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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범의 문화탐색] 누구를 위하여 새벽종은 울렸나

중앙일보 2020.01.30 00:24 종합 27면 지면보기
최범 디자인 평론가

최범 디자인 평론가

석유 탱크 속의 미술
 

옛 석유저장고서 전시회
산업화 과거와 미래 성찰
새마을운동 50년 의미
지금 다시 물어야 할 때

서울월드컵경기장 옆 매봉산으로 둘러싸인 문화비축기지를 찾으니 널찍한 부지에 낯선 시설들이 듬성듬성 눈에 띈다. 멀찍이 보이는 언덕을 올라 T4(4번 탱크)라고 쓰인 공간에 들어서자 어둑한 내부 여기저기에 설치된 스크린 위에 빛이 번쩍거린다. 권민호 작가의 개인전 ‘새벽종은 울렸고 새 아침도 밝았네’가 열리고 있다. 문화비축기지는 1970년대 석유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석유비축기지를 리모델링하여 3년 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모두 4개의 저장고 중 4번 탱크는 전시 공간으로 사용된다.
 
전시 작품은 모두 다섯 점이며, 전면에는 커다란 제도판 위에 설계도면 같은 드로잉이 펼쳐져 있고, 그 뒤에 세워진 대형 스크린에는 드로잉 작업에 애니메이션 효과가 덧입혀져서 빛나고 있다. 전시장 곳곳에는 조명과 사운드 효과도 곁들여진다. 복합매체 작업이다. 스크린에는 포항제철·당인리 발전소·포니 자동차·유조선·레미콘 등 한국의 산업화가 낳은 이미지들이 겹쳐지게 투사되고 있다. 전체적인 느낌은 역동적이고 모뉴멘탈하다.
 
프랑스 화가 페르낭 레제는 “현대미술은 기관차 옆에 놓여도 꿇리지 않을 정도로 강해야 한다”라고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특히나 그로테스크한 아우라를 뿜어내는 폐산업시설을 그라운드로 삼는 미술 작업은 아무나 덤벼들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공간이 주는 위압감이 너무 크기 때문에 웬만한 작품들은 그 앞에서 기가 죽게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권민호의 전시는 주제·스케일·기법 등 모든 면에서 가위 석유 탱크와 맞장을 뜰 정도의 파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기 드문 작업임이 분명하다.
  
한국 산업화의 ‘건축적 역사화’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리고 있는 권민호의 개인전 ‘새벽종은 울렸고 새 아침도 밝았네’의 전시(2월 16일까지) 장면. [사진 이우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리고 있는 권민호의 개인전 ‘새벽종은 울렸고 새 아침도 밝았네’의 전시(2월 16일까지) 장면. [사진 이우재]

권민호는 산업적인 이미지를 주로 다루는 작가다. 그는 한국의 산업화가 만들어낸 대상들을 영화의 몽타주 기법과도 같이 조립해내는데, 다분히 스팀펑크(Steampunk·증기기관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SF 장르)적인 감수성이 느껴져서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복고적으로 다가오기까지 한다. 기계적인 이미지들을 조립하고 쌓아 올린다는 점에서 권민호의 작업은 일단 구축적이고, 그런 점에서 한국 산업화의 ‘건축적 역사화’라고 부를 만하다. 하지만 그의 작업이 단순히 구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의 드로잉은 산업화의 형상을 전체적인 윤곽으로 포착하면서도 그러한 형상들에 내재하거나 그것들이 연상시키는 또 다른 형상들을 불러내어 중첩시킨다. 그래서 그의 이미지들은 전체적으로 단일하나 복합적이며 통합되어 있지만 내적으로 충돌한다.
  
과거 구축하는 동시에 탈구축하는 작업
 
한국에는 산업화에 대한 미학적 형상화의 전통이 별로 없다. 서구와 같은 기계미학(machine aesthetic)도 없다. 우리는 산업화의 성공이 가져다준 물질적 성과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아직은 그것을 제대로 재현하지도, 비판적 거리를 가지고 성찰하지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산업화의 복합성과 모순까지를 들여다보려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탈산업화 시대에 산업화의 기억을 재현하고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서, 과거에 대한 구축이자 동시에 탈구축적인 작업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적극적인 기억의 의지이면서 동시에 비판적 성찰 행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작가에게 물어보았다. 올해가 새마을운동 50주년인 것을 알았느냐고. 그랬더니 작가는 몰랐다고 한다. 그러면서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라는 ‘새마을 노래’ 첫 소절의 가사를 과거형으로 표현한 것은 산업화의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새로운 미래를 이야기해보고 싶어서였다고 덧붙인다.
 
요즘 도시재생이 유행이다. 산업시설의 재활용이 문화적 화두가 된 지도 오래다. 이는 모두 우리에게 산업화에 대한 기억과 재현, 나아가 재생이라는 문제를 던지고 있다. 이것이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성찰과 분리될 수 없음도 물론이다. 마침 50년 전 석유 위기 때 지어진 폐산업시설에서 한국 산업화의 기억을 다룬 전시가 열리고 있음은 우연이라기에는 너무 의미심장해 보인다. 과연 50년 전, 그 새벽종은 누구를 위하여 울렸던 것일까. 지금 그것을 다시 물어야 할 때가 아닐까.
 
최범 디자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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