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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꾸러미 배달사고! 쇼팽이 그 돈을 찾은 기이한 방법

중앙일보 2020.01.17 12:00

[더,오래]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59)

 
 
 
프레데릭 쇼팽. 1889이후. 로렌즈 보겔(Lorenz Vogel). [사진 Wikimedia Commons]

프레데릭 쇼팽. 1889이후. 로렌즈 보겔(Lorenz Vogel). [사진 Wikimedia Commons]

 
쇼팽이 런던에서 파리로 돌아왔을 때, 군대의 힘으로 소란은 어느 정도 잡혀있었다. 영국체류는 그의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다. 돌아오는 길의 뱃멀미로 그는 초주검이 되어있었다. 옛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암담한 재정 상태는 지친 쇼팽을 더욱 어지럽게 했다. 영국에서 벌었던 얼마 되지 않은 돈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없어졌다.

 
의사의 왕진은 계속 이어졌다. 왕진 때마다 진료비는 10프랑씩 청구되었다. 기침이 끊이질 않아 숨쉬기도 어려웠다. 건강 탓에 레슨은 자주할 수 없었다. 집밖으로 나가기도 쉽지 않았다. 작곡도 힘들었고 도대체 연주도 할 수 없었다. 먹고살 것을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쇼팽은 힘을 내서 마주르카를 썼다. 이 곡(작품번호 68 – 4)은 그의 마지막 작품으로 사후에 출판되었다. 곡을 들으면 어둠이 내린 방의 침대에서 옛 시절의 무도회를 회상하는 만년의 쇼팽의 모습이 그려진다.
 
여름이 다가오자 사람들은 파리를 떠났다. 방문객도 줄어들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혁명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었고 매년 여름이면 나타나는 콜레라도 염려되었다. 스쿠아르 도를레앙의 방은 습기가 차고 빛이 잘 들지 않았다. 불결하기도 했다. 의사는 더 조용하고 더 편하며 더 공기 좋은 곳으로 옮기라고 조언했다.
 
친구들은 샤이요 거리에 조용하고 전망 좋은 방을 구했다. 집세는 비쌌다. 러시아의 유력집안 출신으로 부유한 오브레스코프 공주는 몰래 월세의 반을 지불했다. 저렴한 월세에 놀라는 쇼팽에게는 여름이라 월세가 낮다고 말했다.
 
외출할 때면 하인이 그를 업어서 계단을 오르내렸다. 쇼팽은 하인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밤낮으로 하인을 쓰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파리로 돌아 온 마르첼리나 공주는 자신의 유모를 보내, 밤에도 쇼팽의 간호가 끊이지 않도록 해주었다. 주로 침대에 누워있던 쇼팽을 대신에서 친구 프랑숌이 살림을 맡았다. 돈은 몇 백 프랑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프랑숌은 팔아서 돈이 될 만한 것이 있나 찾았다. 그러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자 친구에게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이 말은 제자 제인의 귀에 들어갔다. 제인은 언니 어스킨 부인과 함께 파리로 돌아와서 일주일에 한번씩 쇼팽에게 레슨을 받고 있었다.
 
이미 런던과 스코틀랜드에서 쇼팽의 경비의 상당부분을 부담했던 제인은 쇼팽의 사정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벌써 3달 전에 25,000프랑이 든 돈 꾸러미를 아파트의 관리인에게 맡겨 쇼팽에게 전달을 부탁했다고 했다. 그것은 큰 돈이었다.
 
제인 스털링과 언니 어스킨 부인. 둘은 항상 붙어 다녔다. [사진 Chopin-society.org.uk]

제인 스털링과 언니 어스킨 부인. 둘은 항상 붙어 다녔다. [사진 Chopin-society.org.uk]

 
프랑숌은 괜히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지켜보고 있자니, 쇼팽은 자신에게 빌려간 돈을 갚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궁색한 티를 내며 먹고사는 걱정에 한숨만 쉬고 있는 것이었다. 프랑숌은 참지 못하고 쇼팽에게 ‘돈은 있을 테니 건강이나 걱정하라’며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쇼팽은 ‘무슨 돈?’ 하며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자신은 한 푼도 받은 게 없다고 말했다. 프랑숌과 친구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그 돈이 사라졌다고 하니 제인은 믿을 수 없어서 정말 쇼팽이 그 돈 꾸러미를 받지 않았냐고 되물었다. 그녀는 생색을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전달 여부를 굳이 확인하지도 않았고 전달 과정에서 확인증도 받지 않았으며 꾸러미에 보내는 사람의 이름도 밝혀두지 않았다고 했다.
 
쇼팽은 누가 거짓말을 했거나 도둑질을 했던지, 아니면 자신이 건망증에 빠진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돈을 전달했다고 주장하던 때에 살던 스쿠아르 도를레앙 아파트의 관리인인 에티엔느 부인은 믿을 만한 사람으로 평가되고 있었다.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제인이 잘 아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한 소설가는 용하기로 소문난 점쟁이 알렉시를 소개하며 도움을 받아보라고 권했다. 심부름꾼과 함께 그에게 갔을 때 점을 치고 난 알렉시는 심부름꾼이 3월 8일, 목요일에 매우 중요한 문서꾸러미를 가지고 어떤 사람에게 갔는데 그 꾸러미가 목적지에 제대로 도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계속해서 말하길 그렇다고 그 심부름꾼이 그 꾸러미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고 심부름꾼은 계단을 내려가서 있는 어떤 방에서 거기에 있던 키가 큰 여인에게 그것을 전해 주었다는 것이었다. 알렉시가 얘기하는 꾸러미를 받은 사람은 아파트 관리인 에티엔느 부인이 틀림없었다. 심부름꾼은 혐의를 벗었다.
 
다시 알렉시에게 그 꾸러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냐고 물었다. 그는 그 꾸러미를 받은 사람의 머리카락 한 줌을 가져다 주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제인을 대신해서 언니 어스킨 부인이 쇼팽에게 달려와서는 점쟁이가 말한 것을 전하며 관리인의 머리카락이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쇼팽이 거주했던 샤이요 거리의 건물은 지금 호텔의 일부가 되었다. 건물에 부착된 명패에는 ‘쇼팽이 1849년 5월부터 8월까지 이곳에 거주했다’라고 쓰여있다. 제니 린드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이곳에서 가까운 샹젤리제 거리에 3주간 체류했다. [사진 송동섭]

쇼팽이 거주했던 샤이요 거리의 건물은 지금 호텔의 일부가 되었다. 건물에 부착된 명패에는 ‘쇼팽이 1849년 5월부터 8월까지 이곳에 거주했다’라고 쓰여있다. 제니 린드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이곳에서 가까운 샹젤리제 거리에 3주간 체류했다. [사진 송동섭]

 
쇼팽은 연극을 생각해 냈다. 사람을 보내 불어사전과 손수건 몇 장이 필요하다며 에티엔느 부인에게 좀 가지고 오라고 했다. 급히 이사하느라 쇼팽의 많은 짐은 아직도 옛 아파트에 그대로 있었다. 그 관리인이 왔을 때 쇼팽은 그녀에게 말했다.
 
제인의 언니 어스킨 부인이 한 영매(靈媒)를 알고 있는데, 그 영매는 환자의 머리카락 한줌이 있으면 그 환자의 병을 낫게 하는 신기한 힘이 있다며 병을 앓고 있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은 그것을 믿지 못하겠다며 에티엔느 부인이 대신 머리카락을 좀 잘라주면 먼저 그것을 그 영매에게 보여주겠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만약 그 영매가 그 머리카락이 건강한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채면 그 영매의 능력을 인정하고 그때 가서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쇼팽은 그 영매가 머리카락을 받으면 틀림없이 자신의 것으로 착각할 거라고 말했다. 쇼팽의 요청에 에티엔느 부인은 기꺼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줌 잘라주었다. 관리인이 떠나자 쇼팽은 그 머리카락을 잘 싸서 어스킨 부인에게 전해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어스킨 부인은 알렉시에게 달려갔다. 점쟁이는 머리카락을 보자 그것이 꾸러미를 받은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보았다. 그리고는 신기한 힘을 발휘하여 그 문제의 꾸러미가 분실되지도, 전달되지도, 뜯기지도 않은 채 그 관리인의 집에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관리인의 방 침대 가까이에 있는 탁자를 잘 살펴보라고 말했다. 조심스럽게 접근해서 그 꾸러미를 달라고 하면 내 줄 거라고도 말했다. 어스킨 부인은 바로 쇼팽에게 와서 들은 것을 전하고는 스쿠아르 도를레앙 아파트로 달려갔다.
 
1897년 파리의 한 거리가 쇼팽 가(街)로, 그리고 연결된 5거리는 쇼팽 광장으로 명명되었다. 현재 쇼팽이라는 이름은 광장의 이름으로만 남아있고 거리이름은 르캥(Lekain)으로 바뀌었다. 1900년 경의 쇼팽 가의 전신전화국 모습. [사진 www.parisrues.com]

1897년 파리의 한 거리가 쇼팽 가(街)로, 그리고 연결된 5거리는 쇼팽 광장으로 명명되었다. 현재 쇼팽이라는 이름은 광장의 이름으로만 남아있고 거리이름은 르캥(Lekain)으로 바뀌었다. 1900년 경의 쇼팽 가의 전신전화국 모습. [사진 www.parisrues.com]

 
방에 혼자 있던 에티엔느 부인은 심부름꾼과 대질 끝에 석 달 전의 일을 기억해냈다. 그 꾸러미의 행방을 묻자 에티엔느 부인은 자신의 방 탁자의 등잔 사이에 던져 놓고 잊어 버렸던 꾸러미를 찾아내서 건네 주었다. 역시나 꾸러미는 뜯기지도 않았고 열어보니 돈은 그대로 들어있었다.
 
에티엔느 부인은 서류뭉치라고 생각한 꾸러미를 받고서, 자신이 전해주겠다고 하고는 등잔 사이에 던져놓았지만 곧 그것을 잊어버렸다고 했다. 그녀는, 나중에 그것이 떠올랐지만 너무 늦었기 때문에 꾸중을 들을 까봐 걱정이 되어서 그냥 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쇼팽을 돌보던 제자의 생각은 달랐다. 관리인은 병약한 쇼팽이 곧 죽을 거라 생각했고 그가 죽은 다음에 자기가 그 꾸러미를 차지하려 했다고 그는 믿었다. 아무튼 큰 돈이 든 꾸러미가 그대로 다시 돌아왔다. 모든 것이 꾸민 듯 신기하게 돌아갔다. 쇼팽은 이런 놀라운 기적이 믿어지지 않아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오랫동안 알렉시라는 점쟁이의 이름이 그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런데, 돈을 찾긴 했지만 쇼팽은 자신의 궁핍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돈을 받지 않겠다고 우겼다. 언제나 돈에 관한 한 대범한 모습을 보이려 애쓰던 쇼팽이었다. 그는 절대로 학생들이나 주위의 귀족지인들에게 옹색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었다.
 
어스킨 부인은 제인을 대신해서 설득했다. 그녀의 설득은 간신히 받아들여져서 쇼팽은 빌리는 것으로 하고 일부만을 받았다. 1849년 7월 28일자 쇼팽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점쟁이 알렉시는 놀라운 방법으로 돈을 찾아냈다. 어스킨 부인이 15,000 프랑을 남겼다. 프랑숌에게 500프랑을 갚았다.”
 
다음 편에서는 쇼팽의 마지막 모습이 그려진다.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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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동섭 송동섭 스톤웰 인베스트 대표 필진

[송동섭의 쇼팽의 낭만시대] 한국인이 좋아하는 고전 음악가 쇼팽. 피아노 선율에 도시적 우수를 세련된 모습으로 담아낸 쇼팽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일생의 연인 상드와 다른 여러 주변 인물에 관련된 일화를 통해 낭만파시대의 여러 단면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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