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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특별한 사정 없이 차별 안돼"

중앙일보 2020.01.14 12:04
대법원 [연합뉴스]

대법원 [연합뉴스]

무기계약직 근로자와 정규직 근로자 사이 따로 정한 규정이 없다면 동일한 처우를 적용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기간제 근로자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들이 정규직과 똑같은 처우를 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대법원이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준 첫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회사측 손을 들어줬던 2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14일 밝혔다.  
 

무기계약직 전환에도…정규직과 차별

대전MBC에서 기간제 근로자로 일하던 A씨 등은 기간제법에 따라 2010년부터 2011년 사이 무기계약직 근로자로 전환됐다. 무기계약직이 됐지만 고용 계약서 형식은 기간제 근로자였을 때와 똑같이 썼다. 정규직 근로자보다 기본급과 상여금은 80% 수준만 받았다. 수당 차이도 컸다. 근속수당이 없었다. 또 자가운전보조금도 정규직 직원이 매달 30만원을 받을 때 무기계약직 직원은 매달 20만원만 받았다. 2012년 5월 이후로는 정기적인 호봉 승급도 이뤄지지 않았다.
 
A씨 등은 "정규직과 같은 부서에서 같은 직책을 담당하며 일하는데 왜 처우에 차별을 두냐"며 소송을 냈다.  

 

엇갈린 1ㆍ2심…2심 “채용ㆍ승진 달라 차별 아냐”

소송의 쟁점은 무기계약직 직원에게 정규직 직원의 취업규칙 등 여러 규정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지로 모아졌다.
 
보통 기간제 근로자로 근무하다 기간제법에 따라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로 전환된 근로자들을 ‘무기계약직’ 근로자로 부른다. 계약직과 정규직의 중간 형태로 정년까지 근무는 보장하지만 임금이나 복지 수준에 있어서 정규직과 차등을 둔다는 의미다. 대부분 무기계약직 근로자에 대해서는 취업 규칙상 정규직과 별도의 규율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다.
 
1심은 "대전MBC 직제규정에 따르면 무기계약직 근로자에 대한 취업규칙이 따로 없다"며 "무기계약직 근로자도 정규직 근로자의 취업규칙 등 여러 규정이 모두 적용된다고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1심은 호봉 적용과 함께, 지금까지 매월 덜 받아온 월급과 수당을 무기계약직 근로자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반면 2심은 정반대의 판결을 했다. 2심이 주목한 것은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이 작성한 ‘고용계약서’였다.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은 전환 후에도 기간제 근로자일 때와 같은 형식의 계약서를 써왔다. 그 내용에는 임금·수당·복리후생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2심 법원은 "회사측은 이들을 위한 별도의 취업규칙은 두지 않았지만 고용계약서를 정규직과는 다르게 작성해 일률적으로 적용해왔으므로 고용계약서 내용이 취업규칙에 준한다고 볼 수 있다"고 판결했다. 1심에서 인정됐던 호봉 승급이나 임금 차액 지급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덧붙여 2심은 "무기계약직 직원이 정규직 직원과 동일 부서에서 동일 직책을 담당하며 근로를 제공하는 것을 맞지만 채용과 직급 승진 절차가 서로 달라 같은 집단으로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정규직은 서류전형과 필기시험, 실무 역량평가 등의 공개경쟁시험을 거쳐 채용됐고 직급별 승진이 있지만 무기계약직은 추천을 통해 실기테스트 및 면접을 거쳐 채용됐고 별도의 직급 승진은 없었기 때문에 두 집단에 대한 차별이 불합리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취지와 공평의 관념 고려

하지만 대법원은 이런 2심 판단이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기간제법 제8조 1항은 "사용자는 기간제 근로자임을 이유로 사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자보다 차별적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정한다. 대법원은 이 조항을 기간제 근로자에 대한 차별 처우 금지로만 해석하는 것은 규정 취지나 공평의 관념에 반한다고 해석했다. 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같은 업무에 종사하는 무기계약직 근로자의 근로조건이 정규직 근로자보다 불리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다.
 
또 2심에서 고용계약서를 취업규칙에 준한다고 해석한 부분도 잘못됐다고 판결했다.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에서 정한 조건이 취업규칙에서 정한 기준에 못 미치면 취업규칙 기준을 따르도록 한다. 대법원은 이를 근거로 "대전MBC는 2007년 기간제법 시행 이후 무기계약직 직원의 취업규칙을 별도로 만든 적이 없으므로 이들에게 정규직과 동일한 취업규칙이 적용된다고 봐야 하고, 이에 미달하는 처우를 정한 고용계약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달리 정함이 없다면 무기계약직 근로자에게 정규직 근로자의 취업규칙이 같이 적용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모든 ‘무기계약직’에 적용되나

 이번 대법원 판단이 모든 무기계약직 근로자에게 바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도 판결에서 ‘달리 정함이 없다면’이라는 단서조항을 붙여뒀기 때문이다. 회사별로 다르게 적용될 수 있다는 의미다. 만약 기간제 근로자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며 무기계약직 직원에 대한 별도의 규정을 뒀다면 그 취업규칙이 적용된다.
 
다만 이번 판결과 별도로 추후 또 다른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은 있다. 대법원 관계자는 "같은 일을 하는 무기계약직 전환 근로자와 정규직 근로자 사이 별도의 취업규칙을 뒀더라도 두 취업규칙 사이 현저한 차별이 있다면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며 "그 부분에 대한 판단은 아직 대법원에서 다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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