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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이어 007 제임스본드 車도 잡는다...中 지리차의 질주

중앙일보 2020.01.16 05:00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애스턴마틴의 차세대 하이퍼카 '발할라' 공개 행사. 전세계 500대 한정 생산되는 발할라는 유럽 기준 최고 속도 354km, 최고 출력 1000마력, 제로백 2.5초 이내의 성능을 자랑하며 2021년 출시 예정이다. 예상 판매가는 20억 원. [최승식 기자]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애스턴마틴의 차세대 하이퍼카 '발할라' 공개 행사. 전세계 500대 한정 생산되는 발할라는 유럽 기준 최고 속도 354km, 최고 출력 1000마력, 제로백 2.5초 이내의 성능을 자랑하며 2021년 출시 예정이다. 예상 판매가는 20억 원. [최승식 기자]

중국 지리(吉利)자동차가 경영난에 빠진 영국 럭셔리카 메이커 애스턴 마틴에 자금을 투입하기로 하면서 지리차의 해외 확장에 다시 한 번 눈길이 쏠리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지리차가 애스턴 마틴 지분 확보를 위해 실사를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FT에 따르면 애스턴 마틴은 2018년 기업공개(IPO) 이후 주가가 70% 이상 떨어지고 수익이 급감하는 등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애스턴 마틴은 현재 지리차를 비롯해 포뮬러원(F1) 레이싱 팀을 보유한 캐나다 갑부 로런스 스트롤 등 전략적 투자자들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애스턴 마틴은 007 영화 속 제임스 본드가 탄 차로도 유명하다.
 
지리차는 2010년 볼보를 인수한 데 이어 2018년 메르세데스-벤츠 지분 9.7%를 매입해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또 영국 스포츠카 제조업체 로터스와 말레이시아 국영 자동차 회사 프로톤도 인수하는 등 문어발식 확장을 이어 왔다.

지리상용차가 만든 전기트럭 E200. 볼보자동차의 주행거리 연장 기술이 적용됐다. [사진 지리자동차 홈페이지]

지리상용차가 만든 전기트럭 E200. 볼보자동차의 주행거리 연장 기술이 적용됐다. [사진 지리자동차 홈페이지]

지리차가 해외 확장에 열을 올리는 것은 '싸구려' 이미지를 불식하고 기술력을 높여 글로벌 프리미엄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해서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생산 대수가 이제 겨우 100만 대를 넘어선 지리차와 같은 후발 주자는 사실 인수합병(M&A) 외에 성장할 방법이 없다”며 “아무리 차를 열심히 만든다 해도 기성 자동차 업체 반열에 오르기엔 현실적인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지리차의 ‘굴기’는 단순히 완성차 브랜드 인수에 그치는 게 아니다. 수년 째 적자를 내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소형차 브랜드 ‘스마트’의 지분 50%를 사들여 전기차 합작법인으로 전환한 게 한 예다. 생산라인을 중국으로 옮겨 원가를 절감하고 세계 무대에서 벤츠 브랜드를 활용하면 승산이 있다고 본 것이다. 지리차는 또 독일 볼로콥터와 미국 테라푸지아 등 플라잉카 업체도 인수하거나 지분을 취득했다.
지난해 중국 항저우 지리상용차 본사에서 열린 '한국형 전기상용차의 개발 및 한국을 포함한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협력 체결식'에서 유재진 ㈜포스코인터내셔널 상무, 린샤오후 지리상용차그룹 부사장, 김석주 ㈜아이티엔지니어링 대표(왼쪽부터)가 악수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인터내셔널·큐로그룹]

지난해 중국 항저우 지리상용차 본사에서 열린 '한국형 전기상용차의 개발 및 한국을 포함한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적 협력 체결식'에서 유재진 ㈜포스코인터내셔널 상무, 린샤오후 지리상용차그룹 부사장, 김석주 ㈜아이티엔지니어링 대표(왼쪽부터)가 악수하고 있다. [사진 포스코인터내셔널·큐로그룹]

중국 자동차 회사 가운데 지리차가 유독 해외 확장에 적극적인 것은 지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국 자동차 회사가 국영기업이라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10곳 이상되는 중국의 자동차 회사 가운데 국영기업이 아닌 곳은 지리차와 BYD 정도 뿐이다. 1984년 21살 때 냉장고 부품업체를 차렸던 지리차 리슈푸(李書福) 회장은 89년 정부가 지정한 업체만 냉장고를 생산하라고 하자 폐업했다. 이후 97년 국영기업 밖에 없던 자동차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생산 허가가 나오지 않아 고초를 겪기도 했다.
 
지리차가 애스턴 마틴에 돈을 쓰는 것에 대해선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중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2019년 중국 내 자동차 판매량은 전년 대비 8.2% 감소했다. 2018년에 이어 2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또 앞으로 전기차∙자율주행차 등 신기술 투자에도 많은 돈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시점에 적자만 내는 프리미엄 브랜드에 돈을 대는 게 합당하냐는 논리다.
 
한편 중국 베이징자동차(BAIC)도 메르세데스-벤츠 지분 10% 매입에 나선 것으로 알려져 독일 내에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리차와 BAIC를 합치면 20%가 되는데 이사회 의결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FT는 최근 메르세데스-벤츠 주주총회에서 "엠블럼을 용(龍)으로 바꾸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 섞인 우려가 나오기도 했다고 전했다. 국내 소셜미디어(SNS)에선 "앞으로 국내 벤츠는 중국 선양 공장에서 들여오는 것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됐는데, 벤츠 측은 부인한다. 
 
전북 군산의 한국GM 공장을 인수한 ㈜명신도 중국 전기차 바이톤의 '엠바이트'를 생산해 국내 시판할 계획이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중국 자동차 회사는 물론 전기차·부품업체 등의 약진은 국내 자동차 업계에 좋은 소식은 아니다"며 "중국 브랜드들은 앞으로도 한국에 근접하는 기술력과 싼 가격을 내세워 국내 업체들을 위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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