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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

중앙일보 2020.01.14 00:48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자유한국당이 젊은 여성 유튜버를 영입했다 사흘 만에 쫓아냈다. 1호 영입도 상징성을 활용하기는커녕 논란만 일으켰다. 그것도 오랫동안…. 선거를 앞두고 승패에만 집착한 탓이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제대로 된 전문가라면 어떤 상황이건 그런 어이없는 실수는 하지 않을 테니까.
 

임기 후반 문 정부 실적 바닥 쳐도
야당 지지율 낮은 건 전략 부재 탓
버릴 건 버려야 모두가 살 수 있어
연동형에선 자기 목소리 내도 돼

정당은 집권하는 게 목표다. 그렇지만 같은 생각을 가졌다는 전제가 있다. 권력을 도둑질해 호의호식하자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같은 이념과 정책을 갖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정당이다. 그렇지 않다면 범죄집단과 다를 게 뭔가.  
 
우리 국민은 정치인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다. 가장 큰 이유는 ‘닥치고 집권’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고, 인권이고, 말은 번드르르하지만, 정권을 차지하기 위한 사탕발림이라고 생각한다. 평등과 공정과 정의도 내 편일 때와 남의 편일 때가 다르다. 내가 야당일 때는 검찰이 청와대도 수사할 수 있어야 하고, 내가 집권했는데 수사하면 개혁 대상이다. 남의 아이가 대학 진학에 입상 경력을 내세우면 금수저고, 내 아이가 입학하는데 상장을 위조하는 건 누구나 다 하는 당연한 일이다.
 
‘무조건 집권’, ‘오로지 집권’을 외치다 보니 정당 내에서는 다른 목소리도 금지된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끌어모아 놓은 집단이니 의견이 같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입을 틀어막으니 대표 입만 쳐다본다. 제왕적 대통령에 제왕적 대표다. 그러고도 민주주의가 될까.
 
연동형의 장점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각자 자기 목소리를 내고, 국민의 지지를 받은 만큼 의석을 차지한다. 필요하면 의회 내에서 다른 정당과 손을 잡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할 수도 있고, 전두환 전 대통령 정책을 모방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보수 정당이란 이유만으로 그 모든 역사의 책임을 다 떠안아야 할 이유는 없다.
 
문재인 정부가 임기 후반으로 달려가고 있다. 최대 치적으로 삼으려던 남북 관계는 조롱과 냉소만 남았다. 전통 우방은 한국을 패싱하고, 중국은 경제제재를 풀지 않는다. 기업인들은 외국으로 달아나고 싶어 하고, 일자리는 말라간다. 부동산을 잡겠다면서 오히려 청년들의 꿈만 때려잡았다. 권력 주변 수사를 힘으로 틀어막고, 사법권 독립이 불안하다. 이런 사정이라면 야당은 가만히 있어도 펄펄 날아야 정상이다. 그런데 여론조사 결과는 영 딴판이다. 정당 지지도에서 자유한국당이 더불어민주당의 딱 절반이다. 지지자들에게 듣기 좋은 강경 목소리만 높이고, 삭발하고, 농성했지만 해놓은 건 아무것도 없다. 고민이 없고, 전략이 없고, 정치가 없기 때문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 소추된 지 1132일이 지났다. 구속된 지 1020일째다. 그런데 아직 그 문제를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자기들이 추대해 만든 대통령이 구속되는 지경에 이르고, 눈뜨고 정권을 빼앗겼는데도 반성도, 변화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1000일이 넘은 이 시점에 그 문제를 새삼스럽게 다시 꺼낸 것도 스스로 문제의식이 있어서가 아니다. 선거라는 불똥이 발등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석 달 남았다. 그런데도 우물쭈물이다. 정말 결단을 내리려는 건지, 선거 때 비난이나 모면해보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아파도 결단해야 한다. 그래야 다 함께 산다. 모두 다 안고 갈 수는 없다. 연동형은 각자 자기 목소리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선거 이후 손을 잡으면 된다. 필요하면 선거에서 연대하면 된다. 하나로 묶으면 함께 죽을 수 있다. 경쟁 정당과 싸우기 전에 자중지란으로 망할 게 뻔하다. 어느 쪽이든 한쪽은 버려야 한다. 선거 연대나 선거 이후를 기약하는 게 현명하다.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표도 한 인터뷰에서 “한국당 하나로는 4+1 체제에 이길 수 없다”며 “한국당이 못하는 역할을 공화당이 하겠다”고 말했다.
 
보수 정당이 갈라져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곳은 수도권이다.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들을 보면 서울·인천·경기 지역에서 한국당이 민주당에 압도적으로 밀린다. 이 지역에서 지지층을 넓히는데 어떤 결정이 유리할지 따져봐야 한다. 민주당이 정의당과 손잡는다고 부러워할 이유가 없다. 두 당은 분명히 다른 지점에 서 있다. 정의당은 부러워하면서 한국당은 왜 그런 정당을 모두 흡수해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 계산도 정치공학적이다. 정당에서 더 중요한 건 무엇을 하겠다는 미래의 비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위한 정당도 필요하지만, 보수정당이 모두 과거의 옷을 입어야 할지는 의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이후 이제까지 주류 기득권 박멸에 매달려왔다. 말은 ‘적폐청산’이지만 경쟁 세력을 무력화해왔다. 정부와 언론과 검찰, 심지어 법원에서도 잘나가던 인재는 씨를 말리려 한다. 정치적 경쟁자를 배제하는 것은 전체주의다. 야당까지 이런 정치를 따라 하면 안 된다. 이것을 궁극적으로 이기는 길은 민주주의를 되찾는 것이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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