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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한국과 조선: 남북관계에서 한·조관계로

중앙일보 2020.01.15 00:48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참혹한 동족상잔이요 가공할 세계전쟁이었던, 냉전시대 최대의 세계내전·세계시민전쟁인 한국전쟁 70주년을 맞는다. 70주년 이 땅의 모습은 참으로 자랑스러운 동시에 속상하며 굴욕적이다. 자유와 민주와 번영의 눈부신 성취가 한편에 있는 반면, 두 세대의 적대를 넘어 이제 최소한 안보위협은 끝나 있고 상호 공존과 존중의 모습을 보일 만도 한데 현실은 정반대다.
 

한국전 70년, 남북관계 완전 단절
남북 아닌 한국·조선 관계가 정답
민족·통일 대신 독립과 공존일 때
세계·비핵·평화의 보편의 길 가능

70년전 침략을 감행한 쪽은 핵무장을 완성한 채 핵포기는 없다고 단언한다. 게다가 그들은 다른 쪽을 투명국가 취급한다. 핵심회의의 최고 지도자 총결보고, 또는 신년연설에서 ‘북한’이 ‘남한’·통일·남북관계 자체를 언급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이제 중재자·촉진자는커녕 조수와 승객으로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치욕과 모멸도 없다.  
 
우리는 늘 인내하지만 우리 정부와 대통령에게 퍼붓는 모욕적 언사와 조치는 다른 나라로부터는 들어본 적이 없는 망발들이다. 개성 연락사무소 무단철수와 금강산 내 우리 재산에 대한 철거 강요, 그리고 지원과 대화 제안에 대한 계속된 거절과 무반응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떻게 해야 하나?
 
합리적 길은 한국과 조선이 민족과 통일을 내려놓고 서로 주권국가로서 독립을 인정하여, 국제규범을 지키며 상호 위협하지 않고, 각각 독자적 나라로 살아가는 것이다. 즉 민족통일이 아니라 독립공존과 보편평화가 길이다. 한국은 지금까지처럼 자유·인권·민주주의·평등·복지의 길로 (더) 나아가면 된다. 조선의 세습·수령체제·일인지배·강제수용소·일당독재는 그들의 선택이다.
 
우선 두 나라는 영토·주권·국민의 근대국가 필수요소에서 결여되어있지 않다. 게다가 둘은 유엔회원국이며 많은 나라들과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특히 한·조 두 국가와 국민들의 실존은 언어·역사·민족·문화의 역사성과 동질성이 아니라 주권·국가·헌법·체제·이념의 독자성과 상이성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통일지향의 남북관계가 아닌 평화추구의 한·조관계가 정답이다. 지금 통일을 추구해선 안된다. 한국의 입장에서 핵을 가진 조선과의 통일은 불가능하며, 조선이 한국과의 통일을 위해 핵을 포기할리도 만무하다. 국제사회가 비핵평화 없는 한국과 조선의 통일을 수용할 리도 없다. 비핵평화는 세계와 확고히 함께 가고, 통일은 미래 세대에게 맡겨야한다. 다행히 젊은 세대는 압도적으로 통일보다는 평화다.
 
관념과 언어를 넘어 실제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북한과 남조선을 의제하여 남북관계로 접근하기 보다는 대한민국[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으로 각자 존재하고 서로 대면하는 게 바른 길이다. 식민시대부터 공산세력들은 대한제국, 3·1운동, 대한민국의 연면성과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대한·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일제가 한국·한국인·대한민국을 부인하려고 끝내 조선·조선인·조선반도·조선민족·조선총독부를 고집하였듯, 공산주의자들도 똑같이 조선공산당·조선혁명·조선인민·조선민족·조선로동당·조선인민군·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고수하였다. 이제 조선민족을 넘어 그들은 아예 스스로를 자주 김일성·김정일 민족으로 부른다. 놀랍게도 헌법도 마찬가지다. 개별인물을 헌법에 넣어 국가체제를 세계와 전체 민족으로부터 완전 예외화·특수화한다. 조선의 어디에도 한(韓)민족에 대한 인정과 언술은 없다.
 
게다가 전후의 주요 분단사례들, 즉 독일·중국·파키스탄·베트남·예멘의 경우 분단 절반 서로의 모국어 국명은 모두 동일하였다. 충격적이지만 한국과 조선의 국명은 모국어로도 유일하게 다르다. 물론 상호 규정인 북한과 남조선은 실재하지 않는다. 이제 ‘남북관계’언술은 우리의 인식과 정책에서 종식할 때가 되었다. 현실은 이미 한·조관계다. 쌍방 주요 합의의 표기도 한국과 조선이다.
 
언어와 관념 속의 남북관계를 끝내고 현실과 실제인 한·조관계를 확고히 설정하자. 최근 경향은 더욱더 그러하다. 첫째 조선의 핵무장과 핵무기의 상수화, 둘째 국제정세의 급변, 특히 중국의 부상과 미중 국력근접 및 조중관계 회복, 셋째 조선의 한국배제와 ‘남북’관계단절, 넷째 민주주의와 전체주의, 민주선거와 세습, 자유와 독재를 포함한 한·조 두 국가체제의 상이성과 적대성의 확대와 악화.
 
종합적 객관적으로 고려할 때 남북관계가 아닌 한·조관계가 정답이다. 일부 민족주의자들은 왜 통일을 포기하느냐고, 또 일부 보수주의자들은 조선을 어떻게 국가로 인정하느냐고 비판하겠지만 두 주장이 허구요 오류라는 증거는 70년의 역사궤적, 조선의 민족인식, 그리고 한·조관계의 현실로 충분하다. 한·조관계로 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분단과 통일, 친민족과 반북한의 허구적 흑백대결을 넘을 수 없음은 물론 조선의 생짜 억지와 정책에 계속 인종(忍從)하거나, 민족과 특수의 늪에 빠져 보편과 평화의 목표를 상실할 수도 있다. 끝내 세계를 놓칠지도 모른다.  
 
한국전쟁 70주년이다. 70년이면 충분하다. 영구평화를 향해 남북관계 대신 한·조관계를 꽉 정초하자.
 
박명림 연세대교수·김대중도서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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