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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 커진 이장 자리 쟁탈전 치열…‘한 마을 두 이장’ 분쟁도

중앙선데이 2020.01.18 00:02 670호 8면 지면보기

이장이 뭐길래

현재 전국에는 228개 지자체에 9만5000여명의 이·통장이 있다. 서울 등 도시 지역은 심각한 ‘통장 구인난’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농어촌 지역은 복수의 이장 후보가 나서 선거를 치르는 곳이 적지 않다. 특히 대규모 투자와 개발이 예상되거나 각종 중앙정부와 지자체 보조금 지원 사업이 많은 농어촌 지역의 이장은 권한과 혜택이 많아 이장 자리를 놓고 경쟁이 치열하다. 마을이장 자리가 단순 봉사직이라는 얘기는 옛말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농어촌마을 ‘봉사직’ 이장은 옛말
월 30만원 받고 이권 개입 여지 많아
“태양광·묘지 조성 뒷돈 줘야 가능”

제주도 선흘2리 등 7곳선 소송까지
주민들 갈등으로 마을 두 쪽 나
“임명과 해임 관련 규정 보완해야”

일부 지역에서는 이장의 권한과 역할을 둘러싼 갈등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도다. 중앙SUNDAY는 지난 15일 마을 이장의 결정으로 극심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2리를 찾았다. 이곳은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거문오름이 있고, 람사르 협약에 의해 습지도시로 선정된 아름다운 풍광으로 유명한 마을이다.
  
228개 지자체 이·통장 9만5000여명
 
“마을이장이 많은 주민의 반대 의견을 무시하고 업자 편을 들어 사업을 강행하려고 하는데 분통이 터진다.”(50대 주민 A씨)
 
“환경단체와 외지인들이 주축이 돼 마을 주민들의 뜻을 왜곡해 사업을 무조건 반대만 하려고 한다.”(전직 이장 출신 주민 B씨)
 
현지에서 만난 마을 주민들의 입장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주민들 사이에 갈등과 반목이 계속돼 마을이 두쪽으로 쪼개진 건 국내 리조트업계 유수 기업인 대명그룹이 추진하는 제주동물테마파크 사업 때문이다.
 
마을이장

마을이장

동물테마파크는 이 마을 58만㎡의 터에 사자와 호랑이, 곰, 얼룩말, 코끼리 등 20여종 500여 마리 동물을 사육하고 관람하는 공간과 호텔, 글램핑장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지난 2007년 다른 사업자가 조랑말 중심의 승마장, 전통 체험장 등이 들어오는 소규모 동물테마파크 사업으로 추진했지만 재정난으로 좌초했다. 그러다 2016년 대명그룹이 사업을 넘겨받아 사파리 형태의 대규모 테마파크로 다시 추진하고 있다. 현재 제주도지사의 최종 사업 승인 허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갈등이 깊어진 것은 지난해 7월 그동안 사업 반대입장에 서 있던 마을이장정모씨가 사업자 측과 ‘상생협약’을 맺으면서다. 협약서에 따르면 사업자는 마을에 7억원의 발전기금을 지원하고, 마을회는 이 사업에 적극 협력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이전까지 도 의회 등에서 기자회견까지 하며 ‘결사반대’ 입장에 있던 이장 정모씨 측은 “사업 찬반으로 인한 마을 분란이 점점 커져 이를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장이 마을 총회 의결도 거치지 않고 직권으로 협약을 체결해 무효”라는 입장이다. 지난해 8월 주민들은 임시총회를 열어 압도적인 찬성으로 이장 정씨의 해임을 의결하고 새로운 이장을 선출했다. 하지만 이장 임명권을 가진 조천읍장은 정씨 해임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새로 선출된 이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부속기사 참조〉
 
정씨는 법적으로는 여전히 마을 이장직을 유지하고 있지만 마을 주민들은 그를 이장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주민들은 “이장이 7억원에 마을을 팔았다”며 “더는 우리 마을을 대표하는 이장이 아니다”라는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개발사업으로 인한 갈등 때문에 한 마을에 두 명의 이장이 있는 웃지 못할 상황은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동물테마파크 문제뿐 아니라 각종 현안이 많지만 이장을 둘러싼 갈등으로 마을 행정에 큰 공백이 생겼다. 이와 관련 현길호 제주도 의회 의원은 “이장 해임 규정이 모호한 데다 이에 대한 법적 해석이 분분하다 보니 상급기관(조천읍)이 책임을 피하려 손을 놓고 있다”며 “너희(마을주민)들끼리 소송을 통해 해결하라는 식으로 문제를 방치해 갈등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도시 지역 통장은 구인난에 시달려
 
제주시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이장 해임 등을 놓고 주민 갈등이 벌어진 곳은 선흘 2리를 포함해 6~7곳 정도다. 구좌읍 동복리는 지난해 1월 이장 선거 결과를 놓고 갈등이 빚어져 소송까지 갔다. 선거권이 없는 34명이 투표를 한 것이 문제가 됐고 당선된 이장은 이후 자진해서 사퇴했다. 구좌읍 김녕리는 마을 소유 목욕탕 건립을 부적절하게 처리했다며 이장을 해임하고 새 이장을 선출했다. 이에 해임된 이장이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천읍 함덕리·교래리, 한림읍 협재리 등도 이장 해임과 선거와 관련한 소송이 이어져 주민 간 갈등이 한동안 계속됐다.
 
이장을 둘러싼 마을 갈등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부산 기장군 장안읍 길천마을에서도 최근 이장 선거 과정에서 일부 주민이 유권자 명단에서 누락돼 투표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음모론과 의혹이 제기되며 마을 주민 간 갈등이 극심했다. 이 마을은 이장 선거가 열릴 때마다 과열 양상이 반복됐다고 한다. 인근 고리원전 등에서 나오는 사업지원금 80여 억원을 집행하고 결산하는 권한을 마을 이장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전남 여수 돌산 신기마을에서도 한 표차로 갈린 이장 선거 결과가 나오자 마을 주민들이 둘로 나뉘어 다툼을 벌였다. 매번 이장 선거가 치열하게 전개되는 건 마을 개발공사 업체로부터 받는 기부금, 어촌계 어업권 계약 수입 등 각종 개발 이권에 이장이 개입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이장의 역할과 권한이 크다 보니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더러 있다.
 
2017년 충남 부여군 옥산면 A마을 이장과 마을회 간부들이 허락 없이 마을 인근에 묘지를 쓴다는 이유로 마을에 장례를 치르러 왔던 유족의 장의차를 가로막고 통행료를 요구해 물의를 빚었다. 이들은 마을 공사를 맡은 태양광발전소 업체에 ‘마을 안길 이용료’ 3500만원을 요구해 사적으로 가로챈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기도 했다. 몇 년 전 전북 익산군 여산면에 귀촌했다는 블로거 B씨는 “태양광발전소를 만들려면 이장에게 500만원, 묘지 1기는 최소 50만원의 뒷돈을 줘야 가능하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들린다”며 자신의 블로그에 ‘시골 이장제 폐지’를 주장하는 글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30~40년 이상 묵묵히 마을이장 일을 하며 퇴임했다는 미담 기사도 심심찮게 전해진다. 하지만 농어촌의 변화상에 맞춰 이장의 권한과 역할이 커지면서 관련 규정도 손봐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현길호 제주도 의회 의원은 “각 지자체가 마을의 특성을 반영해 이장 임명과 해임에 관련한 규정을 보완해 주민 갈등 소지를 없애야 한다”고 말했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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