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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나부터 수사하라” 왜 말 못하나

중앙일보 2020.01.14 00:27 종합 30면 지면보기
조강수 사회에디터

조강수 사회에디터

청와대가 급하긴 급한 모양이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수사를 지휘하는 검사장들을 인사로 대거 숙청했다. 하긴 송철호 울산시장이 누군가. 그의 당선을 위해 지금 청와대의 실세 참모·장관들이 부지런히 뛴 정황들이 드러났고 검찰은 여러 번 압수수색을 나가 청와대 연풍문을 두드리지 않았나.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 윤 총장”이라고 부르며 표시했던 애정의 온도는 떨어진 지 오래다. 겨울 칼바람만이 몰아친다.
 

수사팀 내치면 민주·법치 훼손
윤, 뒤주에 갇힌 사도세자 되나
대통령 ‘오상방위’ 인사 잦기를

신년 들어 “헌법과 법률이 부여한 권한을 다하겠다”(대통령 신년사),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구”(추미애 법무장관 취임사)라며 나란히 검찰 개혁을 언급할 때만 해도 설마 했다. 아무리 포장해도 수사 훼방이라는 표시가 너무 나기 때문이다. 염치와 체면이 있다면 못할 일이다. 하지만 추 장관은 ‘추호의 망설임 없이’ 인사권을 휘둘렀다.  
 
“아이고. 추 장관은 예카테리나 대제 같아요. 러시아 전제군주. 남편을 권좌에서 몰아내고 34년간 철권통치한. 그걸 몰랐어요?”
 
전직 검찰총장의 말을 흘려들은 게 불찰이다. 그러길래 검찰 인사위원회 개최 30분 전에 불러놓고, 오지 않자 “검찰총장이 제 명을 거역했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왔나 보다. 운동권 출신이 유독 많은 문재인 정부의 특징 중 하나는 좀체 뒤돌아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옳다고 믿고 앞만 보고 달린다. 열차에 탄 승객 절반의 걱정은 무시한다. 그 열차가 멈추는 지점에서 책임은 누가 지나.
 
윤석열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과 함께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을 파헤치다가 ‘항명’ 사건에 휘말렸다. 한동안 한직을 떠돌았다. 국정농단 사건 특검팀 합류, 현 정부 초대 서울중앙지검장 발탁으로 강자의 자리에 올랐다. 검찰총장이 되자 윤석열 사단까지 구성했지만 본성은 검사였다. 대통령 측근인 조국의 불법을 묵과하지 않았다.
 
서소문 포럼 1/14

서소문 포럼 1/14

상황은 채동욱 전 총장 때와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 당시에 공직선거법 위반죄 적용 여부가 청와대·법무부와 충돌한 이유였다. 이번 울산시장 선거 사건도 청와대의 선거 개입 여부가 핵심이다. ‘강자의 불법’이 두 사건을 관통하는 키워드다. 검찰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보니 현 정권 실세들이 거미줄에 줄줄이 걸렸다. 송 시장을 후보 때 지원한 팩트들이 드러났다. 그 정점이 대통령인지, 거기까지 수사가 갈 수 있을지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그런데 수사는 중단 위기다. ‘적폐수사’의 선봉장이던 윤 총장은 사도세자처럼 뒤주 속에 갇혀가고 있다. 누가 잘못인가. 조국 가족 비리, 유재수 감찰 무마, 선거 개입 의혹 등은 검찰이 먼저 안 사건들이 아니다. 이런저런 사유로 불거져 있었다. 검사들이 범죄를 지나치게 놔둬선 법치가 이뤄지지 않는다. 같은 범죄를 누구는 봐주고 누구는 엄벌한다면, 기회는 불평등하고 과정은 불공정하며 결과는 부정의하게 되고 만다.
 
원래 문 대통령도, 추 장관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신봉한다면 “나부터 조사하라”고 말해야 맞다. 대신 질질 끌지 말고 신속하게 하라고. 그런데 수사팀을 와해하는 쪽으로 간다. 나중이야 어떻게 되든 지금 피해가면 그만이라는 심산인가. 그리고 계속 집권하면 된다는 과신? 정무직인 검사장급 인사는 대통령 권한이라고 친다 해도 중간간부 인사 때 수사 실무 검사들에게까지 손을 대는 건 차원이 다르다. 인사 지침으로 보장된 임기를 무시하고 규정을 고쳐 인사를 강행하면 사달이 날 수 있다. 그런 일만은 없어야 한다.
 
문 대통령의 윤석열 신뢰는 ‘오상방위(誤想防衛)’였던 것으로 판명 나고 있다. 내 편인 줄 알고 중용했는데 결과적으로 청와대를 겨냥한 모양새가 됐다. 오상방위는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상황으로 오해하고 방위 행위를 한 경우를 말한다. 조국 교수가 형법 총칙에 적시된 것으로 착각했다고 해 화제가 됐었다. 검찰 고위층 인사에선 인사권자의 오상방위가 잦을수록 좋다. 노무현 정부 때 송광수 총장, 이번 정부의 윤석열 총장이 대표 사례다. 이게 가능했던 건 검찰이 거대 조직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수하에서 낙점돼 입 벙긋할 때마다 받아쓰기할 것으로 보이는 ‘청와대 기생적 구조’의 공수처와는 다르다. 청와대·법무부와 검찰이 하루가 멀다하고 수사 상황을 놓고 격하게 치고받는 것도 해괴한 일이다. 처음 경험하는 나라도, 처음 경험하는 수사도 싫다. 이제 그만 막가자.
 
조강수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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