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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당신이 검사냐

중앙일보 2020.01.22 00:20 종합 29면 지면보기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당신도 검사요?”
 
2000년 서울지검의 한 특수부장실,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의 금품수수 의혹을 수사하던 검사가 부장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부장은 정권과의 인연 덕택에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수사 기록을 빼앗는 방법으로 정권에 보은했다. 검사는 “수사를 계속할 수 있게 기록을 돌려달라”고 읍소하다 지쳐 “당신이 검사냐”고 대들었지만 소용없었다. 그 검사는 다음 인사 때 한직으로 쫓겨났다.
 
얼마 전 한 상갓집에서 그 장면이 재연됐다. 본질은 동일했다. 양석조 검사가 상관인 심재철 대검 반부패강력부장에게 “당신이 검사냐”고 대든 건 심 부장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형사처벌(기소) 무마 시도를 했기 때문이었다. 기소됐기에 망정이지 불기소 처분됐다면 단숨에 ‘게이트’(대형 권력형 비리 사건)로 비화할 수도 있었던 사안이다. 명색이 특별수사 총지휘자인 심 부장이 변호사를 방불케 하는 언행을 한 데 대해 검사들이 느꼈을 충격과 허탈감은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가뜩이나 심 부장은 ‘친정권파’로 분류돼 눈총을 받던 상황이었다.
 
물론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표현대로 ‘추태’에 가까웠던 항의 형식에는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에티켓’ 만을 이유로 양 검사에 대한 징계를 운운하는 건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행위 아닐까. 더구나 검찰은 전통적으로 ‘항명’에 대해 비교적 관대한 조직이다. 권력에 대한 수사와 이를 막기 위한 수사 은폐 시도가 왕왕 발생해서다. 공식·비공식 항명은 검사로서 필요하다면 할 수 있는 행위로 간주됐고, 징계로 이어진 경우도 많지 않았다.
 
만일 추 장관이 양 검사에 대해 진지하게 징계를 고려 중이라면 말리고 싶다. 검찰 개혁의 동반자여야 할 검사들을 완전히 등 돌리게 하는, 소탐대실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오히려 이번 사안을 검찰 수사 독립성 확보 방안을 고민하는 계기로 삼았으면 좋겠다.
 
참고삼아 덧붙이자면 서두에 꺼냈던 그 수사 은폐 시도는 1년도 못 돼 들통났다. 수사 대상이던 국정원 간부 본인은 물론, 그 윗선과 정권 실세들까지 줄줄이 구속됐다. 문제의 특수부장은 정권에 해로운 사건을 덮으려 했던 정황이 포착돼 징계보다 더 강한 형사처벌(기소)을 받았다. 제대로 된 징계와 처벌은 이럴 때 하는 거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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