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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한의 한반도평화워치] 북한을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놓고 봉쇄전략 짜야

중앙일보 2020.01.24 00:17 종합 19면 지면보기

북한 비핵화 실패의 후폭풍

백령도 하늬해안 철책 경계에 나선 해병대 6여단 장병들. 핵·미사일 능력이 향상된 북한이 한국에 무력 도발을 했을 때 한국과 미국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고 있다. [뉴시스]

백령도 하늬해안 철책 경계에 나선 해병대 6여단 장병들. 핵·미사일 능력이 향상된 북한이 한국에 무력 도발을 했을 때 한국과 미국이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기고 있다. [뉴시스]

미국과 북한 간 비핵화 정상외교가 동력을 잃은 지 오래다. 북한은 지난 2년간 미국과 정상외교를 하는 동안에도 핵과 미사일 개발을 멈추지 않았다. 핵탄두 숫자는 더 증가하고 무게는 더 가벼워졌을 것이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능력도 미국 본토의 북동부 특정 지점을 타격할 수준에 근접하고 있을 것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시스템을 기업으로 비유하자면 ‘북한판 록히드 마틴’이라고 봐야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민생 경제를 폭압적으로 희생시키면서 핵과 미사일만큼은 혁신을 거듭해 미국 최대의 군수 기업 록히드 마틴과 같은 국제적 수준의 군수 기업을 만든 셈이다.
 

북한 특수부대가 백령도 점령해 자기 영토라고 하면
미국이 전쟁 감수하고 한국과 탈환 작전 펼칠지 의문
북한 비핵화 실패는 남북 관계 역전시킬 수밖에 없어
개별관광 논할 때 아니고 도발 억제위해 제재의 고삐 죌때

한국의 상당수 전문가가 “북한은 ICBM 재진입(re-entry) 기술을 아직 완벽히 터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시간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이러한 안일함이 지난 25년 동안 북핵 문제를 지속해서 악화시켰다. 설령 북한이 ICBM 핵탄두가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 재진입해 공기 마찰로 인한 고열을 견디며 탄두 손상 없이 목표 지점을 향해 날아가는 기술을 아직 터득하지 못했어도 고도 40~50㎞ 이상에서 기폭장치로 핵탄두를 폭파해 전자기펄스(EMP)를 발생시키는 방법으로 핵 공격을 한다면 재진입 기술 논쟁은 무의미하다는 것이 과학계의 중론이다. 이러한 고도에서는 대기 특성상 재진입체가 견뎌야 하는 6000~7000℃보다 온도가 훨씬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등장했다고 보고 향후 한반도와 동북아에 어떠한 변화를 초래할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그래야만 필요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제재의 고삐를 죄면서 북한을 봉쇄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개별 관광을 논할 때가 아니다.
 
북한 비핵화 실패가 몰고 올 첫 번째 변화는 한반도, 즉 남북 관계의 역전일 수밖에 없다. 한국이 북한보다 몇 배 더 잘 산다고 하더라도 핵을 가진 북한으로부터 재래식 도발과 핵 공갈에 상시 노출되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북핵, 미국 핵우산 신뢰성 논란 불러
 
휴전선 근방에 배치된 북한의 특수작전부대가 어느 날 밤 갑자기 백령도를 기습 점령해 자신의 영토라고 주장하는 사태를 가정해 보자. 기습 점령 직후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이 “백령도는 우리의 영토이며, 남조선이 이를 마치 자신의 영토라고 착각해 재탈환하려고 할 경우 우리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겠다”고 한다면 우리는 핵을 가진 북한을 상대로 백령도 탈환 작전을 전개할 수 있을까. 미국은 과연 ‘제2의 한국전쟁’ 위험을 감수하고 한국과 함께 연합작전에 흔쾌히 응할까. 북한의 핵 보복이 두려워 백령도를 재탈환하지 못한다면 그 이후 남북관계는 완전히 북한이 주도하게 될 것이다.
 
둘째, 미국이 북한의 핵 위협에 대해 동맹국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제공하는 확장 억제(extended deterrence), 즉 핵우산에 대해 근본적 의문이 제기될 것이다. 북한이 남침하건 재래식 도발이 전쟁으로 비화하건 한반도 유사시 북한은 일본과 미국 본토에서 파병하려고 하는 미국을 위협해 미군의 한반도 사태 개입을 저지 또는 지연시키기 위해 핵 위협을 가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은 이러한 위협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며 북한이 한·미동맹을 분리(decoupling)하려고 중거리 미사일이나 ICBM으로 미군의 개입을 저지하는 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냉전 시기 소련의 핵미사일 위협에 노출된 미국의 서유럽 동맹국들은 미국의 핵우산을 충분히 신뢰할 수 없었다. 과연 미국이 소련의 미사일 사거리 내에 있는 워싱턴과 뉴욕을 희생하면서 런던과 파리를 지켜줄 것인지 의심했다. 1964~70년 영국 국방장관을 역임한 데니스 힐리는 자서전에서 “미국은 소련의 핵 공격을 억제하는데 20%의 에너지를 쓴 반면 미국의 동맹국들을 안심시키는데 80%의 에너지를 썼다”고 썼다. 2차 세계대전 종료 후 미국은 소련이 핵으로 서유럽 동맹국을 공격할 경우 대량 핵 보복을 할 것이므로 소련의 핵 공격 가능성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반복적으로 얘기했지만, 동맹국들을 안심시킬 수 없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결국 자체 핵무장의 길을 택했다.
  
북핵은 동북아를 ‘공포의 균형’으로 몰고가
 
북한은 이미 단거리 및 중거리 미사일을 북한 전역에 1000기 가까이 실전 배치해 놓은 상태다. 단거리 미사일은 한국을, 중거리 미사일은 일본을 겨냥한 것이다. 거기에다 2016년과 2017년에 시험한 화성-12, 화성-14, 화성-15는 괌·하와이, 미 본토를 사정권에 두고 있다. 한반도 유사시 주일미군과 유엔사 후방기지, 그리고 미 본토를 위협해 한·미·일 삼각동맹체제의 작동을 저지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한 것이다.
 
미국의 확장 억제가 작동하기 위해선 동맹에 대한 확신, 전진 배치 전략, 확장 억제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상호 이해가 필요하다. 그러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많은 돈을 들여서 동맹을 유지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회의를 가진 지도자다. 게다가 미군의 전진 배치 전략에 대해서도 유보적이다. 미군을 본토에 갖다놓고 유사시 미국의 압도적 수송능력을 바탕으로 파병하면 된다는 식이다.
 
미국이 북한 핵에 대한 확장 억지 작동 메커니즘을 한국과 공유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냥 미국을 믿으라는 식이면 곤란하다. 이러한 방식은 냉전기 서유럽 동맹국들에도 통하지 않았다. 현재 가동 중인 ‘한·미 확장억제정책위원회’를 통해 이러한 문제들을 철저히 점검하고 재평가하여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우리 국민은 결코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핵보유국 북한의 등장은 동북아를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으로 몰고 갈 것이다. 앞서 언급한 백령도 점령과 같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한국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미국 역시 소극적인 모습을 보일 경우 우리 사회 내에 자체 핵 보유 주장이 비등할 가능성이 크다.
  
아베는 미국의 아시아 퇴각 가능성 대비
 
일본의 아베 정부는 크게 내색하지 않지만,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전진 배치 전략을 축소 또는 폐기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아베 신조 총리는 미국과의 철저한 공조를 하는 지도자이지만, 미국의 아시아 퇴각 가능성에 대비해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과 군비 확대를 해야 한다고 믿는 ‘드골주의자’라는 평가가 있다. 미국의 핵우산을 불신하고 자체 핵무장의 길을 택한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과 유사하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동북아에서 한국-일본-대만으로 이어지는 핵무장 도미노가 발생하게 된다. 모두가 핵보유국이 되면 핵무기 사용이 공멸을 초래한다는 ‘상호확증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에 의지해 전략적 안정을 이룬다는 것이 공포의 균형 이론이다. 그러나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처럼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두 개의 초강대국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합리성을 바탕으로 이뤄낸 공포의 균형이 상대를 지척에 두고 민족주의적 감성이 득세하는 동북아에서 제대로 작동할 수 있을까.
 
상대의 핵을 핵이 아닌 다른 무기로 억제할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한 동북아 국가 모두가 핵으로 무장하고 ‘불안한’ 공포의 균형을 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모든 여파를 냉정히 살펴보고 핵보유국 북한에 대한 우리의 전략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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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기펄스(EMP)
전자기펄스(EMP)

전자기펄스(EMP)

핵폭발에 의하여 생기는 전자 충격파. 집적회로(IC)나 고밀도집적회로(LSI) 등을 사용하는 항공기·자동차·휴대전화·컴퓨터 등의 작동을 불가능하게 한다. 컴퓨터를 활용하는 금융시장이나 전력 공급망 등에 타격을 입힐 수 있다.
 

상호확증파괴(MAD: Mutual Assured Destruction)
적이 핵 공격을 가할 경우 적의 공격 미사일 등이 도달하기 전, 또는 도달한 후 생존해 있는 보복력을 이용해 상대편도 전멸시키는 보복 핵전략. 1960년대 이후 미국·소련이 구사했던 핵전략으로, 상호 필멸 전략이라고 도 한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전 외교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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