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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스커트 뺏긴지 40년···“No히잡” 이란 떠나는 이란 여성들

중앙일보 2020.01.18 05:00
이란의 유명 체스 국제 심판 쇼흐레 바야트(32)는 지난 6일 스마트폰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이 나온 한 장의 사진이 이란 국영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그는 이란에서 뭇매를 맞고 있었다. 

‘히잡’ 벗어던진 이란 체스 국제심판 바야트
히잡 강요 이슬람 국가는 이란·사우디 두나라
이슬람 혁명 이전엔 자유 복장, 미니스커트도
많이 배우고 사회진출 활발 이란여성들 ‘탈히잡’

15일(현지시간) 데일리 메일에 따르면 그는 이날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20 세계 여성 체스 챔피언십’(중국·러시아 공동 주최)의 심판을 보면서 히잡을 머리 끝에 걸치고 있었다. 때문에 그의 정면을 찍은 사진을 보면 히잡을 쓰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바야트는 “스마트폰을 켰는데, 내 사진이 이란 매체에 도배돼 있었다”고 말했다.

이 일로 그는 이란에서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오해와 비난을 받았다. 두려움을 느낀 그는 이란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바야트는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여성은 옷을 어떻게 입을지 선택할 권리가 있어야 하며 히잡을 강요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이란 체스 심판 쇼흐레 바야트가 지난 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20 여성 세계 체스 챔피언십' 심판을 보고 있다. 그의 옆이나 뒤에서 보면 히잡을 머리 끝에 걸치고 있는게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체스 심판 쇼흐레 바야트가 지난 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20 여성 세계 체스 챔피언십' 심판을 보고 있다. 그의 옆이나 뒤에서 보면 히잡을 머리 끝에 걸치고 있는게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에서 ‘히잡’을 공개적으로 거부하는 여성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여성 억압과 차별에서 벗어나 자유를 갈망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란에서 ‘탈히잡’ 현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그 배경에 1979년 이슬람 혁명 이전의 이란 역사와 여성의 높은 교육 수준이 있다고 진단한다.
 
또 현 정권과 체제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복장 규정에 대한 불만으로도 이어진다는 분석이 나온다. 심각한 경제난 속에서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성난 민심은 지난 11일부터 테헤란 등지에서 반정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히잡 싫어 이란 떠난다 

바야트는 지난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2020 세계 여성 체스 챔피언십’에선 히잡을 아예 쓰지 않았다. 이란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계속 심판으로 일할 결심을 한 그는 히잡을 벗어던졌다. 

이란 체스연맹은 바야트에게 이란 관계자들에게 사과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바야트는 이를 거부했다. 바야트의 아버지는 “가족과 이란 체스연맹의 회장까지 나서 바야트에게 이란으로 돌아오라고 설득했지만, 바야트는 다른 나라에서 활동하길 원하고 있다. 이란에서 이전처럼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지 걱정하기 때문”이라고 이란 이스나통신에 전했다. 


그에 앞서 이란의 태권도 선수 키미아 알리자데(21)는 지난 11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란을 떠난다”고 알렸다. 알리자데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여성으로선 이란에 첫 올림픽 메달을 안겼다. 이란의 ‘스포츠 영웅’인 그는 “나는 이란에서 억압받는 수백만 여성 중 한 명이다. 이란 당국이 시키는 대로 옷을 입고, 말했다”면서 망명을 선언했다.
이란 체스 심판 쇼흐레 바야트가 지난 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20 여성 세계 체스 챔피언십’ 심판을 보고 있다. 그는 히잡을 머리 끝에 걸쳐 앞에서 보면 히잡을 쓰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체스 심판 쇼흐레 바야트가 지난 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2020 여성 세계 체스 챔피언십’ 심판을 보고 있다. 그는 히잡을 머리 끝에 걸쳐 앞에서 보면 히잡을 쓰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로이터=연합뉴스]

이슬람 국가 57개국 가운데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두 나라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여성의 히잡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다. 나머지 이슬람 국가들은 히잡 착용을 자유 의사에 맡긴다. 특히 이란은 이란을 찾은 외국인과 해외를 방문한 이란인에게까지 히잡 착용을 강제한다. ‘여성의 머리카락이 남성을 유혹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한 이란 여성이 머리에 히잡을 쓴 채 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한 이란 여성이 머리에 히잡을 쓴 채 축구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2017년 이란의 여성 체스 선수 도르사 데라크샤니(22)는 스페인에서 열린 국제 체스 대회에 히잡을 쓰지 않고 출전했다가, 국가대표 선발에서 제외됐다. 같은 해 세계 여성 체스 선수권대회가 테헤렌에서 열리자, 일부 외국 선수들이 대회 보이콧을 선언하고 불참하기도 했다. 이란 당국이 히잡 착용을 강요한다는 이유에서 였다. 
 
송경근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장은 “요즘 테헤란 등 이란 도시 지역에 가면 히잡을 머리 일부가 노출되도록 쓰거나 심지어 머리카락 끝에 붙여 안 쓴 것처럼 보이는 여성들을 많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미니스커트·수영복 입던 이란 여성들  

이란이 여성에게 옷차림을 강제하기 시작한 건 1979년 이슬람 혁명이 일어나면서다. 현재 이란 여성들은 히잡 착용은 물론이고, 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전신을 가린 옷을 입어야 한다.  
 
이슬람 혁명 이전까지 이란 여성들은 옷을 자유롭게 입었다. 미니스커트로 멋을 내거나 해변에서 수영복을 입는 여성들도 많았다. 팔레비 왕조 시절 이란은 이슬람 국가 가운데 미국과 가장 가까웠다. 미국의 영향으로 이란의 여성들은 서방 국가의 여성들처럼 옷을 입고 다녔다.   
이란 체스 심판 바야트가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세계 여성 체스 챔피언십에서 히잡을 아예 벗고 있다. 그는 히잡 강요가 싫어 망명을 결심하고, 이젠 아예 히잡을 쓰지 않고 있다. 올해 세계 여성 체스 챔피언십은 중국과 러시아 주최로 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체스 심판 바야트가 16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세계 여성 체스 챔피언십에서 히잡을 아예 벗고 있다. 그는 히잡 강요가 싫어 망명을 결심하고, 이젠 아예 히잡을 쓰지 않고 있다. 올해 세계 여성 체스 챔피언십은 중국과 러시아 주최로 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곽새라 한국외대 이란어과 교수는 “당시 이란 여성들은 현재의 터키 여성들처럼 옷을 자유롭게 입고 다녔다. 1970년대 이란 여성들의 사진을 보면 지금의 모습과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송경근 소장은 “옷을 자유롭게 입던 여성들에게 이란 당국이 갑자기 히잡을 쓰도록 강요한 것”이라면서 “많은 여성들이 마음 속으론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는데, 이젠 거부감을 겉으로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다”고 말했다.  
히잡을 쓰고 차도르로 손과 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가린 이란 여성들. [로이터=연합뉴스]

히잡을 쓰고 차도르로 손과 얼굴을 제외한 전신을 가린 이란 여성들. [로이터=연합뉴스]

이런 움직임의 배경엔 이란 여성들의 높은 교육 수준과 활발한 사회 진출이 있다. 이란에선 여성이 변호사·의사 등 전문직은 물론이고, 택시·버스 운전사, 정치인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활동하고 있다.  
 
송경근 교수는 “많이 배우고 넓은 세상을 보는 이란 여성들이 복장 규정에 대해 의문과 반발심을 갖게 된 것”이라면서 “이슬람 국가 가운데 케이팝 등 한류 열풍이 가장 뜨거운 나라가 이란이란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현 정권과 체제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복장 규정에 대한 불만 역시 더욱 확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반정부 시위 현장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눈에 띄고 있다. 
 

탈히잡, “이란 정치가 좌우”  

이란에선 공개적인 장소에서 히잡을 쓰지 않을 경우 처벌을 받는다. 2개월 이하 징역에 처하거나 벌금을 물린다고 전해진다. 이란 체스 심판 바야트는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에서 “이란에는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감옥에 간 사람들이 많다. 아마 이란 당국은 나를 (처벌) 본보기로 삼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으로서 이란에 첫 올림픽 메달을 안긴 태권도 선수 알리자데. 그는 지난 11일 "거짓과 위선이 싫어 이란을 떠나겠다"고 밝혀 이란에 충격을 안겼다. [로이터=연합뉴스]

여성으로서 이란에 첫 올림픽 메달을 안긴 태권도 선수 알리자데. 그는 지난 11일 "거짓과 위선이 싫어 이란을 떠나겠다"고 밝혀 이란에 충격을 안겼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란 당국은 불시 단속을 벌여 히잡 미착용자를 적발한다고 전해진다. 송경근 소장은 “2000년대 초반 한국 대기업 주재원의 부인이 택시 안에서 히잡을 벗고 있다가 적발돼 추방당한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란 여성이 히잡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는 이란 내 정치 상황에 달렸다고 전망한다. 송경근 교수는 “이슬람주의자들과 친서방 세력간의 세력 다툼에서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느냐가 이란 여성의 복장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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