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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이스라엘 국기만 안밟은 시위대···지금 이란 민심 이렇다

중앙일보 2020.01.15 05:00
 
 ※ '알지RG'는 '알차고 지혜롭게 담아낸 진짜 국제뉴스(Real Global news)'라는 의미를 담은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대학 캠퍼스 바닥 한가운데에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시민 수백 명은 일부러 두 국기를 피해 가장자리로 걸어 다닙니다. 12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의 샤히드 베헤슈티대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현장입니다. 이란 정부를 향한 저항을 표출한 일종의 퍼포먼스죠. 
지난 12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샤히드 베헤슈티대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시위대가 바닥에 그려진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피해 걷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정부를 향한 저항을 표현한 것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2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샤히드 베헤슈티대에서 벌어진 반정부 시위. 시위대가 바닥에 그려진 미국과 이스라엘 국기를 피해 걷는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정부를 향한 저항을 표현한 것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시위대는 이렇게 외칩니다. 
 

“그들(이란 당국)은 우리의 적이 미국이라고 거짓말 하지만, 우리의 적은 바로 여기(이란 당국)에 있다.” 

 
BBC는 “시위대가 정부의 반미 선동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명확하고, 상징적으로 드러내려는 행동”이라고 진단했습니다.   

 
거셈 솔레이마니 사망 이후 이란 내 반미 정서가 확산하면서 잠잠했던 반정부 시위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결정적인 계기는 이란 정부의 ‘거짓말’입니다. 이란 정부는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잇따라 미사일 격추 증거를 제시하자, 사고 사흘만인 11일 뒤늦게 인정했습니다. “적의 위협으로 오인한 실수였다”고 말이죠.

비극은 지난 8일 오전 이란 혁명수비대가 이라크 내 미군 기지를 공격한 후에 발생했습니다. 경계 상태를 유지하던 혁명수비대는 우크라이나 여객기를 적기로 착각해 미사일로 격추했고, 탑승자 176명 전원이 숨지고 말았습니다. 

 
지난 11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아미르 카비르대 앞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이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1일 이란 수도 테헤란의 아미르 카비르대 앞에서 열린 반정부 시위에 참여한 한 여성이 시위 진압에 나선 경찰에 항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시위는 11일부터 시작해 사흘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12일 가디언에 따르면 시위는 테헤란·타브리즈·시라즈·케르만샤 등 이란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지난 3일 미국에 의해 제거된 거셈 솔레이마니를 추모하며 반미 정서로 결집하던 이란 여론이 이처럼 반전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반정부 시위는 왜 다시 시작됐나  

 
이란에선 경제난 속에 유가 인상에 반대하는 반정부 시위가 지난해 11월부터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란 정부는 휘발유 가격을 50%나 올리고, 구매량은 한 달에 60리터로 제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원유 추정 매장량이 세계 4위의 나라에서 말이죠. 국민들이 “먹고 살기 어렵다”고 토로하는 상황에서 이란 정부의 이런 방침은 국민적인 공분을 샀습니다.

이란의 실업자 수는 320만여 명(전체인구 8200만명)에 이르고, 1인당 GDP는 5506달러(한화 약 637만원)로 세계 95위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미국이 솔레이마니를 폭살하면서 이란인들은 반미 정서를 구심점으로 결집했습니다. 솔레이마니 사망이 반정부 시위로 위기에 처한 이란 정권을 구원한 셈이죠. 
 
미국에 의해 제거된 거셈 솔레이마니 장례식이 지난 7일 그의 고향 이란 케르만에서 열렸다. 그의 관을 실은 차량 주변에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AFP=연합뉴스]

미국에 의해 제거된 거셈 솔레이마니 장례식이 지난 7일 그의 고향 이란 케르만에서 열렸다. 그의 관을 실은 차량 주변에 수많은 인파가 몰렸다.[AFP=연합뉴스]

 
여론이 다시 반전된 건 이란이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사실을 뒤늦게 시인하면서 입니다. 이란 당국을 향한 국내외 비판이 쏟아지면서 주춤하던 반정부 시위가 다시 부활한 것입니다. 그동안 정부에 쌓였던 불만이 여객기 격추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왔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이란 수도 테헤란 인근에서 추락한 우크라이나 항공기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이 우크라이나 키예프 공항에 차려졌다. 지난 11일 한 여성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꽃을 놓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란 수도 테헤란 인근에서 추락한 우크라이나 항공기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이 우크라이나 키예프 공항에 차려졌다. 지난 11일 한 여성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꽃을 놓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특훈교수는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미국과 이란의 충돌이 솔레이마니 사망 사건으로 마무리 됐다면, 반정부 시위를 잠재우고 이란 정권이 되살아날 기회였다. 그런데 이란이 엄청난 실수를 하면서 이란을 향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그동안 잠잠했던 시위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원래의 상황으로 되돌아 간 것이라고 보면 된다.”  
 
전문가들은 이란의 젊은 세대들이 낡은 사상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점도 원인으로 꼽습니다. 이념보다 먹고 사는 문제가 훨씬 중요해졌다는 것이죠. 

더욱이 솔레이마니 제거에 대응한 이란의 보복 공격에 대해 미국은 추가 경제 제재를 예고했는데요. 
 
이희수 특훈교수는 “1979년 이란의 이슬람 혁명 이후 세대인 20~40대에게 혁명 이념은 별로 의미가 없다. 일자리, 물가 안정 등 실질적인 민생 안정이 절실한 상황에서 솔레이마니의 죽음보다 처참한 자국의 경제 현실이 더욱 중요한 문제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으로 팔레비 왕조는 무너지고,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집권해 41년간 신정 체제에서 통치하고 있죠.   
알리자데가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후 이란 국기를 펼치며 환호하고 있다. 그는 "거짓과 위선이 싫다"는 이유로 이란을 떠나 망명하겠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알리자데가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 태권도 여자 57kg급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후 이란 국기를 펼치며 환호하고 있다. 그는 "거짓과 위선이 싫다"는 이유로 이란을 떠나 망명하겠다고 밝혔다. [AP=연합뉴스]

 
익명을 원한 이란 교민은 중앙일보에 이란 젊은이들의 심경을 전했습니다. 그는 “그동안 쌓였던 정부에 대한 불만을 다 몰아서 쏟아내는 사람들이 많다”면서 “‘이 나라엔 미래가 없다’며 이란을 떠나고 싶어 하는 젊은이들도 많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이란 젊은이들의 절망감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 있었는데요. 이란의 여성 태권도 선수 키미아 알리자데가 12일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위선과 거짓이 싫어 이란을 떠나겠다”고 밝힌것 입니다. 여성 선수로서 이란에 첫 올림픽 메달을 안겨 ‘스타’가 된 그의 망명 소식은 이란 젊은이들에게 충격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시위는 길어질까 

 
다시 불붙은 이란의 반정부 시위는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시위의 근본적인 원인이 경제난인 만큼 불만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시위가 쉽게 가라앉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알라 살레 영국 랭커스터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출신에 관계없이 국민이 국가의 정당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이란 정부가 개혁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이란 시위가 장기화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지난 11일 테헤란의 아미르 카비르대 앞에 시위대가 집결하는 동안 이란 경찰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1일 테헤란의 아미르 카비르대 앞에 시위대가 집결하는 동안 이란 경찰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소셜미디어(SNS)의 활성화로 시위는 더욱 확산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실제로 이번 시위는 시민들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여 벌이고 있다고 전해집니다. 
 
이같은 이란 내 반정부 시위를 미국 정부는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 트위터에 “시위대를 죽이지 말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이란 정권을 향해 경고한 것입니다. 그는 “이미 수천 명이 당신들에 의해 죽거나 투옥됐고 세계는 지켜보고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이 지켜보고 있다”고 적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이란 시위대를 지지하는 영어와 이란어로 된 트윗을 올렸죠. 

이란 정권과 적대 관계인 미국에 있어 이란 정권이 국민의 시위로 인해 흔들리는 것 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는 트위터를 통해 이란 반정부 시위대를 공개 지지했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는 트위터를 통해 이란 반정부 시위대를 공개 지지했다. [EPA=연합뉴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벌어진 이란 반정부 시위에선 이란 당국이 강경 진압에 나서며 시민 304명이 숨졌습니다. 여론 확산을 막기 위해 이란 정부는 일주일 동안 인터넷을 차단하기도 했죠.

이번 시위도 인명 피해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가디언에 따르면 12일 벌어진 한 시위 영상에는 거리의 핏자국과 함께 “7명이 총에 맞는 걸 봤다. 사방에 피다”는 남성의 목소리가 담겼습니다. 

또 이란 군부가 시위대를 해산시키려고 실탄을 발사했고, 이로 인해 많은 시민들이 부상을 당했다는 여러 증언이 나왔습니다.

시위 목격자인 한 여성(35)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시위대는 시위 진압군이 쏘는 최루탄을 맞고 기침을 하고 울부짖으며 피해 뛰어가면서도 시위 구호를 외쳤다”면서 “진압군은 또 시위대를 향해 총을 쉬지 않고 발사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란은 어떻게 나올까   

 
국제사회에서 이란이 수세에 몰린 가운데 12일 프랑스·영국·독일 정부는 이란을 향해 “핵합의 복귀”를 촉구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이란은 솔레이마니 사망에 대한 보복으로 지난 5일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 불이행을 선언했죠. 핵합의에서 정한 우라늄 농축 농도 제한을 더 이상 지키지 않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핵을 손에 쥐겠다는 엄포였습니다. 
 
지난해 4월 이란 핵기술의 날을 맞아 하산 로하니(오른쪽) 이란 대통령이 핵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이란은 더 이상 2015년 맺은 핵합의의 어떤 제한도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EPA=연합뉴스 ]

지난해 4월 이란 핵기술의 날을 맞아 하산 로하니(오른쪽) 이란 대통령이 핵 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이란은 더 이상 2015년 맺은 핵합의의 어떤 제한도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EPA=연합뉴스 ]

 
하지만 여객기 격추 사건으로 입지가 좁아진 이란이 이처럼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긴 어렵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이희수 특훈교수는 “국제 여론이 이처럼 이란에 불리한 상황에서 핵합의 가이드라인을 깨는 것은 자멸로 가는 길이란 점을 이란도 알고 있을 것”이라면서 “러시아·중국을 교두보로 유럽연합(EU)에 유화 정책을 펴면서 미국의 압박을 피해나가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AFP=연합뉴스]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AFP=연합뉴스]

 
또 다음달 치러질 이란의 총선이 이란 정세에 주요 변곡점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으로 대표되는 개혁파(온건 성향의 대서방 협상파)가 하메네이를 필두로 한 반미 보수파를 이길 경우 하메네이는 국민적 개혁 요구에 직면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란 내 불안한 정세가 이어지면서 “이란의 정권 붕괴가 임박했다”는 전망까지 나왔습니다. 제임스 존스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13일 미 CNBC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이란 정권은 1979년 이슬람 공화국 수립 이후 가장 취약한 상황”이라면서 “솔레이마니 사망과 여객기 추락, 국민들의 불안이 결합하면서 붕괴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이란 정권이 가장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미국이 아닌, ‘성난 민심’인 셈입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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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영 임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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