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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중 꼴등했던 피아니스트, 국제 무대서 피어나다

중앙일보 2020.01.22 11:00
"피아노를 시작한 후 한번도 주류가 아니었다"는 피아니스트 원재연은 지금도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피아노를 시작한 후 한번도 주류가 아니었다"는 피아니스트 원재연은 지금도 자신만의 길을 찾는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국제 콩쿠르에 입상하고, 배움이 시작됐다.”

부조니 국제 콩쿠르 2위 원재연

피아니스트 원재연(32)은 2017년 부조니 국제 콩쿠르에서 2위를 했다.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열리며 마르타 아르헤리치, 알프레드 브렌델이 입상했던 굵직한 대회다. 원재연은 결선 무대에서 베토벤 협주곡 4번을 연주하며 청중 투표로 정해지는 청중상을 받았다.
 
콩쿠르 입상 다음은 연주자로서 삶을 만드는 기간이었다. “한번은 유럽에서 유명한 공연 기획사의 매니저를 만날 일이 있었다.  그가‘이걸 한번 보라’면서 피아니스트들의 이름이 줄줄이 적힌 명단을 보여줬다. 다음 주에 열리는 공연에 피아니스트가 못 나오게 됐는데 그 소식을 알린 지 10분 만에 답장을 보내온 이들이라고 했다. 머레이 페라이어, 니콜라이 루간스키처럼 엄청난 연주자들이었다. 이런 사람들도 연주 기회를 위해 평생 살고 있는데, 네가 할 수 있겠냐는 질문이었다.” 좋은 콩쿠르에 입상한 후 평탄할 줄 알았던 연주자의 길은 쉽지 않았다. “물론 콩쿠르 때 나를 눈여겨봤던 사람들의 소개로 좋은 무대에 설 수 있었지만, 현실적으로는 더 많은 무대와 기회를 원하게 되면서 갈증이 있었다.”
 
피아니스트 당타이손(62)과의 만남은 길을 찾는 물꼬가 됐다. 베트남 출신으로 1980년 쇼팽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던 연주자다. “2016년 일본의 한 콩쿠르에 출전했을 때 심사위원으로 만났다. 1차 무대에서 탈락한 나에게 당타이손이 ‘너는 너만의 음악이 있으니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하면 좋은 연주자가 될 것’이라 했다. 3년 만인 지난해에 이탈리아에서 우연히 다시 만났고 당타이손은 ‘너를 알아본 내 눈이 맞았다’고 확인해줬다.” 원재연은 당타이손에게  음악가의 삶에 대해 물었고 자신의 음악을 잃어버리지 않으며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답을 들었다.
피아니스트 원재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피아니스트 원재연.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유명 콩쿠르 입상으로 답을 얻은 것 같았던 원재연은 이렇게 다시 질문의 시간으로 들어갔다. 지난해엔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피아니스트 마리아 조앙 피레스(76)의 집으로 찾아갔다. 세계적 무대에서 명성을 얻고, 이름 높은 연주자들과 한 무대에 섰지만 포르투갈 중부의 카스텔로 브랑코 산 속에 집을 짓고 사는 조용한 피아니스트다. 원재연은 “피아니스트로서 나와 무척 다르고, 나에게 없는 걸 가지고 있는 연주자였기 때문에 꼭 만나서 배우고 싶었다”고 했다.
 
거기에는 세계 각국에서 피레스에게 배우러 온 젊은 피아니스트 4명이 더 있었다. “여러 곡을 쳤는데, 엄청나게 혼이 났다. 피아노 잘 치는 걸 보여주려는 욕심이 너무 많다고.” 좋은 무대에 서고, 유명한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하고 싶었던 마음이 무의식중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가 얻었던 진정한 배움은 음악 바깥에 있었다. “악보에서 이 부분을 어떻게, 저 부분을 이렇게 치고 같은 기술적인 게 아니라 피레스라는 대 피아니스트가 말하는 방식,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음악 시장을 비판하는 생각 같은 것에서 더 많이 배웠다.” 그는 “앞으로도 찾아가 배우고 싶은 피아니스트가 많고, 여건만 된다면 40세, 50세까지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유연해지는 것이 인생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파주 출신인 그는 “체계적으로 피아노를 못 배우고 예중 입시만 갑자기 해서 선화예중에 입학하게 됐다”며 “첫 시험에서 꼴등 했던 ‘촌놈’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1년 만에 1등을 했고 그 후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까지 수석으로 했다. “처음엔 뒤처졌지만 나만의 강점이 있었는데 연주할 때 주목하게 하는 힘이었던 것 같다.”
 
그 매력은 지금까지도 그의 장점으로 남았다. “다만 늘 호불호가 갈렸다. 어떤 콩쿠르에서든 너무 좋아하는 심사위원과 너무 싫어하는 심사위원이 있었다.” 음악에 대한 자기 생각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원재연의 연주는 시작되는 순간 독특하다는 느낌을 전달한다. 당타이손을 만났던 콩쿠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심사위원은 100점 만점에 70점대를, 다른 심사위원은 99점을 줬다고 했다.” 그는 “어려서부터 만났던 많은 선생님이 ‘너 하고 싶은 것만 하지 말고 내 말 좀 들으라’며 혼을 내셨던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했다.
 
이 주관 뚜렷한 피아니스트는 이제 연주자로서 길이 보이나라는 질문에 “전혀 아니다”라고 답했다. “여전히 무대에 대한 갈망과 현실적 장벽 사이에서 고민하지만, 많은 사람과 대화한 것을 음악 안에 넣으면서 발전하고 싶다.” 원재연은 다음 달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베토벤의 후기 소나타를 중심으로 독주회를 연다. 콩쿠르 이후 첫 공식 국내 무대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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