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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프리즘] 이상문학상 사태 뒤집어 보기

중앙선데이 2020.01.18 00:27 670호 31면 지면보기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지금까지의 관전평은 대부분 비슷할 것 같다. 이상문학상 사태 말이다. 김금희 등 작가들은 했어야 마땅한 문제 제기를 한 거고, 출판사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저질렀다. 이상문학상을 운영하는 문학사상 출판사가 작가들에게 제시한 계약서 문구가 정확히 어떻게 돼 있는지는 확인해봐야겠지만, 김금희의 트위터 글대로라면 대상도 아니고 우수상으로 ‘끼워 넣어’ 수상작품집을 만드는 작품의 저작권을 3년간 출판사에게 양도하라고 한 건 너무했다. 저작권양도계약은 단순히 책을 출판할 권리를 출판사에 넘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저작권은 일종의 권리다발이다. 복제권·2차적저작물작성권 등 다양하고 복잡한 권리들로 구성돼 있다. 그래서 저작권양도계약은 출판의 범위를 넘어서는 강력한 권리를 통째로 넘기는 것이 된다. (사법연수원 교재 ‘현대계약법’) 정말 못된 욕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면 출판사와 작가 사이에 필요했던 건 출판권설정계약이다.
 

위축된 문학 시장 무리수 자초
현재 운영관행 철저히 바꿔야

앞으로가 문제인데 출판사 입장에서는 수습이 쉽지 않아 보인다. 우선 우수상을 거부한 김금희 등 세 명의 작가가 한 번 공개적으로 뱉었던 말을 번복해 다시 상을 받겠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러지 못할 경우 대개 대상 한 편, 우수상 다섯 편, 그러니까 여섯 편의 단편을 묶어 한 권으로 만드는 수상작품집 분량이 정확히 절반으로 쪼그라들게 된다. 아직까지 입장 표명이 없으니 어떤 식으로든 사태가 수습되면 상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대상 수상 작가와 두 명의 우수상 수상 작가는 억울할 만도 하다. 김금희 등과 생각이 다르다면 이들 ‘잔류파’의 입장 또한 존중해줘야 할 텐데 온기 없는 세상인심이 과연 사심 없이 잔류파를 바라볼지도 걱정된다. 어쨌든 수상작품집이 나온다면 판매량도 예년보다 줄어들 것이다.
 
기자도 남들처럼 과거 이상문학상 작품집의 애독자였다. 한때 사랑했던 누군가의 전락을 바라보는 심정은 씁쓸할 수밖에 없다. 온정적으로 읽히는 대목이 있더라도 몇 가지 생각을 보태고 싶다. 아직 진행형인 사태를 지켜보며 그냥 넘어가 지지 않는 지점들이다.
 
먼저 이상문학상 자체가 예전의 이상문학상이 아니다. 출판사의 완력도 과거만큼 세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이상문학상은 과거에도 심심치 않게 저작권, 공정성 시비에 휘말렸다. 가령 2000년 이인화의 ‘시인의 별’ 수상을 두고도 정실 선정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그럼에도 어떤 소설책보다 사랑받았다. ‘대중의 사랑을 받고 싶다면 이상문학상을 타라.’ 문단 안팎에 이런 말이 떠돌 정도였다. 지금은 아니다. 요즘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내기 위해 출판사가 상금으로 지급하는 매절 선인세 성격의 비용 5000만원을 회수하려면 3, 4만 부는 팔아야 하는데 그 정도 팔기 벅차 보인다는 게 출판가의 관측이다. 차라리 이번 사태가, 이상문학상이라는 옛 권위 앞에 선 작가들을 절망케 했는지는 몰라도, 생존을 위한 출판사의 몸부림처럼 보인다. 누구 말대로 수상작품집 팔아 상금 충당하고 돈도 버는 모델은 활기 잃은 요즘 문학 시장을 고려하면 이제는 맞지 않는 방식인 것 같다.
 
반드시 올해만의 일은 아닌데 출판사나 작가나 피차 저작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신참 직원의 서툰 업무 처리도 원인이었다는 출판사 임지현 대표의 발언을 선의로 해석하고 싶다. 실제로 출판사는 지난해 말 편집부 직원들이 대거 그만뒀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고언이다. 출판사는 당장 이번 사태만 넘기려고 할 게 아니다. 상 운영 관행을 철저히 바꿔야 할 것 같다. 대상 선정의 배경을 의심하는 시각이 여전하다. 공정하지 못한 선정은 저작권 양도 압박보다 훨씬 더 심각한 문제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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