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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가린다, 집값 떨어진다…건축 공사장 '복병' 이것

중앙일보 2020.01.21 10:00

[더,오래] 손웅익의 작은집 이야기(33)

집을 짓다 보면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긴다. 공사현장 주변의 민원이 그중 하나다. 과거에는 일조권이나 사생활 침해, 소음, 조망권 등 공사현장 주변 거주자들의 생활환경과 관련된 피해 민원이 많았다. 이러한 민원인들의 요구가 법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충분히 수긍이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경우는 건축주를 설득해서 민원인의 요구를 일부 수용하면서 타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쉽게 해결점을 찾지 못한다. 그 이유는 서로 간에 극단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첫 만남부터 출구가 없는 듯 감정적으로 부딪히기 때문이다.
 
공사 현장 주변 거주자들의 생활 환경과 관련된 피해 민원이 발생하면 타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민원은 어느 공사현장이건 피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막상 피해를 보는 당사자들은 괴롭다. [사진 pixabay]

공사 현장 주변 거주자들의 생활 환경과 관련된 피해 민원이 발생하면 타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민원은 어느 공사현장이건 피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막상 피해를 보는 당사자들은 괴롭다. [사진 pixabay]

 
건축설계를 진행하기 전에 현장답사를 가 보면 민원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현장인지 금방 알 수 있다. 인접 필지의 집이 신축 필지 방향으로 향해 있다면 무조건 민원이 발생한다고 봐야 한다. 거실이나 안방 창이 크게 나 있고 마당까지 다 신축필지와 마주하고 있다면 일단 심각한 사생활침해 피해를 보게 된다. 공사 진행 중에 발생하는 소음, 진동, 먼지는 일상생활을 힘들게 한다.
 
어느 공사현장이건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긴 하지만 막상 피해를 보는 당사자들은 괴롭다. 골목이 좁아서 공사 차량이 드나들기 곤란한 경우는 집단 민원의 소지가 있다. 좁은 골목에 자재 차량이 들락거리는 것이 위험하기도 하고 주차된 주민 차량과 공사 차량 출입문제로 자주 시비가 붙는다. 집단민원이 발생하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다. 군중심리가 발동하면서 더 과격해지고 요구사항이 더 많아진다.
 
대체로 민원은 금전적인 보상으로 종료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공사현장 주변에 민원 브로커가 활동하기도 한다. 그런 브로커들은 건축법도 잘 알고 판례도 꿰뚫고 있다. 그들은 공사현장 주변으로 이사 다니면서 주민을 선동하고 집단민원을 제기해서 보상을 받아내는 것을 사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악질 민원 브로커에 걸리면 공기도 지연되고 금전적으로도 큰 피해를 본다.
 
 
민원이라고 하면 공사현장 주변에서 제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간혹 해당 필지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제기하는 황당한 민원도 있다. 재활용물품 사업을 어렵게 하는 지인에게 십수 년 간 주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전세보증금을 받고 땅을 임대해준 분이 있었다. 사정이 딱해서 계속 임대하는 동안 전세보증금을 올리지 않았다.
 
계약이 만료된 어느 해 땅 주인이 주유소를 지으려고 자리를 비워달라고 요구했으나 세입자는 완강히 버텼다. 자기가 낸 전세보증금으로는 다른 곳으로 이사 가서 이만한 공간을 확보할 수 없으니 전세보증금에다 이전할 수 있는 돈을 얹어 달라고 버티는 것이었다. 배은망덕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설득과 타협을 시도했지만, 감정의 골만 깊어졌다. 결국 명도소송으로 해결이 되었다. 건축주는 사업계획이 연기되어 입게 된 막대한 피해보다 더한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되었다.
 
강남 고급빌라단지가 밀집한 지역 인근에 치과 건물을 설계한 적이 있다. 빌라에 바로 인접한 것도 아니고 4층으로 규모가 그리 큰 건물도 아니었다. 그런데 이런 근린시설이 빌라단지 인근에 들어오면 단지 이미지가 나빠지고 가격도 하락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집단민원이 제기되었다. 일조권, 사생활 침해 등 일상생활과 관련된 민원이 아니라 집단 이기주의 성격의 민원이었다.
 
강남 고급빌라단지가 밀집한 지역 인근에 치과 건물을 설계한 적이 있다. 빌라에 바로 인접한 것도 아니고 4층으로 규모가 그리 큰 건물도 아니었는데 집단민원이 제기되었다. [사진 pixabay]

강남 고급빌라단지가 밀집한 지역 인근에 치과 건물을 설계한 적이 있다. 빌라에 바로 인접한 것도 아니고 4층으로 규모가 그리 큰 건물도 아니었는데 집단민원이 제기되었다. [사진 pixabay]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인허가를 받고 내 땅에 내 집을 짓는데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민원까지 발생하면 건축주는 답답해진다. 건축주는 단호했다. 억지 민원이라 통보하고 취하를 요구했으나 반응이 없자 바로 법적 소송으로 들어갔다. 공기 연장에 대한 손해배상 부담까지 안게 된 민원인들은 즉시 민원을 취하했다. 그 민원은 신축 자체를 집단으로 거부하는 것이었으니 얼마나 이기적인 행태인가. 공사가 완공된 후 빌라 주민 중에 상당수가 그 치과를 이용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이처럼 요즈음 집단민원은 그 목적이 달라졌다. 내가 사는 지역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오는 걸 결사반대한다. 청년들을 위한 청년임대주택도 예외가 아니다. 노인 요양시설도 안 되고 장애인학교도 안 된다는 식이다. 결사반대 이유는 단 하나, 내가 사는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타인의 권리와 행복한 삶은 이제 우리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죄 없는 청년들과 학부모들이 흥분한 주민들 앞에서 무릎 꿇고 사정하는 어이없는 사태는 얼마나 우리 사회가 비정상적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무소불위의 집단민원 앞에 ‘역지사지’는 박제가 된 고사성어의 하나일 뿐이다.
 
프리랜서 건축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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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웅익 손웅익 프리랜서 건축가. 수필가 필진

[손웅익의 작은집이야기] '사람은 공간을 만들고, 공간은 사람을 만든다.' 더위와 추위를 피하고 휴식을 취하기 위한 집, 투자와 과시의 대상으로의 집에서 벗어나 집은 살아가는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건축가이자 수필가인 필자를 통해 집의 본질에 대해, 행복한 삶의 공간으로서의 집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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