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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 없어 중증 환자 못받았는데 감기환자가…오 마이 갓!

중앙일보 2020.01.27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38)

한쪽에서 심폐소생술이 긴박하게 진행되고 다른 곳에선 119로 후송된 환자가 숨을 헐떡인다. 응급실에서는 경증의 일반환자는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글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한쪽에서 심폐소생술이 긴박하게 진행되고 다른 곳에선 119로 후송된 환자가 숨을 헐떡인다. 응급실에서는 경증의 일반환자는 후순위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글과 직접적인 관련 없음. [연합뉴스]



# 접수하고 온 사이 누군가 아내에게 증상을 묻고 있었다. 의사는 아니고 이제 겨우 인턴쯤 될 거 같았다. 너무 앳된 얼굴이라 미덥지 못했다. 질문도 엉성했다. 맥락이 없었다. 열이 나서 정신을 못 차리는 환자에게, 혹시 시골에 다녀왔냐는 둥 태평한 질문으로 일관했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꾹 참았다. 여기서 나는 철저히 약자니까. 혹시라도 의사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나만 손해다. 가능한 조심해야 한다. 나는 예의를 갖추어 정중하게 부탁을 했다.
"시골 다녀왔는지가 중요합니까? 아내가 몹시 아프니 링거부터 좀 놔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그는 힐끗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더니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필요하니까 물어보죠."
 
무안했다. 얼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의사는 몇 개의 질문을 더 하더니, 이윽고 자리가 없다며 다른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다급해진 나머지 나도 모르게 통 사정이 나왔다.
“이 밤중에 어디로 옮기라 하십니까?”

 
그는 내 말뜻을 오해하고, 몇몇 응급실 이름을 실제로 불러주기 시작했다. 모두 작고 오래된 병원이었다. 전혀 내키지 않았다. 산채로 들어가 죽어서 나온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런 곳에서 아내를 잘 치료할 수 있을 거 같지 않았다. 행여나 아내의 병세가 나빠지기라도 하면, 평생 후회가 남을 일이었다.
 
어쩌면 그 병원들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건지도 몰랐다. 의사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느니 비용이 많이 나올 거라느니 별의별 핑계를 만들어가며 노골적으로 병원을 옮기라고 종용하고 있었다. 나는 최대한 비굴한 표정으로 굽신거리는 수밖에 없었다.
“꼭 여기서 진료받고 싶습니다. 형편 좀 살펴주십시오.”

 
의사는 뜻대로 되지 않자 혀를 차며 자리를 떠났다. 거만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심지어 무슨 병이 의심되는지 어떤 치료를 받을지 아무런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분해서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래도 참아야 했다. 진료받을 입장에서 그들과 싸우면 나만 손해니까.
 
‘이곳에서 쫓겨나지 않은 것에 만족하자.’
 
의사란 참 좋은 직업이다. 공짜도 아니고, 돈을 내는 건 난데, 그런 내가 오히려 고개를 숙여야 한다니. 쓴웃음이 나왔다. 나는 마음을 굳게 다잡았다. 아내를 위해 이 정도 푸대접은 충분히 견뎌낼 수 있다!
 
"여기 응급환자 왔습니다!" 보호자의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연합뉴스]

"여기 응급환자 왔습니다!" 보호자의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연합뉴스]



# 생후 두 달, 갓 난 아이가 응급실로 들어왔다. 호흡곤란이 심해 얼굴이 새파랗다. 자그마치 의사 넷이 달라붙었다. 한 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간신히 목에 튜브를 넣었다. 기계호흡기가 쉭쉭 거리며 숨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제야 나도 마음껏 숨을 들이쉴 수 있었다. 어느새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아이를 보느라 자리를 비운 사이 응급실은 한층 더 소란스러워져 있었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한쪽에선 심폐 소생술이 진행 중이었다. 처음부터 손 쓸 도리가 없던 환자였다. 결국 심장이 멎은 모양이다. 어휴. 한숨이 나왔다. 중증외상 구역에선 전공의 하나가 터덜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환자의 출혈을 잡는데 겨우 성공했다고 한다. 잠깐 나가서 담배 한 대만 피고 오겠다고 했다. 나도 화장실이 급한데….
 
옥신각신하는 사이 응급실 문이 열리며 119가 들어왔다.
“여기 응급환자 왔습니다!”
보호자의 우렁찬 외침이 들렸다. 힐끗 보니 119대원이 환자를 의자에 앉히고 있었다. 당장 생명이 위급한 환자는 아닌 모양이다.

 
“여기 응급하지 않은 사람이 어딨어? 자기보다 급한 환자가 최소 서른 명은 넘을 텐데.”
전공의는 투덜거리며 환자에게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수화기를 들었다. 조금 전부터 당직 핸드폰이 요란스럽게 울려대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역 병원 응급실 의사였다. 그는 지금 자신이 보고 있는 환자의 상태를 설명했다.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무조건 이송을 와야 하는 심각한 환자였다. 이런 환자를 보기 위해 대학병원이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나는 ‘보내달라’는 대답을 애써 꿀꺽 삼켰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지금 응급실 정원을 40명이나 초과했습니다. 중환자실은 물론이고 인공호흡기조차 남은 게 없네요. 다른 병원을 알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 사이 전공의가 환자를 보고 돌아왔다. 그는 코를 씩씩대고 있었다. 보호자와 얘기가 잘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흥분해서인지 불만을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아니, 감염 가능성을 파악하려고 여행 다녀왔냐고 물었더니 쓸데없는 거 묻지 말고 치료나 하라네요.”
“단순 감기 같은데 작은 병원으로 가라고 하지 그랬어?”
“당연히 얘기했죠.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도 설명했고, 병원비가 많이 나온다고도 설명해봤는데, 아무 소용없어요. 무슨 말을 해도 여기서 진료해달라는 얘기만 해요. 거참, 고장 난 라디오도 아니고…."
 
쓴웃음이 나왔다. 자리가 없어서 지역 병원의 위중한 환자를 전원 받지 못하겠다고 거절한 게 바로 몇 분 전 일이다. 그런 와중인데 정작 경증 환자가 여기에 자리를 틀게 생겼다. 위중한 환자를 구해야 할 기회가 가벼운 환자를 돌보는데 소진될 예정인 셈. 무언가 세상이 크게 잘못되어 있다. 아까 문의 왔던 중환자는 과연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을는지….
 
“더 설득해봐야 소용없을 거 같아요. 입씨름할 시간도 없고요.”
 
실제로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 환자를 보러 뛰어나갔다. 그는 아직 담배를 피우지 못했고, 나는 아직 화장실을 가지 못한 채였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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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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