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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말고 이승준도 있다···아카데미 후보 오른 '29분 다큐'

중앙일보 2020.01.15 05:00
단편 세월호 다큐 '부재의 기억'으로 올해 한국영화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상 단편 다큐 부문 후보에 오른 이승준 감독. 사진은 지난해 장편 '그림자꽃'으로 최우수한국다큐상을 수상한 DMZ국제다큐영화제 때 모습이다. [사진 DMZ국제다큐영화제]

단편 세월호 다큐 '부재의 기억'으로 올해 한국영화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상 단편 다큐 부문 후보에 오른 이승준 감독. 사진은 지난해 장편 '그림자꽃'으로 최우수한국다큐상을 수상한 DMZ국제다큐영화제 때 모습이다. [사진 DMZ국제다큐영화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만이 아니다. 13일 미국 아카데미상 최종 후보 발표에서 이승준(49) 감독의 세월호 다큐 ‘부재의 기억’이 단편 다큐 부문 후보 다섯 편 중 하나로 선정됐다. 지난달 이 부문 예비후보(쇼트리스트)에 호명된 데 이어서다. ‘기생충’과 함께 아카데미상 최종 후보에 오른 사상 최초 한국영화가 된 셈이다.
 

세월호 단편 다큐 ‘부재의 기억’
한국영화 최초 아카데미 후보
이승준 감독 “세월호 참사 2시간,
국가가 부재했던 시간들 담았다“

서울대, 방송 다큐 PD 출신…
다큐계 칸영화제 대상도 수상

14일 중앙일보와 통화한 이 감독은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발표를 접했다며 소감으로 “참 다행”이라고 했다. “이런 계기를 통해 (세월호 참사를) 많이 알려달라고 했던, 지금 이 순간도 힘들 유가족들과 얘기를 지킬 수 있어서”다.  
 

"세월호 참사, 국가가 없던 2시간"

세월호 다큐 '부재의 기억'에서 바다 위 배를 막막히 바라보는 유가족 뒷모습. 이승준 감독은 "편집하다 문득문득 멈춰둔 영상 속 아이들 표정을 볼 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사진 EBS국제다큐영화제]

세월호 다큐 '부재의 기억'에서 바다 위 배를 막막히 바라보는 유가족 뒷모습. 이승준 감독은 "편집하다 문득문득 멈춰둔 영상 속 아이들 표정을 볼 때 가장 힘들었다"고 했다. [사진 EBS국제다큐영화제]

그는 제목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를 돌아보면 그 당시 2시간 동안 국가가 없었거든요. 한 나라에 어떤 사고가 일어났을 때 국가는 응당 국민의 안전을 책임질 거다. 우리는 그걸 다 믿고 권력을 주는 거잖아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상식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일들이 있었고, 국민이 믿고 권력을 주었던 그 국가가 없었던 시간. 그때에 대한 기억, 그런 의미로 제목을 만들었습니다.”
 
‘부재의 기억’은 기존 세월호 다큐들과 다르다. 304명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의 책임소재와 원인을 파고들기보단, 당시 현장 영상과 통화 기록으로 그날 상황을 되새기는 데 집중했다.  
 

당일 영상·통화기록 "원칙·철학 없이 엉망"

이승준 감독의 단편 다큐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 참사 당시를 영상과 음성 기록으로 시시각각 되살리며 비극의 원인을 되묻는다. 사진은 다큐 한 장면. [유튜브 캡처]

이승준 감독의 단편 다큐 '부재의 기억'은 세월호 참사 당시를 영상과 음성 기록으로 시시각각 되살리며 비극의 원인을 되묻는다. 사진은 다큐 한 장면. [유튜브 캡처]

화면 가득한 바다와 함께 오전 8시52분이란 자막. 이윽고 목소리가 들려온다.  
 

“119 상황실입니다.” “살려주세요. 배가 침몰되는 것 같아요.” (중략) “배가 어디 있습니까?” “위치를 잘 모르겠어요.” “거기 뭐 GPS 경위도 안 나오나요? 경도하고 위도? 배 이름이 뭡니까, 배 이름이.” “세월호요. 세월호.”

 
2014년 4월 16일 그날 세월호에서 걸려온 첫 신고전화다. 이어진 장면에서 배 안에 실려 있던 차량들이 세차게 흔들리며 서로 부딪힌다. 시간이 갈수록 급격히 기울어지는 배 안팎 상황이 시시각각 교차된다.  
 
제주도로 수학여행 가던 325명 단원고 학생들을 포함한 476명 승객들의 당시 대화, 가족에 보낸 “보고 싶다” 문자가 해양경찰‧청와대 등의 늦장 대응 통화 녹취 음과 엇갈린다.  
다큐 '부재의 기억' 첫 장면.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8시52분 119에 승객이 배가 기울었다고 신고한 통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유튜브 캡처]

다큐 '부재의 기억' 첫 장면. 세월호 참사 당일 오전 8시52분 119에 승객이 배가 기울었다고 신고한 통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유튜브 캡처]

“현재 계신 위치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8시56분경의 안내방송, 불안한 듯 잡담에 열중하는 선실 내 학생들, 불과 한 시간 뒤 배의 선장이 먼저 구명보트로 탈출하는 모습, 딸과 마지막 통화할 때 “애를 빨리 나오라 했어야 했는데 선생님 말씀 잘 들으라했다”는 단원고 희생자 학생 어머니의 자책이 가슴을 죄며 이어진다.
 
격앙된 내레이션 하나 없이 당시 현장 기록을 편집한 29분짜리 짧은 영상이지만, 마음을 추스르며 보기가 쉽지 않다. 다큐는 참사 이후 촛불정국과 민간잠수부들의 속내, 아직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세월호 진상 촉구에 대한 목소리까지 담아냈다.  
 
다큐 '부재의 기억'은 참사 현장 수습에 자원한 민간 잠수부들이 이후 트라우마에 괴로워한 사실도 깊이 있게 다룬다. [사진 EBS국제다큐영화제]

다큐 '부재의 기억'은 참사 현장 수습에 자원한 민간 잠수부들이 이후 트라우마에 괴로워한 사실도 깊이 있게 다룬다. [사진 EBS국제다큐영화제]

 

유튜브서 이미 240만명 넘게 봤다  

유튜브엔 지난해 4월 공개돼 지금껏 조회수가 도합 240만회를 훌쩍 넘었다. 공동 제작에 참여한 미국 미디어그룹 ‘필드 오브 비전(Field of Vision)’과, 이를 공유한 미국 매체 ‘뉴요커’ 계정에서다. 영어 제목 ‘In the Absence’로 검색하면 지금도 볼 수 있다.  
 
영화 커뮤니티 ‘익스트림 무비’ 한 회원은 “(아카데미상) 노미네이트 됐다는 소식에 기뻤는데, 보면서 이걸 다른 나라 사람들이 봤다는 사실에 한없이 부끄럽고 참담해졌다”는 감상을 남겼다.
 

다큐계 칸영화제 대상 받았던 감독

이번 영화는 온라인 기반 비영리 다큐 제작‧배급 단체 ‘필드 오브 비전’이 이승준 감독에게 2016년 촛불정국 관련 다큐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 감독은 오랫동안 작업해온 감병석 프로듀서와 함께 오히려 “촛불정국과 연관돼있고 해결되지 않은 고통이 남아있는” 세월호 얘기를 역제안했다.
 
이승준 감독이 다큐계 칸영화제로 불리는 네덜란드국제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달팽이의 별'. 장애인 커플의 깊은 사랑을 담담하게 담았다. 독립다큐로는 이례적으로 국내 2만 관객을 모으며 대중에 호평 받았다. [사진 영화사조아]

이승준 감독이 다큐계 칸영화제로 불리는 네덜란드국제다큐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달팽이의 별'. 장애인 커플의 깊은 사랑을 담담하게 담았다. 독립다큐로는 이례적으로 국내 2만 관객을 모으며 대중에 호평 받았다. [사진 영화사조아]

서울대 출신인 그는 TV 다큐 연출로 출발했다. KBS 수요기획 ‘들꽃처럼, 두 여자 이야기’(2007)로 한국독립PD상 다큐멘터리 부문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장애인 커플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극장용 장편 다큐 ‘달팽이의 별’로 2011년 다큐계 칸영화제로 불리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국제다큐영화제(IDFA) 대상, 미국 선댄스다큐멘터리 펀드 등에 선정되는 등 휴먼 다큐로 국제 무대에서 인정받았다. 어떤 ‘사건’을 조명한 작품은 ‘부재의 기억’이 처음이다.  
 

"저도 고2 딸 있어…마음의 빚 컸다"

그는 거듭 마음의 빚을 얘기했다. 
“세월호 사고가 일어났을 때 다큐하는 동료들이 현장에 많이 내려갔어요. 기존 미디어가 제 역할 못하고 있으니, 우리가 기록해야겠다고. 그때 저는 용기가 안 났어요. 사고가 있고 나서 뉴스도 잘 못 봤어요. 현장에서 녹화버튼을 누를 자신이 없더라고요.”
한국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상 단편 다큐 부문 후보에 오른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 세월호 당시 영상과 음성 기록을 교차해서 참사의 원인을 되물었다. [사진 EBS국제다큐영화제]

한국영화 최초로 아카데미상 단편 다큐 부문 후보에 오른 이승준 감독의 '부재의 기억'. 세월호 당시 영상과 음성 기록을 교차해서 참사의 원인을 되물었다. [사진 EBS국제다큐영화제]

 
그 자신도 올해 고등학교 2학년생 딸을 둔 아버지라는 그는 “사고 있고선 교복 입은 애들만 봐도 마음을 더 추스를 수가 없더라”고 털어놨다. 필드 오브 비전의 제안을 받고 “그렇게 남은 짐이라고 할까, 빚을 뒤늦게나마 짊어져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세월호 유가족협의회에 공식 지원받아 영화를 함께 만들기 시작했다. 2017년 봄 세월호가 목포 신항에 인양되기 한 달 전부터 촬영에 돌입했다. 제작 기간을 단축해 참사의 현실을 더 빨리, 더 널리 유통하기 위해선 장편 아닌 ‘단편’이 효과적이었다.  
 

유가족 "세월호 영상, 내 아이 살아있던 순간"

다큐에서 유가족이 인양된 세월호에 관한 진실을 촉구하는 장면이다. 경찰이 가로막은 녹슨 철창을 쥐고 애원하고 으르며 "기다리다가 죽었어! 뭘 기다려 기다리기는!"하는 외침이 담겼다. [사진 EBS국제다큐영화제]

다큐에서 유가족이 인양된 세월호에 관한 진실을 촉구하는 장면이다. 경찰이 가로막은 녹슨 철창을 쥐고 애원하고 으르며 "기다리다가 죽었어! 뭘 기다려 기다리기는!"하는 외침이 담겼다. [사진 EBS국제다큐영화제]

“처음 유가족 상영회 때 못 견디고 중간에 나가는 분들이 계셨어요. 유가족들과 계속 협의하며 만든 작품인데도요. ‘배 넘어가는 게 당신들한텐 뉴스 통해 많이 본 그림이지만, (우리한텐) 저 안에 내 아이들이 살아있는 순간입니다’란 말씀에 너무 힘들었죠. 상영이 다 끝나고 한 어머님이 ‘작품 잘하셔서 좀 많이 알려주세요’ 하시더군요.”

 
그는 유가족들이 “당시 있었던 일을 담담히 표현한 작품이 필요했다. 외부에 설명할 일 있으면 말보단 이 영화 한번 보여주는 게 효과적”이라고 좋아하셨다며 기뻐했다. 아카데미 쇼트리스트에 오른 후 뉴욕‧LA 상영회 땐 관객들에 나눠주라며 유가족들이 직접 만든 기념품과 엽서글을 전해주기도 했단다.  
 

미국·네덜란드 관객들 "자국 참사 떠올리며" 

‘부재의 기억’은 이런 미국 시사를 포함해 암스테르담국제다큐영화제, EBS국제다큐영화제에서도 해외 관객을 만났다. 이 감독은 “해외 관객들도 똑같이 눈물 흘리고 크게 공감해주셨다”면서 “예를 들어 선장이 먼저 나오는(배에서 탈출하는) 장면에선 다들 한숨을 팍 쉬며 웅성웅성한다. 어떤 의미인지, 얼마나 큰 문제인지 아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영 후 관객과 대화할 때 불을 딱 켜면 눈이 다 빨개져있고 몇 분씩 와서 손잡고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다 하셨다”고 돌이켰다. 
다큐 한 장면. 세월호 참사 이후 민간 잠수부가 선박 내부 시신과 물품 등을 탐색하고 있다. [사진 EBS국제다큐영화제]

다큐 한 장면. 세월호 참사 이후 민간 잠수부가 선박 내부 시신과 물품 등을 탐색하고 있다. [사진 EBS국제다큐영화제]

“단순히 한국의 지역적 문제가 아니라 자기네 정부, 우리도 이런 일 있었다”는 반응은 이번에 함께 아카데미에 진출한 ‘기생충’과 같았다. 

“영국은 오래된 아파트에 큰 화재가 났을 때 많이 희생됐고 미국도 카트리나 허리케인 때 얘기를 하더군요. 각자 자국 일을 떠올리며 가슴아파했습니다.”

 
그는 지난해엔 브로커에 속아 의도치 않게 남한에 갇혀버린 어느 탈북여성의 다큐 ‘그림자꽃’으로 DMZ국제다큐영화제 최우수한국다큐상도 받았다. “예전엔 휴먼 다큐를 많이 했는데 앞으로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사람으로 풀어가는, 세상에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작품으로 폭을 넓혀가고 싶다”고 했다.  
 

아카데미 후보 선정 "아이들에게 큰 빚 졌다" 

“감독으로서 세월호 장편 다큐는 사건 사고 대부분의 진실이 밝혀진 다음에야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직접 세월호 장편 다큐를 만들 계획도 있느냐고 묻자, 그는 “유가족들한테 또 다른 힘이 될 수 있다면 기꺼이 하고 싶다”고 했다.  
 
‘부재의 기억’ 그리고 ‘기생충’이 사상 최초 한국영화 대표로 나설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은 다음 달 9일(현지시간) 미국 LA 돌비극장에서 개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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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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