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트럼프, 팔레스타인에 500억 달러 내밀며 ‘반쪽 독립국’ 제안

중앙일보 2020.01.30 00:04 종합 14면 지면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8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에 국방 주권 없이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반쪽 독립국’을 수립하는 내용의 중동평화안을 제안했다. 전체 예루살렘과 요르단강 서안 기존 정착촌의 이스라엘 주권을 인정한 가운데 “현실적인 2국가 해법”이라고 하면서다. 팔레스타인이 수용하면 500억 달러 투자를 제공하겠다는 당근도 제시했다. 하지만 1947년 유엔총회 결의안 이래 예루살렘 분할을 포함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완전한 팔레스타인 독립국을 수립하는 ‘2국가 해법’에 대한 사망 선고라는 반발이 나왔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도 곧바로 거부했다.
 

이스라엘에 유리한 평화안 공개
요르단강 서안 기존 정착촌 인정
팔레스타인은 안보주권 영구 포기

73년 유지 ‘2국가 해법’ 부정한 셈
팔 “쓰레기통 보낼 구상” 즉각 거부

미국의 중동평화구상. 그래픽=신재민 기자

미국의 중동평화구상. 그래픽=신재민 기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옆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인을 위한 평화, 번영 및 밝은 미래를 위한 비전’이란 제목의 80쪽 분량의 중동 평화안을 공개했다. 그는 “내 비전은 팔레스타인 국가 지위가 이스라엘 안보에 미칠 위험을 해소하는 현실적인 2국가 해법”이라며 “오늘 이스라엘은 평화를 향해 거대한 일보를 내디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계획은 지금까지 제출된 중동평화안 가운데 가장 상세한 제안”이라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더 안전하고 번영할 수 있는 정확하고 기술적인 해법을 제시했다”고 자화자찬했다.
 
트럼프 중동평화안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통합 예루살렘의 통제권을 행사하는 가운데 팔레스타인은 알아크사 사원을 포함한 일부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국가 지위를 얻도록 하는 것이다. 대신 팔레스타인은 영구적으로 안보 주권을 포기해야 한다. 국가 지위는 가져도 이스라엘 안보에 적대적 위협을 없애기 위해 군대 창설권과 다른 나라와 안보·정보조약을 체결할 권한을 갖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또 요르단강 서안 15개 집단 거주지를 포함한 기존 정착촌을 인정받고, 향후 4년간 추가 건설은 중단하기로 했다. 국제법상 불법 상태인 정착촌을 영토로 공인받는 셈이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성지 보호 조치를 계속하며 유대인과 기독교도, 이슬람 신도를 포함한 모든 종교인의 참배 자유를 보장했다. 양측 모두의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을 포함한 동예루살렘 성전산(Temple Mount)도 현 상태를 유지하는 대신 무슬림의 알아크사 사원 방문을 허용한다. 이스라엘이 전체 성지 통제권을 계속 갖는다는 뜻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신 팔레스타인 경제 발전을 촉진할 500억 달러 규모 평화·번영 상업 투자를 제공하겠다고도 제시했다. 그럴 경우 100만 개 이상 일자리를 창출해 실업률을 10% 이하로 낮추며 팔레스타인 국내총생산(GDP)은 두 배로 될 것이라고 했다. 팔레스타인 수도인 동예루살렘 지역에 별도 대사관을 설치하는 등 관계 정상화도 약속했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예루살렘은 흥정 대상이 아니다”며 “이 계획은 세기의 타격(the slap of the century)”이라고 말했다. 이어 “팔레스타인 민족은 미국의 구상을 역사의 쓰레기통으로 보낼 것”이라며 “천번이라도 ‘노’(No)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 정파 하마스도 “트럼프의 중동평화구상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음모”라면서 거부했다.
 
터키 외무부는 “트럼프의 계획은 2국가 해법에 대한 사망 선고이자 팔레스타인 영토를 병합하려는 목적의 계획”이라고 비난했다. 유엔을 중심으로 유럽 국가들도 반발하고 있어 트럼프의 중동평화안이 성사되긴 어려울 전망이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jjpol@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