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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민의 시선] 메시아는 없다

중앙일보 2020.01.24 00:25 종합 24면 지면보기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계속되는 시위로 곤혹을 치르는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한국에선 상종가다. 보수 정권 10년의 ‘적폐’와 적폐 청산을 주문처럼 외며 집권해 ‘신 적폐’를 쌓은 진보 정권에 실망한 사람들에게 청량제가 되고 있다.
 

국민의 희생 설득하는 게 지도자
메시아인 양 포장하는 건 기만
포퓰리즘으로 부강해진 나라 없어

마크롱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과 나흘 차이로 취임했다. 그는 경제산업디지털부 장관을 중도 사퇴하고 ‘앙 마르슈(전진)’를 창당, 단박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좌도, 우도 아닌 중도를 표방해 돌풍을 일으켰다. “지난 수십년간 좌·우파 정치인들은 공공 지출을 증가시켜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떠넘겨버렸다. 현실에 맞설 용기가 없어 아이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부채를 떠넘기는 비겁한 행위를 했다.” 프랑스를 저성장·고실업의 늪에 빠뜨린 정치권의 무능을 공격하며 ‘프랑스병’ 치유를 장담한 39살 청년의 패기에 유권자들은 갈채를 보냈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웅변’이 아닌 ‘실천’에서 드러났다. 집권하자마자 부유세 폐지, 법인세 인하, 복지예산 삭감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더니 2018년엔 유류세 인상까지 단행했다. 파리 교외에 살며 자동차로 출퇴근해야 하는 중산층·서민들이 유류세 인상에 반발했다. 자동차 사고에 대비해 차안에 의무적으로 비치하게 돼있는 형광빛 노란조끼를 입은 성난 운전자들의 시위는 마크롱 퇴진 운동으로까지 번졌다. 지지율이 20%대로 곤두박질쳤다. 실업이 줄고 경기가 반등하면서 그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집권초 ‘해고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었더니 기업의 고용이 살아난 것이다.
 
이번엔 연금개혁에 올인하고 있다. ‘더 일하고 덜 받는’ 연금 개혁은 역대 정권이 모두 실패한 뜨거운 감자다.  저항은 전 국민적이다. 프랑스 철도 노조는 역대 최장 파업기록을 갈아치우고 연일 기록 경신중이다. 마크롱은 퇴직후의 대통령 특별연금(월 2500만원)을 포기하는 배수진을 치며 노조 설득에 나섰다. 문제를 피하지 않는 소통의 리더십은 ‘노란조끼’ 시위 때도 발휘됐다. 국가 대토론회를 열어 노조와 머리를 맞댔다. 자신을 ‘친 기업’이라고 공격하는 노동자들 앞에서 거침없이 희생을 요구했다. “일을 덜 하면서 돈을 더 벌수는 없다. 세금을 줄이면서 정부 지출을 늘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 “기업을 지키지 않으면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마크롱 개혁의 성패를 예측하긴 쉽지 않다. 하지만 표 떨어질 걸 감수하면서, 국민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지도자의 당당함과 리더십이 그를 빛나게 한다. 선거가 아닌, 국가의 내일을 생각하는 정치가(statesman)다운 품격이다. 미국의 국부격인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경구가 생각난다. “이 시대의 근원적 위기의 징후는 국민에 대해 희생을 요구하는 지도자가 나올 수 없게 된 데 있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자신을 희생하는 일에 기꺼이 나설 사람은 세상에 없다. 그러나 모두 희생을 거부한다면 공멸할게 뻔하기 때문에 희생하는 것이다. 모두 죽는 것 보다 나은 길이기 때문이다. 그걸 이끌어야 하는 게 지도자의 숙명이다.
 
4월 총선을 앞둔 정치권에 장밋빛 공약이 넘친다. 공공 무료 와이파이로 데이터 0원 시대, 만 20세 청년 전원에게 3000만원씩 출발자산 지급, 반의 반값 아파트 공급…. 가까스로 짜맞춰서 겨우 2% 성장하는 형편엔 무리한 포퓰리즘 공약이다. 그런데도 “좋은 포퓰리즘” “부모 찬스가 없으면 사회 찬스라도 써야 한다”며 당당하다. 메시아 강림을 믿기라도 하는걸까. 표만 얻으면 그만이라는 뻔뻔함과 무책임의 극치다. 사악함마저 느껴진다.
 
타다 금지법을 발의한 민주당이 내건 벤처 4대강국 실현 공약은 모순을 넘어 ‘초현실적’이다. 벤처 강국 운운하기 이전에 타다 문제를 현실적으로 해결해내는게 정치가 할 일이다. 그랬더라면 벤처·스타트업계 대표들이 ‘규제개혁비례당’ 을 창당하겠다고 나서는 사태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타다 금지법을 놔둔채 벤처 강국 운운하는 건 총선을 노린 말장난에 불과하다. “택시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하면서 혁신적 영업이 진출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대통령의 말도 그렇다. 여기엔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는다는 메시지가 깔렸다. 그러나 책임있는 지도자라면 누구도 희생하지 않는, 모두를 만족시킬 해결책은 없다고 말해야 옳다. 조금씩 희생하고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게 진짜 지도자다.
 
‘유권자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조삼모사 식의 현란한 눈속임과 달콤한 레토릭에 속아넘어가 부강해진 나라는 없다. 자신이 메시아인양 포장한 정치인의 포퓰리즘이야 말로 배격해야 한다. 국민을 무시하고 기만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국가의 영속성 마저 위협하기 때문이다.
 
이정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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