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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탁엄마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에 대처하는 법

중앙일보 2020.01.20 15:00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16) 

 
위탁엄마라고 하면 ‘좋은 일’한다며 남다르게 쳐다본다. 욕심도 없고, 완벽한 이타심을 가진 사람, 날개 없는 천사쯤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사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건 원고를 쓸 때 가장 잘 드러난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활자로 찍어내는 내 모습은 욕심과 질투, 체면과 조바심의 언어들이다. 거기엔 좋은 일하는 나도 없고, 완벽한 이타심의 나도 없다. 그저 벌거벗은 한 사람만 있을 뿐이다.
 
재빨리 백스페이스(backspace)로, 딜리트(delete)키로, 내 모습을 지운다. 조금은 달라 보이고 싶은 욕심, 조금은 이타적으로 보이고 싶은 욕심에서다. 좋은 일 한다고 칭찬받는 내 모습은 ‘페르소나’일지 모른다.
 
원고를 쓰는 이 시간만큼이라도 가면을 벗어놓자. 어릴 적 숨바꼭질 놀이처럼 내 안에 숨겨 둔 것들을 찾아보자. 조금씩 벗겨내면 나 또한 자유로워지겠지. 선과 악, 신중함과 충동성, 친절과 야만의 가면들을….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영이는 순이를 찾고, 나는 당신을 찾고
찾았다, 찾았다. 당신의 하얀 거짓말
나무 뒤에 숨어서
조사 몇 개를 넣었다 뺐다, 다시 넣는
당신의 왼쪽 입꼬리가
올라간다. 얼레리 꼴레리
오른쪽 입꼬리가 올라간다
얼레리 꼴레리
 
그런데 당신을 찾는 나는 어딨는 거야
밤새도록 당신을 찾아다닌 나는 어딨는 거야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난삽하게 엉클어진 당신의 말보다
더 난삽한 나를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해그림자는
길어


 
입꼬리는
  씰
    룩
  이

 
못 찾겠다 꾀꼬리
못 찾겠다 꾀꼬리….
                                      필자의 졸시 「하이데거의 놀이터에서」 전문

 
엄마랑 은지. 은지가 그려주는 엄마 모습은 항상 웃고 있는 공주다. 올해도 웃을 일이 많은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사진 배은희]

엄마랑 은지. 은지가 그려주는 엄마 모습은 항상 웃고 있는 공주다. 올해도 웃을 일이 많은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사진 배은희]

 
다른 사람의 말에 상처받은 날이었다. 그 말의 저의가 무엇인지 생각의 숲을 이리저리 찾아 헤맸다. 나무 뒤에서, 우거진 수풀에서 마주한 건 가면을 겹겹이 쓴 이기심이었다. 사람이 이런 건가, 인간관계가 이런 건가…. 회의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찾은 것이 ‘나’였다. 더 겹겹이, 더 꼭꼭 숨은 자아였다.
 
지난주는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오르게 했다. 비수 같은 댓글과 본명을 숨기고 히죽히죽 웃고 있는 말들을 보다가 그 말의 저의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의 숲을 헤맸다. 나무 뒤에서, 우거진 수풀에서, 다시 가면을 겹겹이 쓴 이기심을 만났다. 그리고 ‘나’를 찾았다. 역시나 더 겹겹이, 더 꼭꼭 숨은 자아였다.
 
의사이자 작가인 디팩초프라는 『바라는 대로 이루어진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타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모든 관계는 의식의 진화를 위한 수단이 된다.”
 
‘제 자식도 아니면서….’
‘위탁엄마면서 시인이라고 자랑하는 거냐?’
‘책 쓸 소잿거리 찾느라 위탁부모 했군.’
 
댓글 속에서 내 모습을 발견하기까지 며칠이 걸렸다. 보고 싶지 않아서, 내 민낯이 들키는 게 싫어서 화가 나기도 했다.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결국엔 자기를 찾는 거라는 걸, 또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좋은 일’도 결국엔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위탁엄마가 되어 돌쟁이 은지를 키우면서 수없이 밤잠을 설치고, 살을 비비고, 내 지갑을 연 것은 내가 완벽한 이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나를 찾고 싶은 욕심이 더 강해서가 아닐까?
 
원고를 마무리하는 지금, 댓글에 일희일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해 본다. 그건 결국 내 모습이고, 내가 받아들이는 만큼 성장할 수 있는 거니까. 아프고 매서운 댓글에 나를 비춰보며 조금 더 다듬어 보겠다고 욕심을 부려본다.
 
흔히 말하는 ‘좋은 일’이 별건가? 열심히 일하는 것도 ‘좋은 일’이고, 꼬박꼬박 세금을 내는 것도 ‘좋은 일’ 아닌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보글보글 찌개를 끓이는 것도 모두 ‘좋은 일’ 아닌가?
 
결국 ‘좋은 일=나를 찾고, 내 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나는 위탁엄마로서의 자리를 지키며 ‘좋은 일’에 동참하는 것뿐이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조금씩 성장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서로의 존재를 고맙게 여기면서, ‘좋은 일’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가정위탁보호제도는 친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학대, 방임, 질병, 수감, 경제적 이유 등)일 때, 아동을 다른 가정에서 일정기간 보호해 주는 제도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정신에 기초한 '선 가정보호, 후 시설보호'를 바탕으로 하여, 2005년 아동복지법에 '가정위탁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정착되었다. [가정위탁 홍보 포스터]

가정위탁보호제도는 친부모가 아이를 키울 수 없는 상황(학대, 방임, 질병, 수감, 경제적 이유 등)일 때, 아동을 다른 가정에서 일정기간 보호해 주는 제도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정신에 기초한 '선 가정보호, 후 시설보호'를 바탕으로 하여, 2005년 아동복지법에 '가정위탁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정착되었다. [가정위탁 홍보 포스터]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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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은희 배은희 위탁부모·시인 필진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 제주도에 사는 시인. 낮엔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에서 일하고, 밤엔 대학원에서 공부한다. 색다른 동거를 시작한 건 5년 전이다. 매너 있고 돈 많은 남자와 사는 게 아니라, 작고 여린 아기와 하는 동거다. 우린 동거인이면서 가족이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위탁가족’이다. 우리의 색다른 동거가 ‘사랑’으로 전해지길 기도한다. 동거는 오늘도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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