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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평양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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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lee.youngjong@joongang.co.kr

‘평양 총독부’에 사로잡힌 그들…위기의 대북정책

중앙일보 2020.01.24 00:19 종합 21면 지면보기

국격 지키는 남북교류 모색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금강산을 방문해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하고 있다. 2008년 관광이 중단되자 북측이 동결·몰수 해 방치한 건물이다. 북한이 ‘2월 철거’를 통첩했지만 정부는 대북제재를 회피하는 방식의 관광을 추진 중이다. [AP=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10월 금강산을 방문해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하고 있다. 2008년 관광이 중단되자 북측이 동결·몰수 해 방치한 건물이다. 북한이 ‘2월 철거’를 통첩했지만 정부는 대북제재를 회피하는 방식의 관광을 추진 중이다. [AP=연합뉴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건 진리다. 정부 대북정책 추진도 고장난명(孤掌難鳴)이자 줄탁동기(啐啄同機)다. 아무리 좋은 구상과 로드맵을 담았다 해도 북한이 호응하지 않으면 한발도 나가기 어려운 건 분단 역사와 남북교류사가 입증한다. 상대방이 ‘마음은 굴뚝 같은데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채근하고 밀어붙일 필요도 있다. 설득의 전략이 주효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억류·사망 얼룩진 금강산 관광
신변보장 빠진 방북은 위험천만
‘짝사랑’ 대북 정책 부끄러운 일
“잘못된 발걸음 그만 멈추길”

하지만 그럴 겨를이 없거나 국면이 영 아닐 때 상대를 압박하고 재촉하는 건 사태를 더 꼬이게 할 공산이 크다. 자칫 화를 키울 우려도 있고 돌이키기 힘든 상흔을 남긴다. 뿔이 날 대로 나 온갖 험한 말로 몽니를 부리는 평양의 집권자와 당국을 향해 연일 구애 공세를 하는 문재인 정부를 지켜보며 말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갖게 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취재차 떠난 금강산 관광길에서 우리 초등학생 방북객에게 소감을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북한 너무 좋아요. 호텔 침대도 편안하고, 햄과 소시지·고기 반찬도 최고예요.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달라요”라는 말이었다. ‘아뿔싸’ 하는 생각이 뒤통수를 쳤다. 북한 금강산을 찾았지만 그 소년이 묵은 호텔 방과 제공받은 식사는 우리 기업인 현대아산이 현지에 짓거나 리모델링해 운영 중인 시설이었다. 양식 뷔페로 근사하게 차려진 식사도 마찬가지다. 학생의 잘못이 아니었다. 인솔 교사나 가이더, 제대로 된 방북 교육을 해야 하는 정부 부처 중 어느 누구도 이런 사실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러니 초등생들의 ‘북한 찬양’은 당연한 일이었다.
 
꽤 오래전 에피소드지만 금강산 관광이 회자할 때마다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이다. 김대중 정부 집권 첫해인 1998년 11월, 처음 출항한 금강산 관광은 ‘햇볕정책의 옥동자’로 불렸다. 그해 6월 정주영(2001년 작고)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소 떼 방북으로 결실을 본 남북 교류와 경협 프로젝트란 점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현대에 금강산 독점권을 주는 대신 관광 대가로 북한에 9억4200만 달러(한화 1조 985억원)를 지급하는 럼섬(Lump Sum, 총액확정) 방식의 계약에 따른 사업이다.
 
가곡 한 구절처럼 ‘짓밟힌 지 그 몇 해~’하면서 금강산을 그리며 안타까워하던 국민이 앞다퉈 관광에 나서면서 반짝 호황을 맞기도 했다. 하지만 이듬해 6월 관광객 억류 사태가 터지고, 북한이 사소한 트집을 잡아 벌금을 물리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점차 매력을 잃어버렸다. 북한의 군사 도발까지 겹치며 관광객 숫자가 급감하자 정부는 관광 활성화에 기관·단체가 협조할 것을 요구했고, 국민 세금인 남북협력기금을 투입해 취약계층이나 학생들을 단체 관광에 나서게 했다. 보조금을 노린 관광업체와 모집책까지 가세했다. ‘현장 체험을 통한 북한 바로 알기’라는 금강산 관광의 취지는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이명박 정부 출범 넉 달 만인 2008년 7월 터진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은 금강산 길을 완전히 차단해 버렸다. 우리 관계 당국은 시신 부검 등을 통해 북한군 병사가 여성 관광객을 등 뒤에서 조준 사격해 사망케 한 것으로 파악했다. 하지만 북측은 공동 현장조사와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등 필요한 최소한의 후속 조치를 거부하며 늑장을 부렸다. 관광길에 나섰다 참변을 당하고 제대로 된 진상규명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 국민 여론은 싸늘해졌다. 여기에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이 이어지면서 ‘관광 대가로 보낸 달러가 핵·미사일로 돌아왔다’는 비판까지 등장했다.
 
비극은 예고돼 있었다. 1200명의 승객을 태우는 금강호 첫 출항에 앞서 해상안전 문제가 제기됐다. 우리 국민을 태운 선박이 북한 수역을 운항하는 동안 화재나 좌초, 기관 고장 등 재난이 닥쳤을 때 어떻게 구난·구조할 것인가 하는 이슈였다. 북한의 열악한 재난 대처 능력에 맡길 수 없는 노릇이라 우리 해경이나 군 당국의 장비와 병력을 투입하는 문제가 검토됐지만 북한의 거부로 불발됐다. 관광 시작을 서두른 정부는 결국 ‘선(先) 안전 대책, 후(後) 출항’이란 원칙을 접고 배를 북한 장전항으로 보냈다.
 
남북 화해 기류에 도취한 당국자와 전문가·언론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관광 중단 후 부산~제주 노선에 투입된 또 다른 관광선 설봉호에서 2011년 9월 해상 화재가 발생하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 배는 금강산을 340차례나 오간 간판급 관광선이다. 정부 당국과 현대아산 측은 뒤늦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해경의 신속한 투입으로 사망자는 없었지만 금강산 관광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대형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는 사안이란 점에서다.
  
제재 피한 ‘개별 관광’ 아이디어 쏟아내
 
대북 제재의 틈새 벌리기 묘안을 궁리해온 정부가 새해 벽두 금강산 관광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모양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개별관광 형식’을 예시하면서 군불 때기가 이어지고 있다. 북한으로 직접 들어가는 방식과 제3국을 거치는 관광,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남북 연계 관광 등 3가지 형태가 거론된다고 한다. 대통령이 운을 떼자마자 엘리트 관료와 관변 학자·전문가가 신박한 ‘개별관광’ 상품을 내놓고, 유엔 대북 제재 문구를 요리조리 해부해 회피 가능한 아이디어임을 설파하고 있다.
 
2018년 8월 금강산 이산상봉에서 헤어지는 남북 가족. [사진공동취재단]

2018년 8월 금강산 이산상봉에서 헤어지는 남북 가족. [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대의명분을 팽개친 꼼수로는 국민과 국제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정부 주도의 금강산 관광 띄우기는 과거 혈세를 투입해 무차별적으로 관광객 머릿수를 채우던 상황의 데자뷔다. 통일부는 이산가족의 개별관광 구상을 내비치며 경비 지원까지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실향민들은 시쳇말로 “이산가족이 왜 거기서 나와”라는 볼멘소리를 한다. 이번 설에도 이산상봉은 감감무소식인데 관광 운운하는 정부가 못마땅하다는 얘기다. 2년 전 8·15 상봉 이후 정부의 대북정책 리스트에서 이산가족 문제는 실종됐다. 13만 3000여 명의 상봉 신청자 가운데 이미 8만 명이 한을 풀지 못하고 숨졌다.
  
북한, 우리 국민 안전 챙길리 없어
 
관광 강행은 국민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공언해온 정부의 기조와도 어긋난다. 무엇보다 총격 사망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책 마련이 없는 상태다. 대통령에게까지 입에 담기 힘든 모욕과 험담을 퍼붓는 북한이 관광객에 이런저런 해코지할 거란 건 불문가지다. 당국 차원의 신변보장 약속도 뒤집는 북한이 ‘개별관광’에 나선 우리 국민을 챙길 리 만무하다.
 
지금 북한에는 우리 국민 6명이 억류돼 있다. 무기노동교화형을 받은 김정욱 선교사는 6년 3개월을 넘겼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과의 대화 과정에서 억류 대학생 오토 웜비어와 한국계 시민권자를 최우선으로 구출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트럼프와 문 대통령에게 납치 일본인 문제를 김정은에게 전해달라며 백방으로 뛰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런 대통령이나 고위 당국자가 없다. 2018년 4월 판문점 첫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과 4차례 만난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국민을 돌려달라”는 말을 끝내 꺼내지 못했다. 김정은과 북한 앞에서는 유독 나약해지고 말을 잃어버리는 걸 두고 “평양총독부에 사로잡혀 항변 한 번 못한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금강산 개별 관광 강행 입장에 해리 해리슨 주한 미 대사가 대북제재 문제를 거론하자 “신(新)조선 총독부냐”며 당·정·청이 발끈한 걸 빗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코린토스의 왕 시시포스(Sisyphus)는 무거운 바위를 끊임없이 산 정상으로 밀어 올려야 한다. 오만과 거짓된 언행으로 제우스신의 분노를 사는 바람에 무한 반복의 천형을 받은 것이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북 참모, 관련 부처 장·차관과 핵심 당국자들이 쏟아내는 대북 메시지는 시시포스를 방불케 한다. 대책 없는 짝사랑과 일방통행을 넘어 스토커 수준을 넘나드는 대북정책의 부끄러움은 왜 국민 몫이어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실타래처럼 얽힌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의 딜레마 속에 나흘간의 명절 연휴를 맞았다. 팍팍해진 살림 속에 국민의 우려와 고민은 남북관계와 한반도 정세에까지 번질 수밖에 없다. 마치 N극만 가진 듯한 문재인 정부의 나침반에 국제사회의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요컨대 “잘못된 그 발걸음 멈추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자 우방 국가의 호소다. 대통령과 핵심 참모들의 설맞이 회고와 성찰이 절실한 이유다.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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