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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아들'된 이수현, 그의 꿈을 키워가는 사람들

중앙일보 2020.01.30 08: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39)  

 
고인이 된 아들의 꿈을 실현해가고 있는 어머니가 있다. 신윤찬. 그동안 같이 활동해오던 아버지 이성대 씨는 2019년 3월 고인이 되었다. 어머니는 이제 아들의 꿈에 이어 아버지의 뜻까지 잇게 되었다. 이 씨는 생전 “한일관계가 좋지 않은 지금이야말로 활발한 민간교류를 통해 서로의 마음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한다. 그러나 한일관계가 개선될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2019년 일본에 사는 한국인들은 힘든 1년을 보냈다. 2020년은 부디 달라지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신 씨의 아들은 스물여섯이란 파릇파릇한 나이에 떠났다. 아들 이수현의 꿈은 ‘한국과 일본의 가교가 되는 것’이었다.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일본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고 이수현 씨의 어머니 신윤찬 씨가 두 손 모아 아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연합뉴스]

도쿄 신오쿠보역에서 일본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고 이수현 씨의 어머니 신윤찬 씨가 두 손 모아 아들의 명복을 빌고 있다. [연합뉴스]

 
19년 전 2001년 1월 26일. 일본 전국에 뉴스 속보가 전해졌다. 도쿄 JR신오쿠보역에서 인신사고 발생. 선로에 떨어진 사람과 그를 구하기 위해 뛰어든 두 남성이 사망했다. 뛰어든 이는 카메라맨 세키네 시로(関根史郎) 씨와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 씨다. 가끔 있는 인신사고이기에 그냥 흘러갈 수 있는 뉴스였다.
 
그러나 2001년 1월 26일은 달랐다. 한국인 유학생이 일본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뛰어들었다니. 한류 붐이 일기 전 ‘한일관계는 껄끄러운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던 때의 일이었다. 일본인들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행동했다. 그 행동이 부모님을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장례식은 학교장으로 치러졌다. 한국에서는, 부모보다 먼저 간 자식의 장례식에 부모는 참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일본어 학교 이사장이 추진했다. 장례식에는 일본 정치가들은 물론 일반 조문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머니는 의아했다.
 
‘이 사람들은 누구일까’, ‘수현은 한낱 유학생일 뿐인데 왜 줄을 서고 있는 것일까.’
 
故 이수현씨의 49재에 참석한 한 일본인 조문객이 분향하고 있다. [중앙포토]

故 이수현씨의 49재에 참석한 한 일본인 조문객이 분향하고 있다. [중앙포토]

 
그리고 깨달았다. 아들을 추모하러 온 사람들이란 것을. 조문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는 모금 활동이 이어졌고 조의금이 전달되었다. 부모님은 그 조의금을 좋은 뜻에 써 달라고 일본어 학교 이사장에게 맡겼고, ‘LSH(이수현) 아시아 장학회’로 탄생했다. 2002년부터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하여 2019년 현재 18개의 나라와 지역의 유학생 950명에게 지급되었다고 한다. 2020년 10월 1000명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일간의 가교’가 되고 싶다던 이수현의 꿈은 한국과 일본만이 아니라 18개의 나라와 지역을 잇는 커다란 나무로 성장했다. 그 꿈을 키우고 실현하고 있는 것은 남겨진 부모와 장학회의 관계자들과 지원자들이다. 이 장학회는 봉사활동자들로 운영되고 있으며 기부금 전액이 장학금으로 지급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어 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장학회는 LSH(이수현) 아시아 장학회가 유일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는 장학회가 아들 대신이라고 말하는 신 씨.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올해 10월이면 1000여 명의 자식을 품게 된다. 그 자식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이 사건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2019년 11월 11일에 방송된 NHK의 다큐멘터리 ‘사건의 눈물(事件の涙)’이었다. ‘그래서 나는 플랫폼에 선다(だから私はホームに立つ)’ 신 씨의 18년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사고 당시의 뉴스와 장례식, 그 후의 장학회 활동이 중심이었다. 아들이 목숨을 잃은 나라. 일본이 싫어질 수도 있는데, 일본에 대해서 알아가고 한국과 일본 젊은이들의 교류에 진력하고 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1월 26일, 2015년에 제작된 다큐멘터리 영화 ‘가교(かけはし/가케하시)’ 상영회에 참석했다. 1부는 이수현 씨의 생애와 부모님의 활동을, 2부는 한국 대학생들의 홈스테이와 일본 대학생들과의 교류를 소개하고 있었다. 영화를 기획 제작한 나카무라 사토미(中村里美) 씨는 말한다. “이수현 씨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를 추적하며 ‘국적을 초월한 마음의 다리’를 그려내고 싶었다”고. 2019년에는 한국에서도 2회 상영회가 있었다. 현재 3부를 제작 중이라고 한다. 1월 26일 기일을 맞아 일본을 방문한 신 씨도 상영회에 참석했다. 환한 미소로 눈물 자국에 콧등이 벌건 관객의 손을 잡으며 오히려 위로한다.
 
1월 27일에는 신 씨를 초청한 모임이 있었다. 아들을 잃은 후 19년의 세월. 장례식 조문객들을 보며 ‘이 사람들은 누굴까’라고 의문을 가졌던 어머니는 일본인과 일본어로 대화를 나누고 간단한 스피치를 할 정도로 달라졌다. 무엇이 어머니를 이끈 것일까. 일본 사람들이 보내온 편지가 2000통이 넘는다고 한다. 편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그 편지를 읽고 싶어서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들은 당신들만의 아들이 아닌 ‘모두의 아들’이 되었음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어느 참석자가 말했다. 이수현 씨의 뜻을 우리 모두가 이어받았다고. “국적을 떠나 인간으로서 사이좋게 지내자”라고.
 
한일출판번역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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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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