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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사 붐’ 누구 책임인가···양승태와 거론된 또 다른 이름

중앙일보 2020.01.22 05:00
더불어민주당 '10호 영입 인재'인 이탄희 전 판사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인재영입 발표에서 꽃다발을 받고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10호 영입 인재'인 이탄희 전 판사가 19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인재영입 발표에서 꽃다발을 받고 인사를 하고 있다. [뉴스1]

정치에 각성한 '법복 정치인'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 19일 더불어민주당에 '10호 영입 인재'로 합류한 이탄희 변호사(전 판사)를 포함해 정치권 진출을 염두에 두고 법원을 떠난 전직 판사만 어느덧 네명이다. 판사 퇴직 뒤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직행한 김형연·김영식 전 부장판사를 더하면 문재인 정부에서 정치의 영역에 발을 디딘 판사는 여섯명에 이른다. 
 

늘어난 법복정치인 

이탄희 전 판사(1년)를 제외하고 이들 모두는 최소한의 냉각기 없이 권력에 뛰어들었다. 지난 총선에서 퇴직 직후 총선에 나선 판사가 아예 없었거나(19대 총선) 각각 2명(18·20대 총선) 정도였던 점을 비춰보면 이번 숫자는 이례적이다.
 
총선별 판사 출신 출마자 및 출마 예정·검토자. 그래픽=신재민 기자

총선별 판사 출신 출마자 및 출마 예정·검토자. 그래픽=신재민 기자

법조계에선 이런 '법복 정치인' 현상이 사법부의 독립을 흔들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전례없는 판사들의 출마 러시에 대한 다양한 분석들도 제기된다. 
 
양승태 대법원 사태 뒤 법원 내홍의 반작용이란 지적과 김명수 대법원장의 리더십 실종, 다음 국회에서 사법개혁 이슈를 끌고가려는 민주당의 법관 러브콜, 판사란 직업을 둘러싼 주위 환경의 변화 등이 '법복 정치인'을 양산케 한다는 것이다. 중앙일보는 이런 현상에 대해 이미 정치 출마를 선언한 복수의 전직 판사와 전·현직 법관 10여명에게 의견을 물었다. 
 

양승태와 김명수의 책임 

다수의 현직 법관들은 법복 정치인이 출현한 가장 핵심적인 기폭제로 양승태 대법원 사태와 김명수 대법원장의 리더십 실종을 지목했다. 첫번째 이유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 초래한 법원 내부의 분열과 법관들의 좌절을 꼽는 이들이 많았다. 두번째로 많이 거론된 건 이 사태에서 터져나온 사법개혁의 요구를 감당치 못한 김명수 대법원장의 리더십 실종이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7월 22일 보석으로 풀려나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오종택 기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난해 7월 22일 보석으로 풀려나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오종택 기자

총선 출마를 선언한 한 전직 판사는 "양승태 사태 뒤 법관들은 서로의 진영에서 정치적 충돌을 하기 시작했다"며 "분열된 상황 속에 아무런 해결책이 나오지 않으니 판사들이 직접 정치에 뛰어든 것"이라 말했다. 서울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양승태 사태 이후 법원에 좌절한 판사들이 김명수 대법원의 더딘 개혁 작업에 또 한번 좌절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촉발한 이탄희 변호사도 법원을 떠난 지난 1년간 각종 언론 인터뷰에서 '무책임''냉소''리더십 실종' 등의 단어를 사용하며 김 대법원장을 비판했다.
 
2018년 3월 20일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중 헌법 전문과 기본권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가장 오른쪽이 법원에서 사직한 다음날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직행행했던 김형연 당시 법무비서관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2018년 3월 20일 당시 조국 민정수석이 문재인 대통령이 발의할 개헌안 중 헌법 전문과 기본권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가장 오른쪽이 법원에서 사직한 다음날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직행행했던 김형연 당시 법무비서관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사법부독립은 그냥 해본소리인가 

하지만 이런 시각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지난해 5월 양승태 대법원을 비판하던 김영식 전 부장판사가 퇴직 3개월만에 청와대 법무비서관으로 임명되자 당시 한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 통신망에 "사법부 독립은 그냥 한번 해본소리인가""남이하면 사법부 독립, 내가하면 정의"냐고 김 비서관을 비판했다. 
 
법원 내부에서 사법부 독립을 외치던 판사들이 '법복 정치인'으로 변신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란 지적이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이들이 국회에서 사법개혁을 해낼 것이란 보장은 없지만, 이들의 출마로 남은 법관들의 정치적 중립성은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의 핵심 축으로 지목받고 있는 박주민 최고위원(가운데)의 모습. 2020.1.13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에서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의 핵심 축으로 지목받고 있는 박주민 최고위원(가운데)의 모습. 2020.1.13 [연합뉴스]

수요와 공급이 맞았다

일각에선 올해 검찰개혁에 이어 다음 국회에선 '사법개혁'으로 정국을 주도하려는 여당의 수요와 양승태 대법원 사태 이후 이름값을 올린 판사들간의 공급이 맞아 떨어져 '법복 정치인'이 출현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실제 정치 진출을 선언한 판사들 중엔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명예훼손 재판을 맡았던 장동혁 부장판사를 제외하곤 모두 여당에 합류했거나 합류를 고민 중이다. 한 여당 관계자는 "적폐청산과 검찰개혁은 정리가 됐고 이젠 남은 건 사법개혁"이라며 "여기엔 양승태와 각을 세운 판사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재경지법의 한 현직 판사는 "판사는 천성적으로 안정적인 것을 좋아한다. 여당이 공천을 약속하지 않았으면 정치에 뛰어들지 못했을 것"이라 말했다.
 
다만 야당과 달리 여당에선 이탄희·최기상·이수진 판사 등이 잇달아 출마 의사를 내비치며 판사가 판사를 밀어내는 상황에 처해질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이탄희의 출마 선언으로 최기상과 이수진을 받아줄 여당의 공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김현 전 대한변협 회장은 "진보 성향의 판사들 입장에서 이번 총선은 다시오지 않을 좋은 기회일 것"이라며 "하지만 이분들로 인해 사법부가 받을 상처는 오래갈 것"이라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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