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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현의 시선] ‘꼰대’ 자처한 임종석의 검찰 행차

중앙일보 2020.01.31 00:29 종합 28면 지면보기
박재현 논설위원

박재현 논설위원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업무보고나 국정감사를 위해 검찰청사에 나온 고위 관리가 연상됐다. 조선시대 때 사헌부나 형조에 행차해 일장 훈시를 했던 젊은 도승지의 모습도 떠오르지 않는가. 9년 만에 검찰에 소환된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말이다.
 

피의자 신분 출석 길에 정치 연설
국민 향한 예의·염치 찾기 어려워
훈계조 말 부메랑으로 돌아올 듯

그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가족 사건 이후 자취를 감췄던 검찰청 포토라인에 자진해서 섰다. 문재인 정부의 정치적 거물답게 현직 의원을 비롯한 지지자들이 함께 했다.
 
피의자 신분인 그의 말 속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훈계와 원망이 가득했다. “우리 검찰이 좀 더 반듯하고 단정했으면 한다” “왜 손에서 물이 빠져나가듯이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사라지고 있는지 아프게 돌아보라”
 
고위 공직자를 지낸 사람으로서 국민에 대한 송구함이나 미안함은 전혀 없었다. 예의와 염치를 말하는 건 지나친 기대였던 것 같다. 왜 문재인 정부 실세들은 하나같이 다 이런가. “이유 여하를 떠나 국민들에게 심려를 끼치게 돼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하면 혓바늘이라도 돋는단 말인가.
 
속칭 드루킹 사건의 당사자인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특검 출두 모습이 오버랩된다. 김 지사는 당시 노란색 바람개비를 흔드는 지지자들을 향해 마치 선거 유세를 하듯이 특검에 나왔다. 유감 표명은 물론 없었다. 오히려 “억울하다”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며 사실을 덮으려 했다. 이 정부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던 이 수사로 그는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고 법정구속까지 됐다. 항소심 재판부도 유죄 심증을 밝힌 채 선고를 총선 뒤로 연기했다. “송구스럽다”는 표현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말이라는 엘튼 존의 노랫말이 떠오를 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시키고, 자신의 가치관과 생각을 강요하는게 꼰대”라던 배우 김응수씨의 말이 퍼뜩 생각난다. 영화 타짜에서 ‘곽철용’역으로 뒤늦게 상종가를 치고있는 그는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니 꼭 나이 많은 선생님, 상사만 꼰대인게 아니더라. 젊은 사람 중에도 꼰대가 많더라”고 말했다. 권력에 취해 스스로 꼰대를 자처하고 있는 정치인들도 마찬가지다.
 
울산 사건은 임씨의 주장처럼 검찰이 기획한 것이 아니다. 사건의 팩트는 무시한 채 자신들의 입장과 허상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꼰대 짓이다. 임씨는 지난해 11월 윤 총장이 울산지검에 1년8월간 잠자고 있던 사건을 느닷없이 서울중앙지검으로 끌어올려 기획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이 또한 틀린 말이다.
 
지난해 울산시장 선거를 3개월 앞두고 무리하게 수사에 들어갔던 경찰의 어설픈 언론플레이가 발단이었다. 그리고 지난해 11월 초 경찰청이 “당시 수사를 하게 된 계기는 청와대가 보내준 첩보에서 비롯됐다”고 검찰청에 공문을 보내온 것이다. 수사권 조정을 놓고 검찰을 몰아붙이려던 꼼수가 되려 정권의 발목을 잡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 정부 들어 적폐청산을 명분으로 수백명의 공직자들을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 등의 혐의로 조사하고 사법처리한 마당에 어떻게 이를 묵살할 수 있단 말인가. 윤 총장의 수사팀이 불구속 기소한 13명에 대한 혐의사실을 보면 당시 청와대는 송철호 울산시장을 위한 선거캠프였고, 민정과 정무비서관들은 캠프 참모나 마찬가지인 역할을 했다. 법치의 상징이고 모범이어야 할 권력 최고 핵심부의 낯뜨거운 민낯이다. 보통의 상식을 가진 공직자였으면 자신이 관할했던 조직원들이 사회적 논란의 대상이 됐다는 자체만으로도 도의적 책임을 말했을 것이다.
 
조국 사건 이후 이 정부 꼰대들과 날선 각을 세우고 있는 진중권 전 교수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뜨거운 것은 촛불정신이란 환상이 깨지고 있다는 증거다. “언론플레이로 대중을 선동하지 말라”는 그의 말처럼 이제 시민들은 보여주기식 말의 잔치에 느끼함의 한계를 맛보고 있다.
 
초임 판사 시절 시국사범에 대한 영장을 놓고 나이 많은 경찰서장과 법원장의 간섭이 부당하다며 ‘물러서지 않는 진심’을 얘기했던 법무장관이 꼰대로 변하고 있는 건 세월의 이치로 봐야하나,아니면 정치적 역린으로 해석해야 하나.
 
국민들은 그동안 많은 유망한 정치인들이 과거 부적절한 말 때문에 설화(舌禍)를 입는 것을 경험했다. 임씨의 이날 발언도 두고두고 그를 난처하게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검찰이 기소를 하고 재판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같은 입장일지 지켜볼 일이다.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고 하니깐 남의 지갑을 계속해 열어대고 있는 것이 또 다른 꼰대들이 느끼는 난처함이다.
 
박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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