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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관절 수술 1만 건 ‘한 우물’…새 장르 ‘메디컬 아트’ 도전

중앙선데이 2020.01.18 00:02 670호 28면 지면보기

[J닥터 열전] 장준동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정형외과 교수

장준동 교수는 의학을 예술로 표현하는 ’메디컬 아트‘에 도전한다. 인공관절 수술 장면을 담은 ’우리들의 일상‘도 그중 하나다. 전민규 기자

장준동 교수는 의학을 예술로 표현하는 ’메디컬 아트‘에 도전한다. 인공관절 수술 장면을 담은 ’우리들의 일상‘도 그중 하나다. 전민규 기자

장준동(65) 한림대 동탄성심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40여년간 인공관절 한 우물을 판 외골수 의사다. 지금까지 집도한 무릎·고관절 인공관절 수술이 1만여 건에 달한다. 미국·유럽 등 해외학회에서 60여 차례 이상 초청 강연을 펼쳤고, 인도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학회(Chang’s Orthopaedic Conference)가 열릴 만큼 인공관절 수술의 ‘일가(一家)’를 이뤘다.
 

오차 줄인 ‘내비게이션 기법’ 도입
미·유럽 해외학회서 60차례 강연

받은 것 사회 환원하려 그림 배워
수술 잘하고, 잘 그리면 곧 예술

그런 그가 환갑이 지나 칼 대신 붓을 잡는다는 소식에 처음엔 고개를 갸웃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의사가 화가로서 노후를 준비한다니 말이다. 단순한 취미 혹은 일탈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달 초 찾은 그의 집에서 이런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물감을 덧칠해가며 자연과 도시, 사람과 동물의 모습을 질감까지 살려 표현하는 실력이 이미 수준급이다. 서재를 개조해 만든 작업실과 집 곳곳에 내걸린 30여 점의 작품을 보물처럼 소개하는 그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새롭게 그려가는 듯 보였다.
  
그림 그리며 강박적 사고서 벗어나
 
전부터 그림을 그렸었나.
“학창시절엔 공부하기 바빴고, 의사가 된 후에도 사진 찍는 게 취미였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배운 건 5년 전부터다.”
 
붓을 잡게 된 계기는.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란 저서가 있다. 정년을 앞두고 인생의 방향을 잡을 때 그 책을 다시 한번 읽어봤다. ‘은퇴 후에도 일·취미를 가져야 한다’ ‘60세 이후로는 받은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는 환원의 삶을 살아야 한다’ 등 한 글자 한 글자를 곱씹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찾은 해답이 그림이었다.”
 
단순한 취미가 아니란 건가.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다. 내가 죽으면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고, 그걸 알기 때문에 인간은 받은 것을 사회에 환원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의사로서 환자를 돌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평생 지속하기엔 어려움이 있다. 그렇다면 취미를 통해 사회에 봉사할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다 그림이 떠올랐다. 내가 그린 그림으로 자선 전시회를 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치유할 수 있다면 노력하고 배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그림을 통해 스스로 치유 받은 경험이 있나.
“인공관절 수술은 정확도가 생명이다. 모든 과정에 원칙을 지켜야 하고 한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 반면 그림은 실수가 허용되고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창조의 작업이다. 자유와 해방감을 맛보며 의사로서 갖고 있던 강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곤 한다. 이젤 앞에 설 때면 아직도 매번 설렘과 흥분을 느낀다.”
 
돌이켜보면 장 교수의 삶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인공관절이 생소하던 1980년대부터 소재 개발과 수술법 연구에 매진했고 대한고관절학회장, 대한정형외과 컴퓨터수술학회장 등을 두루 역임하며 국내 인공관절 수술 발전을 이끌었다. 컴퓨터·적외선 카메라를 이용해 오차 범위를 최소화한 ‘내비게이션 수술’을 선도적으로 도입·발전시킨 주인공도 그였다. 종전에 서양인 중심의 연구가 아닌 한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의 인공관절 연구성과를 공유하고, 체계화하기 위해 이 분야의 가장 권위 있는 학술지인  
 
‘Journal Of Arthroplasty’의 아시아·태평양판 발간을 제안해 초대 편집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14년에는 국내 첫 고관절학 교과서의 편찬위원장으로 기초·임상 연구를 집대성하는 데 앞장섰다.
 
기존에 없던 길을 만들어가는 장 교수에게 상상력과 창의력의 산물인 미술은 ‘딱 맞는 옷’이었다. 그는 “초기부터 사진처럼 그리는 그림보다, 다양한 색과 붓 터치로 내면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유화에 마음이 끌렸다”고 말했다. 진료·수술로 바쁜 와중에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붓을 드는 성실함이 더해지며 숨어있던 재능은 꽃을 피웠다. 2018년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열린 교직원미술대전에서는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라는 작품으로 대표작가에 선정되며 대외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삶의 고단함과 인생의 의미를 되짚어본 작품이다.
 
짧은 시간에 많은 성취를 이뤘다.
“원래 관심이 있는 분야는 끝까지 파고드는 성격이다. 의사로서 환자의 겉모습만이 아닌 속마음까지 살피려 노력하는데, 이 과정에서 터득한 관찰력·섬세함도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됐다. 시간이 나지 않아 자주 그리지 못했지만, 해외학회에 참석할 때마다 미술관은 빠지지 않고 들를 정도로 그림을 좋아했다. 사람마다 특별한 지능이 하나씩 있기 마련인데 나는 공간지능이 좋은 편이다. 내가 잘하고, 원하는 것이 일치하다 보니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림을 그릴 때 고려하는 점은.
“미술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창의성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빈센트 반 고흐 등이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당시에 아무도 그리지 않던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런 창의성이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에게 영감을 주고 감동을 안긴다. 나 역시 그림을 그릴 땐 나만의 표현과 이야기를 담기 위해 노력한다.”
  
교직원미술대전서 대표작가로 선정
 
앞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나.
“의학을 미술로 표현하는 ‘메디컬 아트’ 장르를 새롭게 구축하고 싶다. 인체 해부도에서 수술 과정, 환자가 회복되는 모습 등 의사로서 경험을 그림에 녹여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려 한다. 미술을 전공한 화가보다 그림을 잘 그릴 순 없지만, 의사로서 의학을 화가가 상상으로 그리는 것보다 더욱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신체 조직이 회복되는 과정과 이에 따라 달라지는 환자의 표정·몸짓, 수술 도구를 잡는 방식 등은 의사가 아닌 일반인은 알기 어려운 정보들이다. 이런 차이를 디테일하게 표현하는 ‘메디컬 아트’가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색다른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장 교수는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한다. 그는 “의사로서도 논문을 위한 연구를 하기보다 환자의 치유를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고 떠올렸다. 뚝심으로 터득한 성공 경험은 그의 그림에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수술을 잘 하는 것도,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모두 ‘예술적’이라 표현하잖아요. 과거의 내가 오늘의 나를 만들었듯, 현재에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 ‘술(術)’의 정점에 있는 예술에 다다르지 않을까요.”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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