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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도 울먹이며 사과···여순사건 민간 희생자 72년만에 무죄

중앙일보 2020.01.20 17:06
여순사건 당시 반란군에 협조했다는 누명을 쓰고 사형당했던 민간인 희생자가 72년만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억울하게 사형당한 여순사건 민간인 피해자 중에서 첫 무죄 판결이다. 재판부는 위법한 공권력에 대한 사과도 전했다.
 

광주지법 순천지원 여순사건 희생자 장환봉씨 무죄 선고
'반란 협력' 누명쓰고 계엄군에 체포된지 22일만에 사형
유족·여순사건 대책위 "명예회복 위해 특별법 제정 중요"

20일 오후 전남 순천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열린 여순사건 재심 선거공판에서 남편 고(故) 장환봉씨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가운데 고인의 부인 진점순씨(97·오른쪽)와 첫째 딸 장경자씨(75)가 언론 인터뷰 도중 눈물 흘리고 있다. [뉴스1]

20일 오후 전남 순천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열린 여순사건 재심 선거공판에서 남편 고(故) 장환봉씨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가운데 고인의 부인 진점순씨(97·오른쪽)와 첫째 딸 장경자씨(75)가 언론 인터뷰 도중 눈물 흘리고 있다. [뉴스1]

광주지법 순천지원 형사1부(김정아 부장판사)는 20일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 재심 선고 공판에서 내란죄와 국가 문란 죄로 사형이 집행된 고 장환봉씨(당시 29세)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여순사건은 지난 1948년 10월 여수에 주둔하던 국방경비대 14연대 군인 2000여 명이 제주 4·3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하고 무장반란을 일으키며 시작됐다. 정부 계엄군과 반란군 사이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좌익과 우익의 이념대립 속에 희생됐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009년 여순사건 때문에 438명의 민간인이 무고하게 희생됐다고 결론지었었다.
 
장환봉씨도 무고하게 희생된 피해자 중 한명이다. 장씨는 1948년 10월 여순사건 당시 순천역에서 철도기관사로 근무하면서 14연대 군인들에 협력했다는 이유로 계엄군에 체포됐다. 장씨는 계엄군에 체포된 지 단 22일 만에 처형됐다. 장씨의 딸 장경자(75)씨가 지난 2013년 재심을 청구했고 대법원은 지난해 3월에야 민간인 희생자가 적법한 절차 없이 체포·구속됐다 보고 재심을 결정했다.
 
재판부는 억울하게 희생된 민간인 희생자에 사과했다. 김 부장판사는 "사법부 구성원으로서 이번 판결의 집행이 위법한 공권력에 의한 것이었음을 밝히며 깊이 사과드린다"며 "여순사건 희생자들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고단한 절차를 더는 밟지 않도록 여순사건 특별법이 제정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20일 오후 전남 순천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박성경 공보판사가 여순사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선고된 배경을 밝히고 있다. [뉴스1]

20일 오후 전남 순천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박성경 공보판사가 여순사건 재심에서 무죄 판결이 선고된 배경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이어 "장환봉씨는 좌익, 우익이 아닌 명예로운 철도공무원이다"며 "70년이 지나서야 (판결이) 잘못됐다고 선언한 것에 사과드린다"고 했다. 김 부장판사는 판결을 밝히다 한때 울먹여 방청석으로부터 박수를 받기도 했다.
 
72년만의 재심에서 첫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장씨가 내란죄 등으로 사형을 받을 당시 판결서가 존재하지 않아 검찰이 공소사실을 특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유족과 여순사건 재심대책위원회가 국가기록원 등에서 1948년 국법회의 판결명령서 등을 찾아 재판부에 제출했다. 검찰은 재심 개시 7개월 만에 장씨에 대한 공소사실을 특정했고 지난달 23일 장씨에 대해 "내란죄와 국권 문란 죄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구형했다.
 
장씨의 유족과 시민들은 기쁨과 함께 '여순사건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장환봉씨의 딸 장경자(75)씨는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져 기쁘다"며 "국가가 이제나마 사과를 했는데 여순사건 특별법이 하루빨리 제정돼 억울한 누명을 풀어주길 바란다"고 했다.
20일 오후 전남 순천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열린 여순사건 재심 선거공판에서 고(故) 장환봉씨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가운데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가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20일 오후 전남 순천시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에서 열린 여순사건 재심 선거공판에서 고(故) 장환봉씨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가운데 여순사건재심대책위원회가 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여순사건 재심대책위원회는 20일 광주지법 순천지원 앞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1948년 당시 민간인에 대한 국법회의에서 유죄를 받은 사람이 3000~5000명에 이른다"며 "불법과 위법 때문에 학살된 여순사건 민간인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순천=진창일 기자 jin.cha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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