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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K게임 말려죽이기…34개월째 판매 허가 0건 진기록

중앙일보 2020.01.13 16:50
모바일게임 스타트업 버프스튜디오 김도형 대표는 지금도 2017년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진행 중이던 중국 업체와 계약이 갑자기 중단됐다.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한·중 관계가 급속도로 악화했기 때문이다. 이후 신작 '마이 오아시스'를 국내 앱스토어에 출시했지만, 2시간 만에 중국 불법 다운로드 시장에 복제본이 나돌았다. 김 대표는 "직원들 줄 급여가 한 달 치 밖에 남아있지 않을 정도로 힘든 상황에서 당황스러웠다"고 밝혔다. 다행히 '마이 오아시스'가 미국, 일본 등에서 성과를 내면서 위기는 넘겼다. 김 대표는 "최근에는 중국 업체가 국내 시장에 들어오고 있어 중소 개발사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삼중고 시달리는 K-게임사 

중국의 게임 서비스 허가권인 판호 발급이 2017년 3월 이후 34개월째 중단되고 있다. 사드 배치로 인한 '한한령(한류 금지령)'이 내려진 이후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지난해 해외 게임 185개에 대한 판호를 발급했는데, 이 중 한국 게임은 한 개도 없었다. 한국 게임사들의 손발이 묶인 사이 중국 기업들은 중국 안팎에서 펄펄 날고 있다. 현지 시장에선 한국 게임을 불법 복제한 현지 게임들이 인기를 끄는 데다, 한국 시장에서 공격적으로 영업하는 중국 게임사들도 늘고 있다.
 
국내 게임 수출 국가별 비중.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국내 게임 수출 국가별 비중.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최근 발간한 ‘2019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8년 게임시장 규모(매출)는 14조 2902억원, 이 가운데 수출이 7조원(64억 1149만 달러)이상이었다. 하지만 중국 진출이 막히자 성장세가 꺾였다. 한국 게임의 수출 증가율은 2017년 80.7%에서 2018년 8.2%로 급락했다. 중화권 수출액도 2017년 35억 8340만 달러(약 3조 9417억원)에서 2018년 29억 8134만 달러(약 3조 2795억원)로 6600억원 가량 줄었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중국 

중국이 해외 기업의 진입을 규제하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미국 기업들도 중국 시장이 막혀 고전하고 있다. 위정현 중앙대 교수(게임학회장)는 “2002년만 해도 한국 게임의 중국 시장 점유율은 70%에 이를 정도였다"며 "문화적 자존심을 중요하게 여기는 중국은 한한령을 계기로 시작한 한국게임에 대한 규제를 지금도 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유통·관광 등 다른 산업에서 한한령 규제는 점진적으로 풀리는 추세에 있지만 게임에는 변화가 없다. 
 
한국 게임사들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게임개발사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한국 언론의 게임 관련 기사를 모니터링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며 "우리한테 언제 또 새로운 규제를 들이 밀지 몰라 불안하다”고 말했다. 중국 진출 의지가 높은 일부 게임 개발사는 우회로를 찾고 있는 상황이다. 황성익 모바일게임협회장은 “최근 중국 업체가 홍콩에 설립한 법인을 통해 우회적으로 판호를 받은 사례가 몇 건 있었다"고 밝혔다.
 
국내 게임 산업 수출입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국내 게임 산업 수출입 현황.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한국 시장 노리는 중국 게임사 

중국에서 한국 게임사의 성장세가 주춤한 사이 내수시장에서 경쟁력을 키운 중국 업체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한국 게임 시장을 노리는 중국 업체가 늘고 있다. 2018년과 지난해 국내 구글플레이에서 최고 매출을 기록한 게임을 분석해보니, 50위 이내 게임 가운데 한국산(본사 기준)의 점유율은 2018년 64%에서 지난해 59%로 5%p 감소했다. 반면 중국산 게임은 21%에서 28%로 높아졌다. 중국 시청각디지털출판협회의 ‘2019 게임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게임업체는 지난해 한국에서 16억 5737만 달러(약 1조 82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조경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의 대한민국 게임산업에 대한 차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조경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의 대한민국 게임산업에 대한 차별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게임업체들은 "한국 정부가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위정현 교수는 "최근 중국과 미국의 무역분쟁 상황을 적절히 이용해 한국 정부가 좀더 공세적으로 판호 문제 해결에 나섰어야 한다"며 "문제 해결의 골든타임을 놓친 것"이라고 꼬집었다.
 

"시진핑 방한에 기대"

게임업계에서는 올해 상반기로 예정된 시진핑 중국 주석의 방한에 내심 기대를 걸고 있다. 콘텐트 산업 전반에 걸친 '한한령'이 해제될 것이란 소문 때문이다. 중국에만 목맬 것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현일 게임산업협회 홍보팀장은 "중국 시장이 막힌 이후 다른 국가를 공략해 성공한 컴투스 '서머너즈워', 펄어비스 '검은사막' 등의 사례가 있다"며 "북미, 일본, 유럽 등에서 한국 게임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북미 시장 수출액은 2017년  3억 9100달러(약 4300억 원)에서 2018년 10억 1942만 달러(약 1조1220억원)으로 6억 2851만 달러(약 6910억원) 증가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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