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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유율 80→10% 눈물 닦아준다···‘막걸리 국세청’ 새해 다짐

중앙일보 2020.01.25 05:00
한식과 잘 어울리는 막걸리는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 마신 술이기도 하다. [중앙포토]

한식과 잘 어울리는 막걸리는 역대 대통령들이 즐겨 마신 술이기도 하다. [중앙포토]

'대통령의 술' 막걸리, 왜 몰락했나 

사연도 많고, 곡절도 많은 막걸리가 눈물을 닦고 새 출발을 준비 중이다. 

1970년대만 해도 막걸리는 도시·시골할 것 없이 누구나 즐겨 마시는 술이었다. ‘대통령의 술’이기도 했다.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이 특히 막걸리를 아꼈다. 박 전 대통령은 경기도 고양에서 만든 배다리막걸리로 반주를 했고, 노 전 대통령은 단양에서 만든 대강막걸리를 즐겼다. 그랬던 막걸리가 어쩌다 명절 술상의 주인공 역할에만 만족할 수밖에 없게 됐을까.
 
국세청 주류 출고량 점유율 통계에서 나타난 막걸리의 몰락은 드라마틱하다. 탁주는 72년 한때 한국 술 시장 점유율 81.4%를 기록하며 최고점을 찍었다. 그러나 10년 뒤인 82년 점유율이 52%로 급락했다가 92년에는 13.6%까지 떨어졌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하듯, 애주가들의 술상에서 막걸리는 빠르게 사라져갔다.
맥주·소주·탁주의 출고량과 점유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맥주·소주·탁주의 출고량과 점유율.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쌀로는 빚지 마라" 배고픈 시절 정책에 '눈물'  

막걸리가 한국 술의 맹주 자리를 내준 데는 배고팠던 시절, 정부 정책도 한몫했다. 쌀이 귀했던 65년 정부는 양곡관리법을 시행해 쌀로 막걸리 빚는 일을 금지했다. 이 제도는 와인 만드는 데 포도를 쓰지 말라는 것처럼 막걸리에는 치명적이었다. 술도가에선 어쩔 수 없이 쌀 대신 수입 밀로 막걸리를 만들었다. 핵심 원료가 달라지자 술맛도 떨어졌다. 하지만 이미 막걸리에 익숙한 애주가들은 이 술만 찾았다. 막걸리 제조업자들은 수요를 맞춰야 했고, 급기야 공업용 물질(카바이드)을 막걸리에 섞어 발효 속도를 높였다. 이때부터 막걸리는 자고 일어나면 머리가 깨질 듯 아픈 술의 대명사가 됐다.
 

맥주·소주 급성장에 자리 내준 막걸리 

쌍화차가 아메리카노에 속절없이 밀려나듯, 맥주와 소주(희석식)는 막걸리를 빠르게 대체했다. 72년 점유율 5%에 불과했던 맥주는 82년 24.1%, 92년 56.9%로 급격히 애주가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뒤 2002년엔 점유율 63.3%로 정점을 찍었다. 소주 역시 72년 점유율 11.3%에서 2002년 28.3%로 올라섰다. 이후 맥주와 소주의 강세는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막걸리는 2012년 전·후 ‘웰빙’ 바람을 타고 점유율 탈환을 시도했다. 딸기·유자·요구르트 막걸리 등도 등장했다. 젊은 층에 다가가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2002년 4.3%까지 떨어진 점유율은 그 덕분에 2012년 12.3%까지 올랐지만, 이게 한계였다. 최근까지도 10%대(2018년 11.1%) 점유율에서 더 도약하진 못하고 있다.
 

지평·덕산 등 막걸리 고급화로 부활할까 

시장의 외면 속에서도 막걸리는 유서 깊은 지역 명인의 내공을 바탕으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채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만찬 식탁에 올랐던 송명섭막걸리를 비롯해, 대강·지평·덕산·금정산성 막걸리 등이 맛과 함께 불쾌한 뒤끝까지 해소하고 시장을 공략 중이다. 3대째 가업으로 양조장을 운영하는 경기도 양평 지평양조장과 1930년 설립한 충북 진천 덕산양조장은 문화재로 등록돼 있을 만큼 역사가 깊다.
경기도 양평 소재 지평양조장. 이곳에선 3대째 가업으로 막걸리 양조장을 운영한다. 이 양조장은 국가등록문화재 제594호다. [중앙포토]

경기도 양평 소재 지평양조장. 이곳에선 3대째 가업으로 막걸리 양조장을 운영한다. 이 양조장은 국가등록문화재 제594호다. [중앙포토]

 

국세청 "2만 국세 공무원, 전통주 홍보대사 할 것" 

전통주 면허와 진흥 정책을 담당하는 국세청은 올해 막걸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올해부터 맥주·탁주 관련 주세법이 가격(종가세)이 아니라 용량(종량세)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방식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주세법 개정 전에는 고급 원료를 쓰고 도자기 호리병에 담아 파는 막걸리는 원료·도자기값 모두에 주세가 붙었지만, 올해부터는 오직 술의 양에 비례해 같은 주세(탁주 1ℓ당 41.7원)가 붙는다. 세금 무서워 저가 원료를 쓸 일은 없어져 막걸리 고급화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는 의미다. 강상식 국세청 소비세과장은 "2만여 명의 국세청 공무원이 명절 선물용으로만 인식돼 온 전통주의 판로 개척을 위해 일상 속 홍보대사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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