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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북한 개별 관광, 美대사 때리기에 앞서 정부는 신변 보장부터 받아야

중앙일보 2020.01.20 16:49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연합뉴스]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연합뉴스]

 
연초부터 금강산 개별관광 재개를 놓고 한ㆍ미가 티격태격하고 있다. 특히 해리 해리스 미국 대사의 16일 기자 대상 간담회 발언을 놓고 당·정·청은 '주권 침해'라며 일제히 발끈하고 나섰다.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금강산 개별관광 문제를 띄운 것에 대해 해리스 대사가 “제재 위반을 촉발할 수 있는 부분은 한·미 워킹그룹에서 협의해야 한다”고 한 것을 두고서다.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보면 금강산 관광 그 자체는 제재 사항이 아닌 것은 맞다. 그런데 조금만 깊게 들어가면 걸리는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정부가 진정 금강산 관광 재개를 원한다면 '주권'을 거론하기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 수두룩하다.
 
 ① 세컨더리 보이콧도 적용되지 않는다?=통일부는 20일 ‘개별관광 참고자료’를 통해 “개별관광은 유엔 제재 대상에 해당하지 않고, 대북 제재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에 세컨더리 보이콧(제3자 제재)도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통일부는 이날 대북 제재 담당 부서가 있는 외교부와 논의 없이 해당 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제재 문제는 이렇게 단정적으로 적용되지 않는다고 볼 수만은 없다.
 
여행할 때 몸만 왔다 갔다 할 수는 없다. 안전한 여행을 위해 보험도 필요하고 짐꾸러미 안에 카메라, 노트북 등 각종 물품을 가지고 가야 한다. 이런 물품 반입에 제재 위반 소지가 있는지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일례로 유엔 안보리 2397호는 모든 기계류를 북한에 공급·이전하는 것을 금지하는데 디지털카메라ㆍ반도체ㆍ배터리 등 첨단 장비가 여기 해당한다. 이런 물품들이 북한에 흘러 들어갔을 때 무기 개발에 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여행 방식에 따라 단체 관광으로 버스를 대절하거나 해상 크루즈선으로 여행객을 실어 나르려면 차량·선박은 반드시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해상 보험의 경우 보험사가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을 우려해 보험 가입을 거부할 수 있다. 보험 가입이 안 되면 선주들은 배를 띄우려 하지 않는다. 지난해 대북 쌀 지원을 검토할 때도 정부는 비슷한 문제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②국내 여론 설득은=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피격 사건 이후 신변 안전 보장 문제도 여태껏 속 시원히 해결되지 않았다.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발표된 5.24 조치는 국민의 방북을 원칙적으로 불허하고 있다. 금강산 관광이 활성화되려면 5.24 조치를 사실상 해제해야 하는데 이에 대한 정부 입장은 모호하다. 만약 무리하게 밀어붙였다가 불의의 사고라도 발생할 경우 남북 관계는 오히려 돌이킬 수 없이 악화할 수 있다. 
 
③북한 개별 관광 비자를 내줄까=북한으로선 과거처럼 대규모 관광 사업이 아닌 개별 관광은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있다. 대량 현금(벌크 캐시) 유입은 대북제재 사항이다. 미국의 독자 제재 규정상 ‘비상업적 용도’의 경우 개인이 북측에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은 연간 최대 5000달러(약 579만원)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선 소규모 관광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정부는 “북측은 개별관광에 대해 아직 공식적인 반응을 보인 바 없다”며 안이한 인식마저 보이고 있다.
 
중국 등 제3국을 경유한 관광이든, 자가용 관광이든 정부는 이런 질문들에 먼저 충실히 답변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민의 생명과 재산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등한시한 채 해리스 대사의 발언에만 비판의 날을 세우는 건 우려스럽다. 특히 외교 사절에 대해 외모나 인종적 배경을 문제 삼는 건 지양해야 한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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