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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선장군' 됐지만, '민주주의자' 색깔에 상처입은 이인영

중앙일보 2020.01.15 05:02
13일 오후 국회 본청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실 입구부터 안쪽 집무실까지 여러 개의 꽃송이가 가지런히 놓였다. 이날 본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를 위해 당직자들이 만든 ‘꽃길’이었다. 민주당은 이날 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등 범여(汎與)와 함께 국회 신속처리(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마무리했다. 본회의 산회 후 이해찬 민주당 대표 주재로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열린 신년 만찬에서도 이 원내대표를 향한 동료 의원들의 격려가 쏟아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8년 당 대표 예비경선에서 조기 탈락의 고배를 마신 뒤 그는 한때 주변의 원내대표 출마 권유에도 “의원들에게 살가운 성격이 못 된다”며 머뭇거렸었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5월 ‘비문’ 원내대표로 당선된 지 8개월여 만에 ‘개선장군’ 대접을 받고 있다. 원내대표 경선에서 그와 경쟁했던 김태년 민주당 의원도 “전임(홍영표 의원)이 만들어 놓은 패스트트랙 법안을 다 처리한 것은 큰 성과다. 원내대표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것”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실제 이 원내대표는 지난해 9월 ‘조국 사태’ 국면에선 ‘조국 사수’의 선봉에 섰다.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 과정에선 무조건 반대로 일관한 한국당을 배제한 채 ‘4+1’ 체제를 이끌어 선거법을 포함한 모든 법안을 처리하는 추진력을 보였다. 당내에선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국가보안법 개정 등 4대 개혁입법을 한꺼번에 몰아붙이다 실패했던 천정배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의 사례를 거론하며 이 원내대표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이들도 있다. 민주당의 한 초선의원은 “이번 입법 성과로 이 원내대표는 명실상부한 ‘당의 리더’로 거듭나게 된 거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여야 의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지난해 12월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심재철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여야 의원들이 대화하고 있다. 김경록 기자

그러나 당 내부와 지지층에선 ‘개선장군’ 이미지를 얻었지만, 평소 고집해 온 ‘민주주의자’라는 색깔에는 큰 상처를 입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제1야당이 반대하는데도 수(數)의 정치로만 일관한 것은 민주주의 원리에 역행한 것”이라고 했다. 자유한국당에선 “일방통행식 동물국회를 만든 주범인 이 원내대표는 다음 총선에서 심판해야할 주요 인물”(핵심 당직자)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실제로 이 원내대표가 보인 모습은 그가 ‘정치적 아버지’로 여기는 고(故)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과도 많이 달랐다. 김 전 의장은 2003년 9월부터 2004년 5월까지 통합신당과, 이어진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를 지냈다. 대통령 탄핵위기 속에 분열해 원내 47석에 불과한 ‘미니(mini)’ 여당의 원내대표여서 단순비교는 어렵지만 그의 말과 행동은 이 원내대표가 보인 힘의 정치와는 달랐다. 당시 김 원내대표는 한나라당·민주당·자민련 연합으로 국회 정치개혁특위에 선거법 개정안이 상정되자 “게임의 룰을 정하는 선거법에 대해 최소한의 협상조차 거부하고 폭거를 자행한 것은 헌정사에 남을 독선적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협상 국면에서는 “합의를 위해 노력하다가 안 될 경우 물리력으로 저지할 생각은 없다”고 물러섰다. 게임의 룰과 관련해선 끝까지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신념이 작용한 결과라고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이인영 의원실 한 켠에는 고(故)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윤성민 기자

이인영 의원실 한 켠에는 고(故)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의 사진이 걸려 있다. 윤성민 기자

14일 중앙일보와 통화한 이 원내대표의 목소리도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입법전쟁에서 승리해 시원한가.
“시원하기는…. 아쉽다. (한국당과) 같이 못한 게 제일 아쉽다.”
한국당 탓인가.
“미리미리 얘기하면서 서로 입장 차이를 좁혀야지, 서로 버티다가 나중에 다 정리된 다음에 협상하자고 하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더라.”
그래도 당내에선 성과라고들 하지 않나.
“법안을 다 처리했다는 거 보다도 마지막에 그나마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철회하고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회복하면서 끝낸 것이 그나마 위안이다.”
 
패스트트랙 정국의 여·야 대립이 절정이던 때도 사석에서 “한국당과 이렇게까지 척지고 싶지는 않았다” “다 끝나면 친했던 한국당 의원들과는 소주라도 한잔 하고 싶다”고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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