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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중고차 시장이 된 대학입시장

중앙일보 2020.01.17 00:43 종합 31면 지면보기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개안의 순간이었다. 어느 고등학생이 안겨준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에게 감사 표시는 못 했다. 오히려 내 판정은 그를 불합격의 구렁텅이로 빠뜨렸겠다. 물론 지금도 그 판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야기는 혁신적 대입정책에서 시작한다. 국가경영자의 깨달음 덕분이었을 것이다. 시험 중심의 입시로는 국가 백년대계가 무리라는 자각. 그래서 입학사정관제가 시행되었다. 미국이 그런 입시를 하더라는 귀띔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미제라면 일단 받아와야 하므로.
 

주례사 향연의 생활기록부
입시가 과거의 보상 구조라
공정성 시비 사라질 길없어
더 불신사회로 추락한 한국

나는 시행 첫해부터 입학사정관이었다. 제출서류 검토하고 면접장에서 학생의 지적 수준을 가늠했다. 십여 년 쌓은 공부를 어떻게 십 분 만에 판단하느냐는 학부모의 질문도 받았다. 간단하다. 영어 실력을 보겠다고 두 시간 영어 발표를 시킬 필요는 없다. 더 중요한 건 국어고 독서다. “잔존 물량 부족으로 평가 가치가 높습니다”와 “그게 처음에는 많았는데 점점 없어져서 지금은 값이 비싸요”라는 문장 사이의 독서량 차이 판단이 어렵다면 입학사정관이 되면 곤란하다.
 
검토 서류는 학교생활기록부였다. ‘독서활동 상황’에 쓰인 독서 목록은 대개 중복되고 거의 따분한 진흙밭이었다. 물론 놀라운 독서 기록을 장착한 진주도 간혹 있었다. 몇 해 지나 드디어 개안의 고등학생이 등장하는 순간이 왔다. 『제인 에어』를 영어 원문으로 읽었다는 보석같은 기록의 주인공이었다. 500쪽이 넘나드는 벽돌책 소설에 19세기 영어다. 한국 수험생의 고단한 생활로 보면 과연 경이였다. 어수룩한 입학사정관이 감탄·격려로 버무려진 문장으로 물었다. 학생은 뒤통수를 긁적였고 입학사정관은 뒤통수를 맞았다. “두 페이지로 된 요약본입니다.”
 
개안 뒤에는 그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코스모스』를 읽었다는 학생도 그 두꺼운 책을 어찌 다 읽었느냐는 질문에 대답했다. 요약본. 소수고 예외일 수 있다. 그러나 오염된 표본이 집단의 신뢰성을 부정한다. 입학사정관의 안광(眼光)이 지배(紙背)를 철(徹)하기 시작했다.
 
학교생활기록부의 문장들은 대체로 세 개의 구조였다. 동기, 사실, 평가. 평가의 문장은 죄 상투적이었다. 이해하게 되었고 생각해 보았고 인식하게 되었고 노력할 것을 다짐했다는 이야기. 입학식에 참석해서 선후배간 우의를 돈독히 했다는 건 입학식 날 줄 서있었다는 이야기였다. 학교 주변 청소 행사에 참여하여 환경 정리의 중요성을 깊이 깨달았다는 건 뻔한 당번 활동을 한 것. 청소 벌칙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고.
 
담임교사의 의견인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은 신뢰도가 좀 더 높았다. 그러나 여기도 주례사 꽃밭이었다. 수행하고 시도하고 확인하고 발표하여 능력의 향상을 꾀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이야기가 만발했다. 역시 행간을 읽는 게 입학사정관의 역할이었다. 꾸준한 노력이 받쳐주면 대성할 재목이라 쓰였으면 지금까지 불성실했다는 이야기로 읽혔다. 시험 후 성적이 모자란 급우들을 학습지도했다는 건 시험 끝나고 점수를 맞춰봤다는 상황이겠고. ‘자기소개서’는 더욱 공허한 문장의 향연이고 그 신뢰도를 숫자로 표현하면 간단했다. 0. 자원봉사했다며 채워 넣은 건 봉사 시간이 아니고 서류의 글자들이었다. 폐차 뒷바퀴처럼 축 처져 헌혈 팻말 들고 지하철역을 배회하는 건 모두 등 떠밀리고 시간 채우러 나온 수험생들이었다.
 
미국에서 중고차 시장 광고 문안을 들여다보던 시절이 생각났다. 잘 달림, 이건 차 내외부가 형편없는데 그래도 보기보다 잘 달린다는 이야기다. 새 타이어 장착, 이건 타이어를 교체했는데 갑자기 다른 문제가 생겨 내놨다는 이야기. 대학입시장이 중고차 매매시장으로 느껴진 순간 나는 입학사정관을 그만두었다.
 
교양 수업에서 정시와 수시 중 어느 것이 더 공정한지 설명하라는 과제를 낸 적이 있다. 백 명 넘는 학생들의 결론은 명료했다. 본인이 입학한 과정이 더 공정하다는 것이었다. 모두 수긍이 가는 논리를 갖췄으되 공통의 전제 조건이 깔려 있었다. 한국의 대학입시는 학생의 미래 가능성에 대한 투자가 아니고 과거 노력에 대한 보상이었다. 보상 근거자료로 수직계열화된 대학 명단이 구전유포되었고 덜 노력하여 더 높은 계단에 올라선 자에 대한 의심과 불만을 사회가 공유했다. 계층이동, 사다리, 개천의 용이 모두 입시제도의 다른 표현에 지나지 않았다. 입시 결과가 보상인 한 공정성 시비가 사라질 길은 없어 보였다.
 
입시라는 이 끔찍하게 복잡하고 민감한 물건은 보는 이마다 평가와 대안이 다르다. 그래서 건축가도 지역균형발전 관점으로 입시를 볼 수 있다. 최고의 서울대 입시방법은 지역균형선발과 면접으로 통일하는 것이겠다. 학생들이 산간오지로 전학 가겠다고 다투어 나설 것이니 강남 집값은 잡힐 것이다. 지방도시 고령화 걱정도 과거형이 될 것이다. 선발추천서 쓰는 교사 신뢰를 질문할 수도 있겠다. 지난 해 한국은 극한종합총체불신사회로 추락했다. 문서 내용을 넘어 문서 자체의 진위까지 의심했다. 쟁점은 입시인데 교육부장관 아니고 법무부장관이 분쟁의 진원이었던 것이 기이했다. 어찌 되었건 학부모보다는 교사 신뢰도가 그나마 높지 않겠는가.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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