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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검찰의 기획수사’ 운운하는 임종석의 궤변

중앙일보 2020.01.31 00:15 종합 30면 지면보기
울산시장 선거에 개입한 혐의를 받고 있는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어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검찰은 그제 송철호 울산시장 등 13명을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했으나 임 전 실장은 기소 대상에서 제외했다. 검찰 설명에 의하면, 이는 총선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판단을 유보한 것이지 면죄부를 준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검찰은 송병기 전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업무수첩 확보를 통해 임 전 실장이 송철호 시장 당선을 위해 선거 지원에 나섰고, 전방위적인 하명수사를 지시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유·무죄 여부는 향후 수사와 재판을 통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초대 비서실장으로서 청와대가 조직적 선거개입 의혹 사건에 연루됐고, 자신도 검찰의 포토라인에 서게 된 것만으로도 성찰하고 국민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게 마땅하다. 하지만 임 전 실장은 정반대의 태도를 보여 국민을 또 한번 실망시켰다.
 
사과는커녕 “검찰 스스로 울산에서 1년8개월이나 덮어 뒀던 사건을 지난해 윤석열 총장의 지시로 서울중앙지검으로 이첩할 때 분명한 목적을 갖고 기획됐다고 확신한다”며 오히려 검찰을 성토했다. “수사가 아니라 정치에 가깝다”는 전날 발언보다 비난 수위를 더 높인 것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청와대의 첩보에 의해 관련 사건 수사가 시작됐다’는 경찰의 공문이 사건의 발단이다. 그런데도 그는 검찰의 기획수사로 둔갑시키는 꼼수를 부렸다. 윤석열 검찰을 정치 검찰로 낙인찍어 비난 여론을 희석하고, 검찰 수사를 무력화하려는 악의적인 의도가 아니라면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황당한 궤변이 아닐 수 없다. “언론 플레이로 여론을 조작하고 지지자를 선동하지 말라”(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일갈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임 전 실장은 집권 초 “청와대 캐비닛에서 발견됐다”며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 보고 시점이 조작됐다는 문건을 언론 카메라 앞에서 흔들던 당사자다. 그가 정치 검찰이라고 비난한 윤석열 총장이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관련 수사를 지휘했다. 그때의 검찰과 지금의 검찰이 다른 검찰이란 말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 자가당착이 아닐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검찰 주변에선 다음 달 검찰의 수사팀이 교체되면 임 전 실장에 대한 추가 수사가 어려워질 것이란 말이 나오는 마당이다. 검찰을 겁박하는 것으로 오인될 수 있는 처신은 자신이 몸담았던 정부를 욕되게 할 뿐이다. 임 전 실장은 검찰 흔들기를 당장 중단하고 성실하게 수사에 임하라. 그게 한때 국록을 먹었던 공복으로서 국민에게 사죄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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