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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기 탑승권 있어도 공항 못가" 중국인 돌담에 갇힌 교민들

중앙일보 2020.01.30 06:01
정부가 우한 폐렴(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발원지인 중국 후베이(湖北)성 우한(武漢)에 30~31일 전세기를 보내 한국인들을 국내로 송환할 계획인 가운데, 우한 외 지역에 있는 교민들은 탑승 전날인 29일까지도 우한에 가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전세기 탑승 허가증은 받아놨지만, 정작 우한까지 가는 길이 돌담 등 장애물에 막혀있어서다. 탑승 신청이 완료된 694명 한국인 가운데 우한 외 지역에 있는 한국인은 170명가량이다. 전세기에 타기로 한 한국인 중 최대 24% 좌석이 자칫 공석으로 날아올 수도 있다는 셈이다. 
중국 후베이성 상양시에서 우한시로 가는 길목에 놓여있는 장애물들. 이는 현지 중국 주민들이 우한에서 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쌓아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독자 제공]

중국 후베이성 상양시에서 우한시로 가는 길목에 놓여있는 장애물들. 이는 현지 중국 주민들이 우한에서 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쌓아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독자 제공]

 

“탑승권 있어도 공항 못 가요”…교민들 단톡방 만들어 상황 공유

중국 우한에서 약 350㎞ 떨어진 후베이성 상양(襄陽)에 머물고 있는김모씨는 29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정부가 전세기를 띄워 우리를 구출해준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전세기 탑승에 신청했고 어제 탑승 허가증도 메일로 받았다”며 “하지만 막상 우한으로 가려 하니 길 자체가 모두 돌담과 트럭 등으로 막혀있어서 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간 김씨는 총영사관과 영사콜센터 등에 “물리적으로 길이 막혀 우한으로 갈 방법이 없다”고 말했지만 돌아온 답은 “어쩔 수 없다”는 대답이었다고 한다. 김씨는 “그럼 중국 정부에 장애물을 치워달라고 협조를 요청해달라”고도 했지만, “협조 중”이라는 말만 왔다고 한다.  
 
외교 당국은 김씨처럼 우한 외에 있는 한국인들에게 봉쇄된 도로를 통과할 수 있는 ‘통행 허가증’을 주기로 했지만, 이마저도 김씨는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김씨는 “통행증을 받는다고 치더라도, 물리적으로 길이 막혀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답답해했다. 일부 교민들은 임시 통행증을 발급받긴 했지만, 도로에서 효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30~31일 중국에 보내기로 한 전세기에 탑승하지 않는 현지 한국인들의 단체 채팅방. 우한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 비행기 탑승 신청을 하지 않았거나, 신청하고도 우한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는 사람들이다. [독자 제공]

정부가 30~31일 중국에 보내기로 한 전세기에 탑승하지 않는 현지 한국인들의 단체 채팅방. 우한까지의 거리가 너무 멀어 비행기 탑승 신청을 하지 않았거나, 신청하고도 우한으로 가는 길이 막혀 있는 사람들이다. [독자 제공]

 
김씨처럼 우한행이 막힌 교민들은 위챗(중국 메신저 어플)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처한 상황을 공유 중이다. 방 제목은 ‘전세기미탑승’으로 98명이 들어와 있다. 문자 그대로 전세기 탑승 신청을 안 한 사람과 김씨처럼 탑승권을 얻고도 우한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채팅방에서 “저는 탑승 신청했으나 여기 스옌(十堰)에서 가는 걸 포기했어요”(최모씨)라고 상황을 토로하거나, “다들 조심하고 희망을 잃지 말고 화이팅 합시다”(노모씨) 등 서로를 격려하는 글을 나누고 있다.  

 

중국 정부ㆍ시민, 주요 도시 봉쇄 중

상황이 이렇게 된 건 중국 정부가 자체적으로 후베이성 주요 도시들을 봉쇄해놓은 상태기 때문이다. 우한 폐렴 진원지이자 성도(省都)인 우한 외에도 황강(黃岡)ㆍ어저우(鄂州) 등이 정부 차원에서 막혀있다.  
 
더 큰 문제는 중국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쌓아놓은 장애물들이다. 이들은 우한에서 사람들이 오는 것을 막기 위해 ‘자경대’를 조직, 여러 길목에 흙더미와 돌담을 쌓아놓았다. 트럭을 세워놓고 집에 들어가 두문불출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김씨는 “누가 쌓아놓은 지도 모르는 장애물들을 어느 세월에 누가 해체할 수 있겠냐”라고 했다.  
중국 후베이성 상양시에서 우한시로 가는 길목에 놓여있는 장애물들. 이는 현지 중국 주민들이 우한에서 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쌓아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독자 제공]

중국 후베이성 상양시에서 우한시로 가는 길목에 놓여있는 장애물들. 이는 현지 중국 주민들이 우한에서 오는 사람들을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쌓아놓은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독자 제공]

 
때문에 이런 장애물들은 정확히 어느 지점에 얼마나 있는지는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가 협조에 적극적으로 응하더라도 물리적으로 이들을 다 확인하고 치우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외교부 “상황은 알지만”…예정대로 비행기 수송 착수

주우한총영사관은 현재 현지 교민들도 통화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영사관이 29일 홈페이지에 띄운 최신 공지문에는 “한국인 직원 9명이 모든 업무를 처리하는 중이며, 외부 지원도 없이 헌신하고 있는 중”이라고 쓰여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의심 등 건강상의 문제나 사건·사고가 아닌 철수 관련 사항은 전화로 문의하지 말라고도 쓰여있다. 즉 김씨처럼 철수에 애로 사항이 있는 사람은 전화 문의조차 힘들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 외교부 관계자는 “원활한 철수를 위해 중국과 계속 협조 중”이라며 “전세기 수송 계획에는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외교부는 30일 오전 10시 인천국제공항에서 우한으로 출발하는 정부 전세기에 이태호 외교부 2차관을 팀장으로 하는 정부 합동 신속대응팀 20여명을 파견할 예정이다. 30일 정오에 추가로 비행기를 보내고 31일에도 2차례 보내는 등 총 4대의 비행기가 수송 작전에 투입될 예정이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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