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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권력 수사 자제가 서울중앙지검장의 사명인가

중앙일보 2020.01.14 00:34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어제 취임사에서 밝힌 첫 번째 당부 사항은 “국민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절제된 검찰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수사의 단계별 과정마다 한 번 더 생각하고, 절제와 자제를 거듭하는 검찰권 행사가 필요하다”는 부연 설명도 했다. 두 번째 당부는 서울중앙지검의 수사 역량을 ‘사회적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 이외의 민생과 직결된 사건에도 투입하라는 것이었다. ‘파사현정’이나 ‘거악척결’ 등 대쪽 같은 수사를 요구하는 원론적 주문은 한마디도 없었다.
 

“검찰권 자제” 취임사 수사 무력화 의심
살아 있는 권력 수사가 최상급 형사사법

어느 전임자보다 선명한 메시지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현재 진행 중인 권력을 향한 수사를 자제하라”는 지시로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윤석열 검찰에 대한 ‘학살’이라는 평가까지 받는 이번 인사의 실무 책임자(법무부 검찰국장)에서 서울중앙지검장이 됐다. 이번 인사의 최대 수혜자인 그가 ‘검찰 개혁’과 ‘검찰권의 절제와 자제’를 대놓고 강조했다는 점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이 이끄는 수사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서울중앙지검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2차장),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관련 의혹(3차장), 우리들병원 대출 의혹(1차장) 사건의 수사 및 공소 유지를 진행 중이다. 수사를 담당하는 검사들이 삼척동자도 이해할 법한 메시지를 놓쳤을 리 없다. 권력에 대한 수사는 적당히 마무리하고 발 뺄 궁리를 하라며 수사를 무력화하는 듯한 지시를 한국 최대 검찰청의 수장이 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어제 법무부가 권력형 비리 수사를 주로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부와 공공수사부를 축소하는 내용의 조직 개편안을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수사팀을 교체하는 후속 인사까지 단행된다면 수사는 흐지부지될 게 뻔하다.
 
이 중앙지검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학(경희대) 후배이자 노무현 정부 특별감찰반장으로 민정수석이던 문 대통령을 보좌했다. 이번 정부에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등 요직을 거치며 청와대를 향하는 수사에서 신중론을 펴 수사팀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최근엔 좌천된 검찰 간부가 불쾌해할 만한 내용의 문자를 보냈다는 주장이 야당에서 제기돼 논란이 됐다. 승승장구하고 있는 그의 인격과 소신에 대한 검증은 앞으로도, 그가 공직을 떠나더라도 이어질 것이다. 말 한마디 허투루 했다가는 본인은 물론 정부에도 치명상을 줄 수 있는 자리에 오른 것이다.
 
청와대를 겨눈 수사가 진행 중인 서울중앙지검에 입성하자마자 ‘수사 자제’를 외친 이 중앙지검장은 ‘친청(청와대) 검사’라는 첫인상을 남겼다. 그가 목표로 제시한 ‘고품질의 형사사법서비스’를 어떻게 구현할지는 지켜봐야 한다. 다만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정의를 구현하는 일이야말로 이 시대가 검찰에 바라는 최상급의 형사사법이라는 점을 명심했으면 한다. 그걸 헷갈리면 자칫 문재인 정부의 대표 ‘정치 검사’라는 오명을 평생 벗기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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