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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칼럼니스트의 눈] 포퓰리즘 대한민국, 4월 총선이 마지막 탈출 기회다

중앙일보 2020.01.14 00:42 종합 22면 지면보기

포퓰리즘을 쏘다

칼럼니스트의 눈 1/14 메인

칼럼니스트의 눈 1/14 메인

‘포퓰리스트는 바바리맨과 같다. 겉은 대의민주주의라는 코트를 걸쳤지만 속은 외설스러운 성기뿐이다. 코트를 벗기 전까지는 그가 바바리맨인지 모른다. 그가 코트를 벗고 나면 이미 늦었다.’
 

포퓰리스트는 바바리맨
민주주의라는 코트를 걸쳤지만
속에는 벌거벗은 외설뿐
그가 코트를 벗고 나면 이미 늦었다

대한민국에 포퓰리즘 정부가 들어선 것은 어쩌면 ‘운명’일 것이다. 딱 3년 전 영국의 경제분석 기관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한국에 포퓰리즘 정부가 들어설 확률은 20%로, 주요 20대 경제 대국 중 4위”라고 내다봤다. 미국(66%)이 가장 높았고, 멕시코(30%) 브라질(25%)이 뒤를 이었다. 이 기관은 ①재정확대 ②반이민 ③반체제 ④보호무역 ⑤강한 리더 ⑥극우·극좌적 이념 등 6가지를 기준으로 평가했다. 포퓰리즘 정부가 들어서면 무역이 줄고 경제 성장이 주춤할 것으로 봤다.
 
3년이 흘러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예언은 불행하게도 적중했다. 한국엔 포퓰리즘 정부가 들어섰다. 수출은 줄고 성장은 무뎌졌다. 과거 벌어놓은 게 있으니 지금까진 어찌 버텼다 치자. 문제는 앞으로다. 희망이 안 보인다. 포퓰리즘은 마약과 같다. 정치적으로는 편 가르기, 경제적으론 묻지 마 현금 복지를 수단으로 쓴다. 한 번 맛 들이면 벗어날 수 없다. 나라가 거덜 나도 금단의 유혹을 끊지 못한다. 남미와 동유럽, 그리스가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이미 대한민국은 뼛속 깊이 중독됐다. 이 정부가 뿌려댄 현금과 네 탓 정치는 ‘배 아픔’의 이데올로기를 자양분 삼아 증오의 잎을 무성하게 피웠다. 지난해 우리는 조국 사태와 선거법·공수처법 처리 과정에서 진영 포퓰리즘의 증오와 분노를 질리도록 목격했다.  
 
올해는 총선의 해다. 선거 때면 더 기승을 부리는 포퓰리즘은 2022년 대선까지 질주할 것이다. 이번에 막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영원히 포퓰리즘의 노예로 살 것이다. 나라는 내 국민과 네 국민, 경제는 내 돈과 네 돈으로 갈릴 것이다. 네 국민을 욕보이고 네 돈을 뺏어 내 돈과 내 국민 배만 불릴 것이다. 그래서 국민 모두 스스로 묻게 될 것이다. 나는 내 국민인가 네 국민인가, 내 돈은 내 돈인가 네 돈인가. 정부가 말하는 국민 안에 내가 들어가나 아닌가.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이런 흐름을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여권의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크다. 여권 차기 대권 후보인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지사 역시 내로라하는 포퓰리스트다. 설령 극히 희박한 확률로 야당이 정권 교체에 성공한들 이미 중독된 국민을 설득할 강력한 리더십은 보이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은 정서적으로 특히 포퓰리즘에 사로잡히기 쉬운 나라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국민성이 포퓰리즘과 딱 맞다. 그렇다고 손 놓고 포기할 수는 없다. 어떻게 할 것인가.  
 
포퓰리즘을 피할 수 없다면 좋은 쪽으로 유도해야 한다. 예컨대 1%대 99%의 불균형을 해소하는데 약탈 대신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그것이다. 99%가 1%를 약탈하는 방식은 애초 지속 불가능하다. 100원 가진 1% 것을 뺏은 뒤엔 99원 가진 1%, 다음에 98원 1% 식으로 약탈을 계속해, 결국 국민 100%가 절대 빈곤선에 들어선 뒤에야 멈추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은 어느 쪽인가. 막상 진단이 쉽지는 않다. 포퓰리즘은 정의부터 평가까지 여전히 이론이 많다. 안 베르너 뮐러 프린스턴대학 교수는 "포퓰리즘을 정의하는 것이 가능할까, 의문이 든다”고 했다. 그는 포퓰리즘이 "좌나 우를 가리지 않으며 민주주의에 따라붙는 영원한 그림자”라며 시대·국가·분야별로 다양한 얼굴로 나타난다고 봤다. 그는 대신 포퓰리스트의 특징을 찾아내 판별 기준으로 썼다. 정치적으로는 ①편 가르기 ②내가 국민이다 ③직접민주주의 강조 ④사법의 차별화, 권력 독점을 꼽았다. (※경제적으론 대개 ①재정 적자 ②재분배 올인 ③임금 과속 인상이 특징이다. 바바라 스톨링스·로버트 카우프만 ‘라틴아메리카의 포퓰리즘 경제’)
 
뮐러 교수의 분류법에 따라 2018년 나는 ‘문재인 정부는 포퓰리즘 정부인가’(중앙일보 2018년 10월 4일 자 26면)를 따져봤다. 당시만 해도 ‘확신은 하지만 단정할 수는 없다’ 였다. 지금은 단정할 수 있다. 조국 사태로 민낯이 드러났다. 심지어 이 정부는 포퓰리즘을 아예 적극적으로, 의도적으로 활용한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포퓰리즘 정부를 막으려면 시민이 눈을 떠야 한다. 그러려면 실체부터 알아야 한다. 연중 기획  
 
‘포풀리즘을 쏘다’를 시작하는 이유다. 우선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부터 감별해보자. 다시 뮐러 교수의 기준을 따랐다.  
 
◆ 첫째, 편 가르기=끊임없이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것이야말로 포퓰리스트의 통치 기법 제1조다. 친구만 국민이다. 친구는 죄를 지어도 무사통과, 적은 없는 죄도 만들어 엄벌하는 ‘차별적 법치주의’를 내세운다. 청와대 천경득 행정관은 2년 전 유재수 감찰에 나선 이인걸 당시 특감반장에게 “피아 구분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고 한다.  
 
조국 사태는 편 가르기의 진수였다. 서초동 시위대만 ‘내 국민’이었다. 검찰 개혁과 조국 전 장관 수호는 정의고, 조국 임명 반대와 광화문 집회는 무시됐다. 편 가르기는 나라 밖까지 확장됐다. 한·일 경제 갈등을 기회로 일본을 정조준했다. "전남의 주민은 이순신 장군과 함께 열두 척 배로 나라를 지켜냈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라며 국수주의적 포퓰리즘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광주민주화운동 39주기 기념식에선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며 야당을 적으로 몰았다.  
 
◆ 둘째, 남 탓, 반(反) 엘리트주의=정책 실패 땐 남 탓을 한다.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의 단골 메뉴다. 그는 경제난이 불거지자 옛 집권세력 탓, 미국 탓을 했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을 쓴다. 웬만하면 전 정권 탓이다. 강남 아파트값 급등은 "전 정부가 빚내서 집 사라”고 했기 때문이요, 소득주도성장이 효과가 없는 건 보수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 탓이다. 심지어 여당은 지난해 말 2019년 경제성장률이 2%를 밑돌 경우  "야당 탓”이라고 미리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민생 법안을 놓고 야당 탓만 하던 여당은 선거법·공수처법은 야당을 힘으로 누르고 통과시켰다.  
 
◆ 셋째, ‘내가 국민이다’ 직접민주주의 강조=언론이나 정당은 소통 대상이 아니다. 국민 감성에 호소하고 직접 다가가는 극적 연출을 선호한다. 차베스는 방송 프로그램 ‘대통령 안녕’을 매주 직접 진행하면서 서민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식으로 국민 감성을 파고들었다. 그때마다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는 국민이 쓰레기통을 뒤지고 일 년에 10㎏씩 강제로 다이어트하는 나라가 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촛불 민심에 의해 탄생한 정부”를 강조한다. 조국 사태 때는 서초동 시위대에 대해 "국론 분열이 아니라 대의민주주의를 보완하는 직접민주주의”라며 "필요하다”고 했다. 그가 직접민주주의를 보완한다고 만든 청와대 국민청원은 선동의 장이 된 지 오래며 국민과의 대화에선 국민 감성을 자극해 ‘민식이법’ 같은 과잉입법을 밀어붙였다.  
 
◆ 넷째, 사법의 차별화, 권력 독점=정의와 도덕을 독점하고 기득권 부패 세력 처단을 강조한다. 그래놓고 권력을 쥐면 똑같이 부도덕한 일을 한다. 차이는 단 하나. 뻔뻔스럽고 당당하게,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해가며 한다는 점이다. 법이 걸리면 법을 바꾸고, 사람이 걸리면 사람을 바꾼다. ‘내가 곧 국민’이니 겁날 게 없다. 그러니 부정부패를 들춰내 포퓰리스트를 공격해봐야 끄떡도 않는다. 조국 사태가 단적인 예다. 국민적 반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장관 임명을 강행했다. 조국은 식구요 내 편, 반대하는 국민은 남이다. 하기야 대법관 14명 중 9명을 교체하고 헌법재판소 재판관 9명 중 8명을 임명해 사법 권력을 장악했으니 뭐가 무서울까. 급기야 흑을 백으로, 백을 흑으로 둔갑시켜 공수처를 만들고  
 
‘윤석열의 검찰’을 대거 좌천시켰다. 선거법마저 힘으로 바꾼 여당 대표는 "총선 승리로 사회적 패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외친다.    
 
어떤 감별법으로 따져도 문재인 대통령은 포퓰리스트요, 문재인 정부는 포퓰리즘 정부, 그 자체다. (다음 회는 경제적 감별법으로 따져볼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포퓰리스트는 바바리맨과 같다. 그가 코트를 벗고 나면 이미 늦었다. 그가 다른 사람 앞에서, 특히 내 아이 앞에서는 결코 코트를 벗지 못 하게 해야 한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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