후엔 계속 쓰고 있었다. 방호복 입은 직원에 온통 마스크를 쓴 교민들에 기분이 묘했다.
 
검역은 탑승구 앞에서 한 차례 더 이뤄졌다. 총 3차례다. 발열 체크가 다시 진행됐고 검사를 통과한 교민은 N95 마스크를 받았다.
 

2차 전세기, 중국 정부 비행 허가 안해...운항 여부 불투명

 
1차 전세기 안의 모든 승무원들이 방호복을 입고 있다. 교민들은 마스크를 한 상태다. [이태영 제공]

1차 전세기 안의 모든 승무원들이 방호복을 입고 있다. 교민들은 마스크를 한 상태다. [이태영 제공]

전날 8시부터 시작된 7시간 여의 고생 끝에 항공기에 탑승한 건 새벽 3시 30분께다. 정부는 당초 전세기 2대를 운항하기로 했지만 중국 정부가 1대만 비행 허가를 내줬다. 전세기 2대를 계획한 건 버스처럼 교민들을 한 칸씩 떨어뜨려 자리에 앉히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하지만 1대만 운항하게 되면서 교민들은 나란히 앉아 한국으로 향해야 했다. 기내에 탄 승무원들은 전부 방호복을 입고 있었고 안내 방송은 나오지 않았다. 
 
우한에 아직 남은 전세기 신청 교민은 365명.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날 예정된 2차 전세기의 비행 허가를 아직 내주지 않은 상태다. 외교부는 중국 정부와 다시 한번 힘겨루기를 벌여야 한다. 우한 탈출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베이징=박성훈 특파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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