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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포로 우대했더니 전쟁 끝난 후 은혜 갚아

중앙선데이 2020.01.18 00:20 670호 20면 지면보기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
김효순 지음

“중국의 인도주의에 인간미”
종전 후 일본의 전쟁범죄 증언

“빨갱이에 세뇌” 일본 내 역풍도
한·일 갈등 해결에 참고할 만

서해문집
 
과거사 청산에서 독일만큼 앞서가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나치 독일이 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에 세웠던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강제수용소의 해방기념일(1월 27일)을 앞두고 지난 6일 이곳을 방문해 과거사를 반성하면서 희생자들을 기렸다. 독일 정치지도자들의 전범 행위 사죄는 이제 식상할 정도로 일상화했다.
 
그런데 아시아에서의 역사 논쟁, 아니 역사 투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특히 한·일 간에는 징용공·위안부·역사교과서 등 과거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오히려 더 날카로워졌다. 최근 약간의 해빙 무드에도 불구하고 근본 뿌리까지 해소되기에는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걸릴 듯하다. 난징대학살 등을 두고 중·일 간에도 역사의 앙금은 여전히 깊다.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는 마오쩌둥 신중국의 일본인 전범 처리 문제를 다뤘다. 2차 대전 후 도쿄를 포함해 미국·영국 등 각국에서 진행된 전범재판에서 극형을 선고받은 일부는 처형되고 나머지 전범 대부분은 풀려났다. 국공내전 끝에 1949년 들어선 신중국에는 소련에 억류됐다가 50년 7월 인계된 969명과 일본 패망 후에도 산시성에 남아 일본의 권토중래를 꿈꾸며 팔로군과 전투를 벌이다 인민해방군에 체포된 140명을 합해 1109명의 일본인 전범이 있었다. 이들은 푸순과 타이위안전범관리소에 수감됐다. 56년 전범재판에서 45명만 기소되고 나머지는 풀려났다. 사형이나 무기형은 없었다. 마지막까지 복역했던 전범 3인은 64년 4월 7일 도쿄 하네다공항으로 돌아왔다.
 
소련에서 하루 열 시간 이상 강제노역을 하면서 검은 빵과 소금국 한 그릇만 먹던 일본인 전범들은 중국 푸순전범관리소에선 전혀 딴 세상을 경험한다. 쌀밥과 떡, 어묵, 초밥까지 제공됐으며 욕설이나 구타 등 가혹 행위는 가해지지 않았다. 중국은 일본인 전범을 다루면서 죄를 인정하도록 하는 ‘인죄’와 자신의 잘못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탄백’에 중점을 두었다. 저우언라이 총리는 ‘사상 면에서 그들을 교육하고 개조하는 데 주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의 전쟁범죄를 첫 공개 ‘탄백(자백)’했던 일본군 전범 미야자키 히로무가 1956년 푸순전범관리소를 찾은 일본 방송기자와 인터뷰하는 장면.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는 중국의 일본군 포로 교화 과정을 다룬 책이다. [사진 서해문집]

2차 세계대전 당시 자신의 전쟁범죄를 첫 공개 ‘탄백(자백)’했던 일본군 전범 미야자키 히로무가 1956년 푸순전범관리소를 찾은 일본 방송기자와 인터뷰하는 장면. 『나는 전쟁범죄자입니다』는 중국의 일본군 포로 교화 과정을 다룬 책이다. [사진 서해문집]

인죄교육과 함께 전범들 사이에선 자발적인 학습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반동 그룹은 여전히 비판적이었지만 한 장성급 전범은 “중국의 인도주의에 대해 처음엔 정치 음모로 알았으나 시간이 차차 흐르는 가운데 관리소 직원의 진정한 인간미를 몸으로 느꼈다”는 말을 남겼다. 사병 출신 전범은 “중국의 인도주의 대우에 일본인 전범이 시대에 뒤떨어진 파시즘의 외투를 벗어 던진 것”이라고 고백했다.
 
석방돼 일본으로 돌아온 전범들은 중국귀환자연락회(중귀련)를 결성해 일·중우호 운동과 침략 전쟁의 진실 알리기에 앞장섰다. 중국인 포로와 민간인 학살, 약탈과 방화, 생체해부, 전시 성폭행, 세균전 실험, 노무자 강제연행 등 전쟁범죄를 증언하는 활동을 벌였다.
 
하지만 일본 사회는 이들에게 냉담했다. 장기간 억류됐다 돌아온 이들이 베이징 공산주의 정권을 비난하기는커녕 중국의 인도적 관대 조처로 인간성을 되찾았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세뇌된 사람’,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냉소와 비웃음의 시선을 보냈다. 중국 전범의 수기집 『삼광』이 일본에서 출판돼 불티나게 팔리자 우익의 반발이 거세져 출판 중지 협박도 잦았다. 귀환자들의 취직 길도 막히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귀환자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다. 전장에서 살아온 대다수의 일본 퇴역 군인이 입을 닫았던 현실에서 중귀련이 집단적으로 가해자 증언을 계속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들은 일본의 보수 정치 세력이나 극우단체가 과거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역사 교과서 왜곡, 수정 작업을 추진하면 거세게 항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치지도자들은 아직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다. 전쟁범죄를 시인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역사는 또 그렇게 잊혀갈 것이다.
 
이 책은 지나치게 중국 쪽 입장을 미화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귀환자들의 활동에서 보듯이 중국의 일본인 전범 교화가 일본 사회에서 사죄와 반성을 촉구하는 밀알이 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책들을 계기로 일본 지도자들도 독일처럼 진솔하게 전범 행위를 고백하고 과거사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해 본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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