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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훈 논설위원이 간다] 일대일로, 중화 질서로 들어오라는 달콤한 유혹

중앙일보 2020.01.17 00:39 종합 26면 지면보기

중국 광둥성·푸젠성에서 본 일대일로

‘감지 중국(感知 中國, Experience China)’에 나선 일대일로 경유 국가의 기자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이집트, 파키스탄 등에서 20명이 참가했다. 가운데 사진은 주하이~홍콩~마카오를 잇는 강주아오 대교. 고대훈 기자, [AP=연합뉴스]

‘감지 중국(感知 中國, Experience China)’에 나선 일대일로 경유 국가의 기자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이집트, 파키스탄 등에서 20명이 참가했다. 가운데 사진은 주하이~홍콩~마카오를 잇는 강주아오 대교. 고대훈 기자, [AP=연합뉴스]

기술 굴기(屈起)와 영광의 역사 부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야심 차게 추진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 One belt One road)의 동력과 명분을 응축한다. 21세기판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를 개척하는 일대일로는 중국의 거대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찬란했던 과거를 재현하려는 중국몽(中國夢)의 실행 프로젝트다.
 

중국의 기술 굴기와 역동성 목격
세계의 무역·교통망을 연결하는
중국 중심의 거대 경제블록 구축
한국의 일대일로 동참 압박 커져

중국 정부는 연말·연초 한국을 비롯해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이집트, 파키스탄 등 10여 국가의 기자 20명을 중국 남부 광둥성(廣東省)과 푸젠성(福建省)으로 초청했다. 기자들은 한국을 제외하고는 모두 일대일로에 접해 있는 연선(沿線) 국가에서 날아왔다. 해상 실크로드(一路)가 시작되는 거점 도시들의 경제적 발전상과 600년 전 바닷길을 열었던 역사적 자취를 밟아보라는 취지였다. 광둥성에서 광저우(廣州)·주하이(珠海)·후이저우(惠州)를, 푸젠성에서 샤먼(廈門)·취안저우(泉州)·푸저우(福州)를 탐방하며 그 가능성을 살펴봤다.
  
기술 굴기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광저우 황푸(黃浦) 지구. IT, 바이오, 반도체 등 첨단 분야의 기업과 스타트업들이 모여 있는 연구개발 단지다. 세계적인 드론 업체 이항(EHang)도 그중 하나다. 무게 340㎏으로 승객 2명을 태울 수 있는 무인 드론 ‘EHang216’을 소개할 때 그들의 기술적 자부심이 전해왔다. 광저우를 시작으로 세계 도시로 드론 택시를 확산하겠다는 그들의 계획이 머지않은 미래임을 직감했다. 또 세계적인 가전회사로 도약한 TCL,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3D 프린터 업체, CCTV를 이용한 3D 건물 관제시스템 업체 등 전자와 IT 혁신 현장도 소개했다. 중국이 더는 ‘세계의 하청공장’ ‘굴뚝산업’이 아님을 강조하는 듯했다.
 
주하이에선 홍콩과 마카오를 잇는 해상대교인 강주아오(港珠澳) 대교로 데려가 토건 기술력을 과시했다. 2018년 10월 개통한 세계에서 가장 긴 해상 대교(55㎞)인 강주아오 대교는 13조원의 공사비에 8년에 걸쳐 세운 ‘세계 7대 기적의 하나’라고 자랑한다.
  
해상 실크로드 원조
 
실크로드

실크로드

푸젠성(인구 3856만명)에서는 과거 해상 실크로드의 원조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흔적들이 남아 있다. 취안저우의 이슬람 사원 칭징스(淸淨寺)는 북송(北宋) 때인 1009년에 창건된 중국 최초의 이슬람사원이다. 10세기 전에도 이미 국제 무역도시라는 얘기다. 푸저우는 명(明)나라 때 정화(鄭和) 함대가 출항한 곳이다. 정화의 7차례에 걸친 항해는 육지로만 집중됐던 중국의 지리적 인식이 바다를 통해서도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확장되는 계기가 됐다.
 
솔직히 수박 겉핥기의 견학 수준으로 중국을 판단할 순 없다. 광둥성의 경우 중국 경제를 선도하는 지역이다. 인구 1억1300만 명(2018년 기준)을 가진 광둥성의 GDP 총액은 1조4000억 달러로 한국의 1조 7200억 달러에 근접하고, 중국에서 가장 살 사는 곳이다. 광저우와 주하이의 1인당 GDP는 각각 2만3000달러와 2만3900달러에 달해, 중국 전체 14억 인구의 평균 1만 달러에 비해선 훨씬 높다는 점에서 중국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
 
그렇지만 8일 동안 2000㎞가량을 이동하면서 접한 도시들은 역동적 기운을 뿜어냈다. 어마어마한 개발 규모와 도시의 풍광은 인상적이었다. 촌스러운 중국을 탈피하고 세련된 중국으로의 변신을 목격했다. 황푸는 정갈한 신도시풍의 첨단 연구단지 모습이었고, 소박한 사무실에는 자유분방한 젊은이들만 보였다. 남중국해와 강주아오 대교를 끼고 펼쳐진 수십 ㎞의 주하이 바닷가와 서구식으로 개발된 샤먼의 바닷가에는 전 세계 최고급 차량이 쉼 없이 오가고 고급 빌라, 식당, 호텔, 명품샵이 즐비했다. 마치 여유로운 해운대와 하와이에 온 분위기라고나 할까.
 
다른 한편으로는 하늘로 솟은 셀 수조차 없이 많은 도시의 크레인을 보며 ‘무섭게 발전하고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그만큼 경제가 돌아간다는 방증 아닌가. 1인당 GDP 1만2500달러의 후이저우의 경우, 시내는 온통 공사판이었다. 이 지역의 한 관리는 “아파트 분양 가격이 ㎡ 당 2만 위안(약 336만원)인데 사두면 5년 후에 두 배로 뛸 것”이라며 투자를 권유했다. 허풍 같지 않았다.
  
“중국 덕 볼 수 있지 않겠나”
 
일대일로 현장을 체험하도록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일대일로에 우호세력 구축하는, 즉 자기편을 만드는 게 목적이다. 대부분 참가 국가들의 1인당 GDP는 2000달러 정도의 개발도상국이었다. 중국과 일대일로를 통해 협력하고 함께 번영하자는 중국의 유혹은 달콤할 수 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중국신문사의 샤춘핑(夏春平) 부사장은 “일대일로는 중국과 실크로드 연선 국가의 경제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즈베키스탄 통신사의 파르피에프 부국장은 “중국의 경제력 덕을 볼 수 있으면 좋은 것 아닌가”라고 했다.
 
일대일로 속에는 중화 민족의 부흥, 즉 시진핑의 중국몽 실현이 담겨 있다. 경제적으로는 중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의 무역·교통망을 연결하는 거대한 경제블록을 구축하고, 정치적으로는 동아시아를 넘어 미국과 세계질서의 헤게모니를 양분하자는 것이다.
 
일대일로 국가도 아닌데 한국 기자는 왜 초대했을까.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틀을 깨고 중국에 줄을 서라는 무언의 압박은 아닐까. 굴기한 중국의 중화 질서에 들어오라고 것은 아닐까.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이냐 일대일로냐. 마치 햄릿의 죽느냐 사느냐만큼 어려운 선택이 우리를 점점 죄어오고 있다.
 
일대일로는 미국과의 헤게모니 쟁탈전
현지 언론의 요청으로 샤먼항 부두을 배경으로 선 취재단.

현지 언론의 요청으로 샤먼항 부두을 배경으로 선 취재단.

“일대일로는 대표적인 중화 민족의 부흥 전략이다. 실크로드가 열린 건 한(漢, 기원전 202~220년)나라 때다. 그 길을 따라 교역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진 시기는 당(唐, 618~907년)대였다. 강한성당(强漢盛唐, 강력한 한나라와 융성한 당나라)은 바로 중화 민족의 가장 위대했던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일대일로는 바로 그 시기의 영광을 되살리는 것이다.” (유상철 외, 『차이나 인사이트』)
 
명(明, 1368∼1644)나라 때 정화(鄭和·1371~1433년) 함대는 1405년부터 28년간 7차례의 대항해로 인도양, 호르무즈 해협, 아프리카 동부 연안까지 다녀왔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1492)보다 90여 년을 앞섰다. ‘해양 실크로드’을 개척한 대원정이었던 셈이다.
 
시진핑 주석이 일대일로 구상을 밝힌 건 2013년 9월 카자흐스탄 방문(육상 실크로드), 11월 인도네시아 방문(해상 실크로드)에서였다. 중국 북방에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에 닿는 육상(一帶), 중국 남부에서 해상을 따라 동남아~서남아~아프리카~중동~유럽으로 연결되는 해상(一路) 두 축으로 추진되고 있다. 역사 속 찬란했던 땅과 바다의 교역망을 21세기에 부활하자는 비전이다.
 
현재 실크로드가 지나가는 수십 개 국가에서 도로, 철도, 항만, 파이프라인 등 SOC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아시아를 비롯해 아프리카, 아랍, 유럽연합(EU)과 협력포럼을 만드는 등 100여개 국가와 국제기구가 협력 의사를 밝혔고, 40여개 국가와 일대일로 공동건설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시진핑의 중국몽이라는 원대한 야망이 질주하고 있다.
 
고대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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