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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 숨쉬기도 힘든데 마스크 쓰라니" 정부 보급정책 논란

중앙일보 2020.01.20 10:55
지난 17일 오전 대전시내 한 경로당. 경로당 안 조그만 창고를 열자 포장지를 뜯지 않은 미세먼지 방지용 마스크가 눈에 들어왔다. 1개 포장 용기에 5개씩 담긴 마스크는 모두 100여개는 돼 보였다. 경로당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지난해 12월께 노인들에게 보급된 마스크"라며 "필요한 분들이 갖다 쓰도록 했는데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어 보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부, 올해 984억원 짜리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사업
저소득층 중심 전국 246만명에 50개씩 무료 지급
지난해 보급한 마스크도 일부 경로당 등에 방치
"국민 입막음용 마스크냐. 생필품 달라"며 시큰둥

대전시내 한 경로당에 보관중인 미세먼지 마스크.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시내 한 경로당에 보관중인 미세먼지 마스크. 프리랜서 김성태

정부가 추진하는 저소득층 대상 미세먼지 마스크 무료 보급사업이 논란에 휩싸였다. 정부가 국민에게 마스크까지 나눠주는 게 ‘복지과잉’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 마스크를 원하지 않은 국민도 많아 예산 낭비 시각도 있다. 
    
15일 보건복지부와 각 지자체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기초생활수급자, 차상위계층, 생활시설 거주자 등 저소득층과 노약자 246만명에게 미세먼지 마스크를 보급한다. 여기에 들어가는 예산은 총 984억원이다. 국비가 460억원, 나머지는 지자체 예산이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에도 추경 예산 194억원을 편성해 미세먼지 마스크를 보급했다.  
 
마스크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인증한 제품을 사도록 했다. 마스크 구매 단가는 800원이며, 지자체별로 사도록 방침을 내렸다는 게 보건복지부의 설명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사업은 저소득층 건강 보호와 상대적 박탈감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대전시내 한 경로당에서 주민이 사용하지 않은 마스크를 보여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대전시내 한 경로당에서 주민이 사용하지 않은 마스크를 보여주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마스크는 지자체가 읍·면·동 사무소를 통해 주민에게 나눠준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에게는 공무원이 직접 가서 전달하거나 경로당 등을 통해 보급한다. 일부는 읍·면·동 사무소에 직접 와서 찾아가도록 했다. 마스크는 1인당 50개씩 준다. 주요 시·도별 올해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사업 예산을 보면 ^서울 158억원^부산 79억4700만원^대구 57억5900만원^인천 51억8600만원^광주 41억9600만원^대전 24억1300만원^경기 191억6700만원 등이다.  
 
미세먼지 마스크 보급사업에 대한 반응은 시큰둥하다. 대전의 한 구청의 복지담당 직원은 “정부가 국민의 건강을 챙기는 것은 이해하지만, 과연 마스크 보급이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라고 했다. 이 직원은 “관내 저소득층 주민에게 마스크를 가져가라고 안내해도 찾아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지난해 보급한 마스크가 아직도 주민자치센터(동사무소)에 쌓여 있다”고 했다.  
 
대전지역 동사무소에서 마스크 보급 업무를 담당한 직원은 “정말 이 사업이 필요하다면 마스크를 직접 주는 것보다는 바우처 형식으로 마스크 구매권을 줘서 필요한 사람이 직접 사도록 하는 게 낫다”고 했다. 
 
부산 동래구 사직1동 주민센터는 지난해 12월 마스크(40개들이 464개)를 받았으나 현재 절반 정도인 230개 정도만 나눠줬다고 한다. 사직1동 담당자는 “주민센터 오면 주고 아니면 상담 나가서 주고 하는데 대상자들이 안 찾아간다. 필요 없다고 하는 분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담당자는 “빨리 나눠줘야 하는데 골치 아프다”고 덧붙였다. 국회 예산정책처도 지난해 "수요 조사를 제대로 안 해 마스크가 남아돌고 있다"며 이 사업을 대표적인 '재정 누수' 사례로 꼽았다.
 
주민들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대전시 서구에 사는 배모(78)씨는 “노인들은 가만히 있어도 숨쉬기도 힘들 때가 있는데 마스크를 쓰고 다니겠냐”며 “일부에서는 ‘국민 입을 막으려고 마스크를 나눠주는 게 아니냐’는 불만의 말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마스크를 받은 대전 중구의 한 주민은 “마스크보다 더 생활에 직접 보탬이 되는 걸 주는 게 낫다”고 했다.
 
전북 완주군 상관면의 한 마을 이장 A씨(73)는 "마스크를 받은 사람 대부분은 거동이 불편한 저소득층이다 보니 외부 활동이 적어 마스크 쓸 일이 별로 없다"며 "노인이 미세먼지에 취약하다면 마스크를 모든 노인에게 보급하거나 보건소에서 정기적으로 경로당을 방문해 호흡기 검사를 하고 처방도 해주는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강원도 춘천에 사는 김모(81)씨는 “라면이나 쌀 등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을 주는 게 낫다"고 했다.  
 
미세먼지 대응책으로 마스크를 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식품의약처(FDA)에 따르면 만성 호흡기 질환과 심장 질환, 기타 숨을 쉬기 어려운 사람들은 마스크를 사용하기 전에 의사 등 전문가와 상의하라고 권고한다.
 
미국 흉부학회(American Thoracic Society)도 가이드라인을 통해 보호용 마스크를 착용하면 숨쉬기가 힘들어져 육체적 부담을 준다고 경고한다. 1회 호흡량을 감소시켜 호흡 빈도를 증가시키고 폐포와 폐에서의 환기를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심박출량 감소와 같은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배재대 행정학과 최호택 교수는 “각종 현금복지 등 무상복지가 넘쳐나는 데 정부가 마스크까지 무료로 지급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느낌이 든다”며 “무분별한 복지는 나라 살림을 멍들게 하고 결국 후세에게 짐을 지우게 된다”고 말했다.  
 
대전·부산·춘천·전주=김방현·황선윤·박진호·김준희 기자 kim.ba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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