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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중국인 혐오로 바뀐 공포···메르스도 그래서 커졌다

중앙일보 2020.01.30 01:00 종합 6면 지면보기
28일 고양시 명지병원 격리음압병동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의심환자의 시료를 다루고 있다. 공성룡 기자

28일 고양시 명지병원 격리음압병동에서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의심환자의 시료를 다루고 있다. 공성룡 기자

'치료 후 법적 처벌해야 한다.' '무책임하고 뻔뻔한 사람….'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격리 치료 중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폐렴) 환자 A씨(54) 관련 기사의 일부 댓글이다. 옮기기 힘들 정도로 거친 표현도 상당수다. 반면 격리 병동 의료진 응원이나 환자의 쾌유를 비는 글은 손에 꼽을 정도다.

[현장에서]온라인서 환자 비난 글 도배
중국인 무조건 꺼리는 분위기
의심환자 자발적 내원 어렵게 해

 
A씨는 사흘간 서울 강남, 고양 일산 등을 이동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비판이 집중됐다. 홀로 격리 병실에서 휴대전화로 뉴스 댓글을 보면서 잠을 절 못 이루고 있다. 담당 의료진은 "수면제 처방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우한폐렴이 확산하면서 온·오프라인 어디서든 부정적 내용이 쏟아진다. 환자들이 아무런 제지를 안 받고 내 주변을 활보했다고 맹비난한다. '중국인=위험'이라고 낙인을 찍으며 '포비아'(공포증)를 확산시킨다. 중국인 입국 금지를 요청하는 국민청원 참여자가 29일 오후 60만명에 육박했다. 전세기로 후송될 우한 교민을 거부하는 '님비'(지역 이기주의)가 횡행한다.
27일 명지병원에서 보호복을 착용한 의료진들이 환자가 치료받는 병실을 정리하고 있다. [명지병원 제공, 뉴스1]

27일 명지병원에서 보호복을 착용한 의료진들이 환자가 치료받는 병실을 정리하고 있다. [명지병원 제공, 뉴스1]

신종 감염병은 정체를 잘 모른다. 발병 한 달 남짓한 우한폐렴에 대해 전문가들도 확실히 정체를 말하기 어렵다. 불안감이 생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떤 감염병이 와도 한 가지 원칙은 변함이 없다. 병을 무조건 쉬쉬하고 손가락질할수록 '양지'가 아니라 '음지'로 갈 가능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감염자가 숨을수록 내 주변에 바이러스가 가까이 올 위험이 커진다. 방역이 더 어려워져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대한의사협회는 환자를 비난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방역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종혁 의협 대변인은 "환자를 비난하면 의심 증세가 있어도 1339(질병관리본부 콜센터)에 전화하는 것을 꺼리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재갑 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세 번째 환자는 오히려 호흡기 증상이 나타나니까 폐렴을 의심하고 잘 신고해줬다. 무조건 비난만 하지 말고 격려할 건 격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유대한호국단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9일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중국인 입국금지 촉구 집회에 참석해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자유대한호국단 등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29일 청와대 인근에서 열린 중국인 입국금지 촉구 집회에 참석해 손피켓을 들고 있다. [뉴시스]

중국인 포비아도 마찬가지다. 중국 동포가 많은 서울 영등포ㆍ구로 지역의 어떤 어린이집 결석률이 80%에 달한다고 한다. 일부 보수단체들은 청와대 앞에서 중국인 입국 전면 금지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중국인을 안 받는 식당도 생긴다.
 
2015년 메르스(MERSㆍ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를 다시 보는 듯하다. '데자뷔'이다. 당시 '슈퍼 전파자' 14번 환자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엄청났다. 의료진도 비난했다. 다행히 의료진의 희생하는 모습을 보고 돌아서긴 했지만, 환자와 의료진 비난이 메르스 종식에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2015년 6월 메르스 사태 당시 울지대병원 앞에 붙은 의료진 격려 플래카드. [중앙포토]

2015년 6월 메르스 사태 당시 울지대병원 앞에 붙은 의료진 격려 플래카드. [중앙포토]

5년 전 경험은 맹목적 공포보다 작은 용기와 연대가 질병 퇴치에 가깝다는 교훈을 준다. 확진 환자가 일부러 돌아다녔을 리가 없다. 그 사람도 피해자다. 심하면 숨질 수도 있다. 누구나 그 사람이 될 수 있다. 중국인 기피는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로 비친다. 한국의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일학 연세대 의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는 "시민들은 환자를 ‘위험하지만 내 동료이자 희생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환자도 시민의식을 갖고 주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신뢰가 부족한 우리 사회 문제가 메르스에 이어 다시 드러났다. 정부는 일관된 원칙을 갖고 투명하게 소통해야 갈등을 풀 수 있다"고 말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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