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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꾸자’ 신세대의 의욕 결국 구세대 닮는 좌절로 귀결

중앙선데이 2020.01.18 00:20 670호 24면 지면보기

김대식의 ‘미래 Big Questions’〈9〉 모던의 미래는 

움베르토 보치오니의 ‘도시가 일어나다’(1910), 뉴욕 모마(MoMA) 미술관 소장.

움베르토 보치오니의 ‘도시가 일어나다’(1910), 뉴욕 모마(MoMA) 미술관 소장.

‘짧은 단발머리에 바지 입은 여자들. 길거리에서 이성의 손을 잡고, 담배까지 피운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남자랑 함께 살고 일본, 미국, 유럽으로 유학을 간다. 남자들도 다르지 않다. 체통과 전통은 다 무시한 채 꼬부랑 글씨 책을 읽고 시끄러운 흑인 음악에 따라 춤을 춘다. 세상이 드디어 망하기 시작하는 거로 구나 …’
 

1920년대 모던 보이·플래퍼
요즘엔 밀레니얼·Z세대로 연결

아인슈타인 중력 탐구하던 때
빌헬름 2세는 신성로마제국 놀이

1차 세계대전 죽음 내몰린 청춘
전통 해체 모더니즘 열광했지만…

‘모던 보이’, ‘모던걸’이라고 불리던 일제 강점기 시대 신세대들. 요즘의 ‘밀레니얼’이나 ‘Z세대’ 정도였을까? 기성세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해하고 싶지 않은 행동을 하는 젊은이들. 물론 경성과 평양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메이지 유신과 함께 들어온 서양 패션과 음악에 흠뻑 빠진 일본 여성들은 미국, 유럽 신세대 여성들을 따라 자신을 “플래퍼”(flapper)라고 불렀고, 독일 유명 작가 토마스 만의 딸 에리카 만(Erika Mann)은 남성 헤어스타일을 흉내 낸 Bubikopf(부비코프, 소년 머리)에 가죽 바지를 입고 전 세계를 횡단하며 찍은 사진들을 언론에 소개했다. 마치 오늘날 유명 유튜버 같이 말이다. 1920년도의 부비코프, 플래퍼, 모던보이, 모던걸 … 그들은 왜 그렇게도 기성세대를 부정하고 구시대를 증오했던 걸까?
  
기술·과학 발전 못 따라간 정치·사회
 
제라르도 도토리의 ‘무솔리니 초상화’(1933), 밀라노 응용 예술 미술관 소장.

제라르도 도토리의 ‘무솔리니 초상화’(1933), 밀라노 응용 예술 미술관 소장.

혁신과 창조적 파괴가 일상생활이 된 우리는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변화는 우리만의 특권이라고. 하지만 19세기 역시 상상을 초월하는 혁신의 시대였다. 기억해 보자. 19세기 초 나폴레옹은 여전히 프랑스 황제였고, 밤마다 암흑 같은 어둠에 빠지는 도시에는 하수도와 전기시설도 없었다. 대부분 시민의 삶이 여전히 중세 시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음반, 냉장고, 세탁기, 항생제, 마취제 그리고 자동차와 비행기의 발명은 불과 100년 만에 유럽과 미국 도시들의 모습을 본질에서 바꾸어 놓았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기술과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는 달리 정치와 사회는 여전히 산업화 이전 모습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와 알버트 아인슈타인이 양자와 중력의 비밀을 탐구하던 20세기 초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판타지 유니폼을 입고 중세기 신성로마제국 놀이를 하고 있었고, 서양 대부분 국가 여성들은 투표권조차 없었다. 최첨단 기술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사회 구조. 하지만 그 역설적인 상황을 모두가 인식하지는 못했다. 대부분 눈에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 모던 걸이었던 현대무용가 최승희(1911~1969).

일제 강점기 모던 걸이었던 현대무용가 최승희(1911~1969).

20세기 초 유럽 사회는 앞과 뒤가 일치하지 않는, 좌와 우가 어울리지 않는, 기술과 사회가 맞지 않는 ‘문명적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더구나 황제, 대통령, 수상, 장군, 철학자, 목사 모두 안심시키지 않았던가? 유럽인이 가장 뛰어나기에 세상을 지배하는 게 당연하다고. 미개한 흑인과 동양인을 책임지는 것이야말로 백인의 숭고한 책임이라고. 유럽의 번영은 영원할 거라고. 아무 문제도 없다고 했다.
 
수천만 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1차 세계대전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 오스만 제국이 무너지고, 러시아에서는 공산 혁명이 일어난다. 기관단총 앞으로 무조건 돌격하라는 늙은이들의 명령에 따라 수백만 명의 젊은이들이 무의미하게 목숨을 잃었고, 팔과 다리가 잘려나갔다. 친구들과 웃고 장난치며 향했던 전쟁터에서 4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젊은이들은 질문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들은 지상에서의 지옥을 경험해야 했냐고. 왜 청년과 소년은 불구자가 되어 돌아왔는데, 자신을 전쟁터로 내몬 늙은이들은 여전히 비싼 옷을 입고 멋진 차를 타고 다니는 거냐고. 전쟁에서 돌아온 젊은이들은 자신이 알던 과거의 세상을 멸망시킨 ‘그 무언가’를 찾기 시작했다. 어떤 이는 모든 것이 목숨보다 돈을 중요시하는 자본주의 시스템 때문이라고 말했고, 또 다른 누구는 유럽을 무너뜨려 세상을 정복하려는 유대인들의 음모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에즈라 파운드(1885~1992). 왼쪽은 1913년, 오른쪽은 1945년 체포 당시 모습.

에즈라 파운드(1885~1992). 왼쪽은 1913년, 오른쪽은 1945년 체포 당시 모습.

자본주의의 타락, 공산주의자의 반란, 유대인의 음모, 예수회 수사들의 계획 …. 주장과 의견은 달랐지만, 1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 젊은이가동의하는 한 가지 만큼은 있었다. 바로 기성세대가 신세대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이다. 19세기 과학기술의 모든 혜택을 받고 살아온 기성세대가 수백만 젊은이들에게 20세기를 살아볼 기회마저도 빼앗아버린 전쟁. 과거가 미래를 짓밟고 미래 세대가 과거 세대에게 배신당했으니 20세기 신세대 젊은이들은 소리 지른다. 과거는 모두 틀렸고 지금이 맞다고. 더는 기성세대의 말은 믿지 않겠다고. 전통과 관행을 모두 무너뜨려 버리겠다고.  새로운 문화, 새로운 패션, 새로운 예술, 그리고 새로운 정치와 경제와 사회 …. 20세기 모더니즘의 시작이었다.
 
일제 강점기 모던 걸이었던 현대무용가 최승희(1911~1969).

일제 강점기 모던 걸이었던 현대무용가 최승희(1911~1969).

특히 이탈리아 시인 마리네티(TommasoMarinetti, 1876~1944)를 중심으로 시작된 ‘미래파’ 운동은 가장 극단적이었다. “이제부터는 무조건 ‘모던’ 해야 한다!”고 주장하던 미래파 지지자들에게 ‘모던’이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케케묵은 19세기 전통과 관행의 파괴, 아니, 기존 인류 문명의 파괴가 그들에겐 모던이었는지도 모른다. 더는 책과 성당과 철학이 아닌 기관단총과 비행기와 기계가 중심인 세상. 쓸모없는 지식으로 가득 찬 도서관을 불태우고 19세기 매너리즘 그림들이 판치던 미술관을 허물어 버리는 것이야말로 그들에겐 진정한 모던이었다. 1차 세계대전 중 사망한 초기 미래파 화가 보치오니의 ‘도시가 일어나다’는 이미 예언했는지도 모른다. 20세기 신세대가 만들 새로운 도시는 ― 마치 걷잡을 수 없는 야생마와도 같이 ― 과거 세상을 휩쓸어 버릴 것이라고.
 
지속적인 발전보다는 혁명을, 과거와 현재의 타협보다는 투쟁과 파괴를 선호한 대부분 미래파 지식인들이 결국 무솔리니의 파시즘 독재를 지지하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미래파 화가 도토리(Gerardo Dottori)는 독재자 무솔리니를 마치 비행기들로 구성된 후광을 가진 모더니즘의 “성자”로 표현했고, 독일 작가 에른스트 윙거(1895-1998)는 ‘강철 비(Stahlgewitter)’라는 책을 통해 전쟁과 죽음을 찬양했다. 역시 새로운 시대를 위한 새로운 시각화를 꿈꾸던 독일 대표 신세대 여성감독 레니 리펜슈탈(1902~2003)은 추후 아돌프 히틀러의 가장 대표적인 선전자가 됐다.  
  
파시즘 대변 미래파 지식인의 아이러니
 
유럽 젊은이들만의 현상은 아니었다. 20세기 젊은이들을 위한 새로운 미학을 꿈꾸던 천재적인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 1885~1972)는 무솔리니의 파시즘을 대변하는 반미 전쟁 방송을 진행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체포된 그는 조국 미국을 배신한 반역죄로 동물 철창에 갇히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몬 기성세대를 부정하며 더 모던하고 더 새로운 신시대를 꿈꾸던 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인류 역사상 가장 반인류적인 정권들의 선동자가 됐다.
 
인공지능, 양자컴퓨터, 유전자 가위, 사물인터넷, 가상현실, 증강현실 …. 상상을 초월하는 과학기술의 발전과는 달리 여전히 20세기 수준의 정치와 사유에 갇혀 있는 오늘날, 21세기에 태어난 Z세대들은 구세대를 비난한다. 20세기 과학기술의 모든 혜택을 받고 살아온 기성세대가 편안함과 경제발전 만을 위해 파괴한 지구환경 때문에 21세기 젊은이들은 멸종할 위기에 처해있다고. 근거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또 기성세대가 만든 모든 것을 파괴하는 혁명을 꿈꾸는 그들을 바라보며 응원하는 마음과 함께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대부분 인류역사는 모든 걸 바꾸겠다는 신세대의 희망과 결국 자신들도 구세대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좌절의 반복이니 말이다.
 
김대식 KAIST 교수·뇌과학자 daeshik@kaist.ac.kr
독일 막스-플랑크 뇌과학연구소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미국 MIT와 일본 이화학연구소에서 각각 박사후 과정과 연구원을 거쳤다. 미국 미네소타대 조교수, 보스턴대 부교수를 지냈다. 2013~2015년 중앙SUNDAY에 ‘김대식의 Big Questions’를 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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