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감옥서 보내는 밤이 너무 아름답다'는 어떤 수감자

중앙일보 2020.01.20 07:00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31)

 
지난달 기고했던 어린이집 성폭력 사건은 또래 간에 발생한 성 학대 문제였다. 아동에게 일어날 수 있는 성적인 학대와 폭력은 80%가 또래를 포함해 아는 사람과 관련이 있다. 그중에는 친족 성폭력도 상당수를 차지한다.
 
오늘 뉴스에서 초등학생 때부터 무려 7년 동안이나 친아빠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당한 자매 소식을 들었다. 그 폭력 뒤에는 엄마의 묵인이 있었다. 친족 성폭력은 말하고 드러내기가 어려운 주제다. “친아버지 맞아? 설마….” “그 일이 일어나는 7년 동안 엄마는 무얼 했지?” “그럼 집을 나와야지. 그리고 도움을 청했어야지.” 이런 의문투성이의 폭력 피해가 친족 성폭력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부부 이외의 가족 또는 친족 관계에서의 ‘성적(性的)’ 행동은 더욱 세상에 드러내기 힘든 문제로 여겨진다.
 
피해자에게 비밀을 강요하고, 너의 잘못이라고 말할 때 가해자의 부당한 성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피해 상처는 결국 우울과 불안, 무기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진 Pixabay]

피해자에게 비밀을 강요하고, 너의 잘못이라고 말할 때 가해자의 부당한 성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피해 상처는 결국 우울과 불안, 무기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사진 Pixabay]

 
친족 간 성폭력의 심각성을 알린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있다. 1991년 검찰 고위 공무원이 자신의 딸과 그의 남자친구가 계획한 범행으로 인해 살해된다. 가해자로 지목된 연인은 사건의 동기를 자백했고, 범행 이유를 들은 많은 사람은 사건의 배경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사건의 내용을 들어 보니 새아버지는 딸이 아홉 살이 됐을 때부터 대학생 때까지 무려 13년 동안 강간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의붓아버지는 엄마와 딸을 번갈아 성폭행했다는 것이다. “너도 내 여자이니 엄마에게 형님이라고 불러라”고 조롱하면서 말이다. 딸이 대학에 가고 남자친구가 생기는 과정에서 새아버지는 철저하게 딸을 통제했다. 13년간 성폭력 피해를 받으며 모녀는 경찰에도 수차례 신고했었다 한다. 그러나 별 도움을 받지 못했다.
 
“구속된 후 감옥에서 살아온 7개월이 지금까지 살아온 21년보다 훨씬 편했습니다. 밤이라는 시간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것을 처음 알았습니다. 더는 밤새도록 짐승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살인죄로 감옥에 갇혀 있던 성폭력 피해자의 상처를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편지 내용이다. 많은 사람에게 친족 성폭력을 인지하게 한 이 사건을 계기로 성폭력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이전에는 친족 성폭력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제3자에 의한 고소가 불가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 제3자가 신고할 수 있게 됐다.
 
“아빠는 내가 건강하게 잘 크는지 확인하는 거라면서 가끔씩 불러 내 몸을 살피고 만졌다. 자신의 몸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상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었지만 그런 행동 뒤에는 항상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사줘서 내가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검찰 고위 공무원이 자신의 딸과 그의 남자친구가 계획한 범행으로 인해 살해된다. 가해자로 지목된 연인은 사건의 동기를 자백했고, 범행 이유를 들은 많은 사람은 사건의 배경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사진 Pixabay]

검찰 고위 공무원이 자신의 딸과 그의 남자친구가 계획한 범행으로 인해 살해된다. 가해자로 지목된 연인은 사건의 동기를 자백했고, 범행 이유를 들은 많은 사람은 사건의 배경을 듣고 충격에 휩싸였다. [사진 Pixabay]

 
친족 성폭력의 경우 대부분 지속해서 피해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친족으로부터 어린 시절부터 성폭력 피해를 받는 경우 어린 피해자들은 이것이 성폭력 피해인지, 특별한 사랑의 표현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는 대개 아빠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고 가해자의 행동이 반복되면서 자신이 이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많은 경우 학교에서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거나 언론의 보도를 접하면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이 성폭력 피해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다. 
 
대부분 친족 성폭력 피해자의 가정을 보면 부모가 이혼하거나 조부모와 함께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위 사건처럼 아버지의 폭력에 자녀가 무방비로 노출되도록 방치하는 엄마는 왜 딸의 입장에서 더 이상의 피해를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일까?
 
가정 내 성폭력이 일어나는 대부분의 가정은 엄마 역시 폭력에 시달리거나 경제적 무기력 등으로 스스로가 판단 능력을 상실해 도와줄 힘을 잃은 경우가 많다. 그들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인 셈이다. 그렇다고 엄마의 무책임함을 정당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안에서 어린 성 학대 피해자는 자신을 괴롭히는 아빠에 대한 상처보다 보호해 주지 않는 엄마에 대한 원망이 더 큰 경우도 많았다.
 
가족 내 성 학대 피해자들은 신고한다 하더라도 돌아갈 곳이 없다. 아동은 경제적으로 온전히 부모에게 의지해야 하는 현실적인 약자이기에 자신에게 벌어진 사건을 드러내기가 힘들다. 신고하더라도 다시 원래의 가정으로 돌아와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그리고 나를 보호해 주지 않았지만 부모의 사랑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이렇기에 가해자는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가족이 깨질 수 있다’ ‘너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아무 문제없어’라며 끊임없이 협박하고 침묵을 강요한다.
 
가족 내 성폭행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은 심각한 폭력, 인권 침해 사건으로 봐야 한다. 당사자들은 용기를 내 피해를 털어놓아 도움을 받고, 주변인은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며 응원해야 한다. [사진 Pixabay]

가족 내 성폭행 문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은 심각한 폭력, 인권 침해 사건으로 봐야 한다. 당사자들은 용기를 내 피해를 털어놓아 도움을 받고, 주변인은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며 응원해야 한다. [사진 Pixabay]

 
“26세 직장인. 초등학교 5학년이었던 14년 전 추석. 사촌이 자고 있는 자신에게 다가와 가슴을 만지고 자신의 성기를 만지게 했다. 나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그제야 사촌은 추행을 멈췄다. 몇 년이 지난 후에야 이것이 강제추행이라는 것을 알았고, 부모에게 사실을 털어놓았지만 ‘네가 용서해라’였다. 이후 신고하고 싶어 경찰서 앞까지 가봤지만 차마 신고할 수 없었다. 그 기억은 시간이 지나도 너무 생생하다.”
 
이 글은 2018년 미투 운동으로 한참 뜨거운 시점에 익명성이 보장된 ‘대나무숲’에 ‘패밀리 미투’라는 이름으로 올라온 글이다. 대부분 친부 혹은 의부, 사촌, 삼촌, 친형제 등에 의해 벌어진 친족 내의 성폭력 피해에 관한 이야기였고, 오랜 시간 마음속에 꼭꼭 숨겨 왔던 가족 내의 이야기들이었다. 이렇게 가족 간에 일어나는 성폭력 문제는 ‘암수범죄’로 드러내기도 쉽지 않고, 더구나 정확한 통계도 잡히지 않는다.
 
가정폭력 신고율은 어느 폭력보다 낮다. 통계상으로 보면 성범죄의 11.3%가 친족 간 성폭력이다. 그러나 친족 간의 성폭력 범죄로 신고하는 경우는 100명 중 4명 정도다. 가족 내 성폭력 문제는 가정 안의 권력 문제다. 성별(gender)에 기반해 발생하는 약자에게 가해지는 폭력(젠더 폭력)이다. 가족주의 이데올로기가 명확한 한국에선 가정의 평화를 깨면서 부끄러운 사실을 드러내지 않고 약자인 피해자가 입을 다물게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가 드러났을 때 주변 사람은 가해자를 옹호하지 말고 피해자 입장에서 봐야 한다.
 
피해자에게 비밀을 강요하고, 너의 잘못이라고 말할 때 가해자의 부당한 성 행동은 멈추지 않는다. 피해 상처는 결국 우울과 불안, 무기력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아빠나 오빠에게 받지 못한 이상적인 사랑의 모습을 다른 곳에서 찾으려 애쓰는 또 다른 피해가 발생한다. 가족 내 성폭행 문제는 가족 간의 문제로 보지 말아야 한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은 심각한 폭력이고, 인권 침해 사건으로 봐야 한다. 당사자들은 용기를 내 피해를 털어놓아 도움을 받고, 주변인은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며 응원해야 한다.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손민원 손민원 성ㆍ인권 강사 필진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젊은이와 노약자. 비장애인과 장애인. 남자와 여자..... 모두 다른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이들의 인권 이야기, 폭력예방, 성평등.... 교육을 통해, 나와 이웃 모든 사람이 가진 자유, 평등, 존엄에 대해 공감하는 힘을 키우기를 소망합니다. 강의 현장에서 만나는 다양한 목소리를 글을 통해 나누고자 합니다.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