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날개 200개 단 남자, 여행작가 이종원의 별난 여행

중앙일보 2020.01.14 01:01
 
“세상에서 제일 많은 날개를 가진 남자. 멋지지 않나요? 하하하.”

여행작가 이종원(54). 국내 여행 가이드북 분야의 스테디셀러 『우리나라 어디까지 가봤니? 56』(2010, 상상출판)의 저자이자 ㈔한국여행작가협회 회장을 역임한 베테랑 여행작가다. 여행작가라는 낱말 자체가 낯설던 2001년 전업 여행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본래 점잖은 편이지만, 페이스북에선 짓궂단 평을 듣는다. ‘날개 천사’라는 별명 때문이다. 서너 해 전부터 날개 벽화 인증사진을 쫓아다니다 보니 남세스러운 별명을 얻었다. 장난삼아 시작했던 놀이가 지난 9일 의미 있는 전환점을 맞았다. 인증사진 200개를 완성한 것이다. 서울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에서 200번째 날개를 다는 이 작가를 만났다.
여행작가 이종원의 200개째 날개. 지난 9일 서울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에서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여행작가 이종원의 200개째 날개. 지난 9일 서울 지하철 7호선 어린이대공원역에서 촬영했다. 손민호 기자

축하한다. 200개째 날개는 어떻게 달 게 됐나.
지인이 제보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제보가 날아온다. 내가 날개 사진을 찍고 다닌다는 게 꽤 알려졌나 보다. 제보로 찍게 된 사진이 전체 날개 사진의 30%쯤 된다.
이종원 여행작가의 제1호 날개 인증사진. 2016년 강원도 양구에서 촬영했다. [사진 이종원]

이종원 여행작가의 제1호 날개 인증사진. 2016년 강원도 양구에서 촬영했다. [사진 이종원]

언제 그리고 왜 날개 사진을 찍게 됐나.
첫 날개는 2016년 10월 25일 달았다. 강원도 양구 펀치볼 전망대에서였다. 처음엔 그냥 기념사진 삼아 찍었다.
 
기록으로 남기자고 작정한 건?
50개쯤 찍었을 때였던 것 같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날개가 많을 줄 몰랐다. 찍다 보니 50개나 됐다. 그때 100개는 넘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00개가 넘으니 자연스레 200개를 생각하게 됐고.
 
아무래도 벽화 마을에서 많이 찍었겠다.
물론이다. 전국의 벽화 마을은 다 가본 것 같다. 날개 벽화는 대체로 마을 어귀나 중심이 되는 자리에 그려져 있다. 벽화 마을의 대표 명소라는 뜻이겠다. 요즘엔 지역의 관광지나 축제 현장, 새로 문을 여는 식당도 날개 그림을 그려놓는다.
이종원 여행작가의 날개 촬영 장비. 리모컨 촬영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과 삼각대 셀카봉. 손민호 기자

이종원 여행작가의 날개 촬영 장비. 리모컨 촬영 기능이 있는 스마트폰과 삼각대 셀카봉. 손민호 기자

혼자 여행하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사진을 찍나.
처음엔 그때그때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제대로 찍어보자고 마음먹은 다음엔 삼각대를 이용했다. 휴대전화를 삼각대에 설치하고 리모컨을 누른다. 날개 사진도 요령이 필요하다. 날개 중앙에 정확히 서야 한다. 삼각대하고도 직각을 이뤄야 한다. 각도 잡는 게 의외로 쉽지 않다.
 
200개째 날개를 다는 데 3년 2개월이 조금 넘게 걸렸다. 닷새에 하나씩 날개를 단 셈인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날개를 모을 수 있었나.
주로 출장 다니는 길에 날개를 수집한다. 작년만 해도 지역을 80회 이상 다녔다. 강연이 제일 많았고, 무슨 심사와 각종 자문회의도 참석했다. 전업 작가이므로 열심히 다녀야 한다.  
이종원 여행작가가 전북 군산에서 촬영한 돌 날개. [사진 이종원]

이종원 여행작가가 전북 군산에서 촬영한 돌 날개. [사진 이종원]

전남 진도에서 촬영한 진짜 깃털 날개 [사진 이종원]

전남 진도에서 촬영한 진짜 깃털 날개 [사진 이종원]

강원도 인제에서 촬영한 초대형 날개 그림. [사진 이종원]

강원도 인제에서 촬영한 초대형 날개 그림. [사진 이종원]

기억에 남는 날개라면.
전북 군산 신시도 새만금휴게소에는 4t 무게의 돌 날개가 있다. 진짜 돌로 만들었다. 전남 진도 신비의 바닷길 축제 현장에는 털로 만든 날개가 있고, 강원도 인제에는 양 날개 길이가 20m 가까이 되는 것도 있다. 서울 명동역에서 촬영할 때는 재미난 일을 겪었다. 날개 사진을 찍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여서 다른 사람이 찍어줘야 했는데, 주변에 외국인만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서울 한복판에서 외국인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영어로 부탁했다. 중국인 관광객이었다.  
 
날개 그림이 왜 이렇게 많을까.
우리나라만큼 날개 그림이 많은 나라도 없을 것이다. 날개 200개 중에서 딱 두 개만 외국에서 찍었다. 베트남과 프랑스. 우리 국민이 유난히 날개를 좋아한다는 뜻일 텐데, 날개 앞에서 사진 찍는 사람을 보면 다들 웃고 있다. 물론 나도 웃는다. 우리 국민은 날개에서 행복을 찾는 게 아닐까? 
이종원 여행작가의 100번째 날개 사진. 2017년 10월 7일 경기도 평택 한국의소리 계단에서 촬영했다. [사진 이종원]

이종원 여행작가의 100번째 날개 사진. 2017년 10월 7일 경기도 평택 한국의소리 계단에서 촬영했다. [사진 이종원]

날개 그림이 많은 게 좋은 걸까.
관광 콘텐트로서 분명 역할이 있다. 벽화로 유명한 서울 이화마을로 젊은 인도 여성들을 태우고 왔다는 택시 기사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이 먼저 영어로 “이화마을 윙(Wing)”이라고 했단다. 도시재생 사업의 주요 콘텐트가 벽화 마을 아닌가.
 
마냥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솔직히 너무 많다. 한국 관광 콘텐트의 고질이 베끼기다. 다른 지역이 잘된다고 하면 바로 따라 한다. 벽화 중에는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많다. 벽화에도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 출렁다리, 케이블카, 레일바이크, 느린 우체통 모두 대표적인 베끼기 콘텐트다. 내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안타깝다.
 
또 날개를 달 건가
처음엔 그만두려고 했는데, 은근히 욕심이 생긴다. 세상에 날개 모으는 사람이 나밖에 없지 않나? 그럼 세계 기록 아닌가? 세상에서 날개가 제일 많은 남자라. 이런 여행도 멋지다고 생각한다.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