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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호의 시선] 참모가 대통령 눈을 멀게 할 수 있다

중앙일보 2020.01.20 00:42 종합 28면 지면보기
신용호 논설위원

신용호 논설위원

대통령의 집권 4년 차는 국정 운영에 자신감이 생길 무렵이다.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생각도 할 거다. 어떻게든 나라를 잘 이끌겠다는 소명의식도 남다를 수밖에 없다. 다만 현실과 동떨어진 소명의식은 오히려 정권의 성공을 가로막을 수 있을 만큼 위험하다. 연초 국민 앞에 선 문재인 대통령의 ‘마이 웨이’ 기조에서 그런 불안이 읽혔다. 대통령이 참모들의 보좌를 제대로 받고 있는 지란 의문과 함께 말이다.
 

경제 낙관론, 집값 원상회복 언급
제대로된 참모 보좌 받는지 의문
쓴소리하는 불편한 사람 만나야

‘워터게이트’ 특종기자인 밥 우드워드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의 백악관 비화를 취재해 쓴 『대통령의 안방과 집무실』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저자는 취재를 위해 클린턴 부부를 포함 250여명의 정부 관계자를 만났다.
 
“용기 있게 대통령의 실수를 바로잡아주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설령 나쁜 소식일지라도 수집한 정보를 전해주는 사람을 중용해야 합니다.” 클린턴은 1992년 당선 후 새해 행사를 열었고 여기에 초대된 레이건 정부의 관료 켄 에델만이 클린턴에게 한 말이다. 에델만은 이어 “백악관에는 정직한 사람도 별로 없고 관료들은 언제나 사실을 숨기려고만 하지요. 대통령의 발언이 분명히 잘못됐는데도 각료가 그 것을 정정하지 않는 것을 누차 보았습니다”라고 한다. 이에 대해선 클린턴도 “당선됐을 때부터 그런 그릇된 폐습을 알았다”고 고개를 끄떡였다. 에델만은 “대통령 집무실에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마구 드나들며 굽신거립니다. 상상도 못 할 만큼 추잡한 광경이지요”란 말도 서슴지 않는다. 책에는 “대통령이 되면 귀먹고 장님 된다”는 말도 나온다.
 
문 대통령이 이 글을 읽는다면 어떤 느낌을 받을까. 문 대통령 주변도 이런 분위기가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우려를 하게 한 대표적인 경우가 대통령의 낙관적인 경제 인식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경제는 건실한 흐름을 유지하고 있다”(3월),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9월)고 했다. 올해 들어서도 여전히 “경제가 좋아지고 있다”는 기조다. 낙관이 과하다. 소득주도성장의 결과는 민간의 투자 의욕을 떨어뜨렸고 경제의 기초체력인 잠재성장률도 하락시켰다. 실제 경제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부동산 언급도 석연치 않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원상회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집값을 무리한 시장 개입으로 원상회복시킬 경우 엄청난 부작용이 염려되는데 그걸 고려한 발언일까. 게다가 ‘원상회복’ 언급 하루 만에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주택 거래 허가제’를 얘기해 파문이 일자 또 하루 만에 비서실장이 나서 “검토된 적 없다”고 주워 담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래저래 문 대통령이 경제 전문가가 아니란 점을 고려하면 참모들의 보좌가 잘못된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그게 비단 경제뿐일까.
 
우드워드의 책에는 클린턴이 종전 예측보다 재정 적자가 600억 달러가 늘어났다는 보고를 받고 격분하는 장면이 나온다. 거기서 클린턴은 “뭐라고?”라며 미친 듯이 소리친다. 그러면서 “철저하게 검토가 끝났다고 해놓고 인제 와서 무슨 소린가”라고 말한다. 클린턴의 참모가 대통령을 상대로 직무를 유기한 케이스다. 김영삼(YS) 대통령도 외환위기가 터지기 5~6개월 전까지 “우리 경제가 연착륙했다. 세계가 각하의 영도력을 찬양한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한 인사는 “‘밑에서 보고하는 걸 믿지 마시라. 관료는 항상 면피성 보고를 합니다’라는 조언이 뒤늦게야 대통령에게 올라갔다”고 회고했다.
 
YS나 클린턴의 경우를 피하려면 문 대통령이 직접 해법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반대편 인사를 만나는 게 최선이다. 그래야 참모들과 시각이 다른 얘기를 들을 수 있다. 클린턴에게 에델만이 반대편 인사였다. 허심탄회한 얘기를 해줄 명망 있는 보수 인사들을 청와대로 불러야 한다. 야당 의원들도 만나야 한다. 야당만 따로 만나기 부담스러우면 국회 상임위 단위로 만남을 정례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는 국회를 존중하는 의미에다 야당 의원들만 만나는 부담을 덜 수 있다. 청와대도 한목소리를 내는 원팀이 아니라 이질적인 인사를 수혈해 쇄신해야 한다. 청와대의 순혈주의는 대통령에게 도움될 게 하나 없다. 클린턴은 지지율 하락으로 어려울 때 공화당 출신 데이비드 거겐을 고문으로 영입해 소통을 활성화한 일은 참고할 만 하다. 소명의식이 가득할 집권 4년 차의 문 대통령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반대 의견 청취는 반드시 실천해야 할 일이다. 주변만 믿다 ‘귀가 먹고 눈이 머는 일’이 생긴다면 이는 대통령뿐 아니라 곧 국민의 불행이다.
 
신용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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