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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사업 시큰둥하던 친척들, 이번 설엔 "당구 한판 치자"

중앙일보 2020.01.30 10:00

[더,오래] 이태호의 직장 우물 벗어나기(11)

 

설레는 마음과 함께 다시 설날이 찾아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설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환경에 놓인 위치가 되어버렸다. 행복해지자고 오랜만에 모인 자리에서 결혼이나 취업 진학 등 서로를 아껴서 하는 말이겠지만 듣는 사람들에겐 반드시 좋게 들리는 것은 아닌 게 현실이다.
 
그 중, 잘다니 던 회사를 그만두고 다짜고짜 창업을 시작한 나는, 어르신들의 우려를 가장한 공격 대상 1순위였다. 회사사표를 내고, 창업을 하고 있다고 친척들에게 처음으로 공개 선언한 2년 전의 명절이 쉽게 잊혀 지지가 않는다. 듣는 사람의 가슴을 후벼 파는 가장 싫은 명절 잔소리 1위는 바로 '앞으로 계획이 뭐니?'라는 말이라는데, 모든 친척들이 돌아가면서 이 질문을 나에게 던졌던 걸로 기억한다.
 
“태호, 넌 잘 다니던 그 좋은 회사를 때려 치고 나와서, 고작 한다는 사업이 당구관련된 것이라고?”
“태호, 너 어쩌려고 그런 결정을 내린 거니?, 앞으로 어쩌려고 쯧쯧”
 
안정적인 직장을 나와 사업을 한다는 것 자체에서도 우려감을 보였지만, 무엇보다도 하필 왜 부정적인 인식의 ‘당구’관련 업이냐는 것에서 오는 우려감이 더 커 보였다.
 
어느 순간부터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설날 명절. 오랜만에 만난 친척 어른들의 잔소리와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워 아예 고향에 가지 않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진 Pixabay]

어느 순간부터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설날 명절. 오랜만에 만난 친척 어른들의 잔소리와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워 아예 고향에 가지 않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진 Pixabay]

 
그 이후, 명절 땐 딱히 큰 이유 없이 고향에 내려가지 않았다. 지난해 설 때처럼 ‘뭐니 뭐니 해도 요즘 같은 어려운 시기에는 회사에 딱 달라붙어 있어야지’와 같은 잔소리가 쏟아질 거라 생각하니 차라리 회사에 나와 혼자 일하고 있는 게 마음 만큼은 더 편하겠단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당구업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아직 잔존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단, 나의 사업도 잘해야겠거니와, 내가 속해있는 업 자체의 인식이 변화되어야 하는 어려운 숙제 같아 보였다. 
 
주변 동료 창업가들을 만나보면 나처럼 오랜만에 만난 친척 어른들의 ‘과도한 관심’이 부담스러워 아예 고향에 가지 않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올해 당구업을 하는 나의 설 명절 때의 분위기는 완전 180도 달라져 있었다. 일단, 내가 이번 설에는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이는 고향집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우려 섞인 잔소리들을 확률이 적다고 판단해서였기 때문이다.
 
당구는 지난 프로당구시대를 출범하면서 역사의 2막을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구의 위상이 변화되었다는 것을, 멀리서가 아니라 가까운 친척들의 반응에서 체감적으로 쉽게 느낄 수 있었다. 고모부는 최근 여가문화 선택지로 당구를 결심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고모는 고모부 탓에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었던 당구방송을 이제는 즐겨 보시는 애청자가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하신다.
 
직장인 조카는 요즘에는 회사동료들과 술회식보다는, 저녁식사 이후 당구장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예전에는 남자직원들은 당구장, 여성직원들은 볼링장으로 분리되어 2차를 즐겼었는데, 이제는 여성직원들도 함께 당구장에 가서 당구를 즐긴다고 한다.
 
당구의 흥미성, 젊은 층을 공략한 당구장 분위기 등 여러 요소가 젊은 층을 끌어들인 것으로 생각하니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리고 이런 풍토에 나도 어느 부분 일조한 것 같아 보람찼다.
 
현재 당구의 인기와 문화가 당구팬들 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일상 라이프스타일에 젖어들고 있다. 이 모든 광경들이 당구의 '존재감'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사진 Pixabay]

현재 당구의 인기와 문화가 당구팬들 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일상 라이프스타일에 젖어들고 있다. 이 모든 광경들이 당구의 '존재감'이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사진 Pixabay]

 
이번 설 연휴, 당구대회가 한창이었다. 친인척들과 함께 당구방송을 보며, 당구 관련 이야기를 주고받는 이 풍경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러던 중, 고모부가 운을 떼셨다. “당구 한판 치러가자!”
 
우린, 연휴 둘째 날 저녁에 동네 당구장을 방문하여 당구 시합을 치렀다. 설 연휴 동네당구장은 최고 성수기인 대목인 만큼, 20분 정도 대기를 하다가 칠 수 있었다. 손님들로 가득 찬 당구장에서 대기하던 중,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둘째 고모부가 “퇴직하면, 나도 당구장이나 하나 차려볼까”라고 넌지시 고모 눈치를 보며 멘트를 던지더니 고모의 반응을 살펴본다. 예전 같았음 노발대발했을 것 같은 고모 역시 고모부의 돌발발언에 크게 부정적인 반응은 보이시지 않는다.
 
어쨌든 이 모든 광경이 당구의 '존재감'이 확연하게 달라진 모습이다. 당구의 현재 인기와 문화가 당구팬들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일상 라이프스타일에 젖어 들고 있다. 
 
현재 나의 머릿속에 있는 ‘당구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는다면 더 이상 메이저 스포츠종목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고모가 먼저 나서서 고모부의 당구장 창업을 권장할 것 같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다음 명절에도 친척들에게 자랑할 수 있을 정도로 내가 잘해야 한다.
 
올댓메이커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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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호 대표 이태호 대표 올댓메이커 대표 필진

[이태호의 직장 우물 벗어나기] 번듯한 직장에 몸을 담그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 사표를 내고 창업을 하게 되었다. 당구장브랜드 '작당'을 론칭, 많은 은퇴자 및 퇴직예정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면서 전국 매장 30여개를 개설했다. 점주이자 손님인 시니어 층에 대한 관심이 많은 청년사업가이다. 그들을 만나면서 느꼈던 감정, 상황들을 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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