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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분기 재정 허덕였다면서···상반기에 나랏돈 또 푼다는 정부

중앙일보 2020.01.13 16:35
“지난해 예산을 상당 부분 조기 집행하면서 4분기에 재정 여력이 부족했다. 그러다 보니 못 쓰는 예산을 최대한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뒀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힘펠 제로에너지 신사옥에서 열린 수출 중소기업 현장소통 간담회에서 시설 설명을 듣고 있다.[연합]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9일 오후 경기도 화성시 힘펠 제로에너지 신사옥에서 열린 수출 중소기업 현장소통 간담회에서 시설 설명을 듣고 있다.[연합]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9일 경기도 화성시 소재 중소기업인 힘펠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 말이다. 쓰기로 했는데 안 쓴 예산을 최대한 줄여 ‘제2의 추가경정예산(추경)’효과를 냈다는 성과도 덧붙였다. 반면 지난해 상반기에 나랏돈을 많이 풀다 보니 연말에 쓸 돈이 부족했다는 얘기도 된다. 
 
올해도 이런 상황이 반복될 수 있다. 정부가 올해도 재정 조기 집행에 나서기로 해서다. 의지는 더 세다. 당·정·청이 모두 나서 예산 집행 속도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정부는 올해 상반기 재정집행률 목표를 62%로 잡았다. 지난해 목표치(61%)보다 높였다. 목표치로는 역대 최고 수준이다. 지난해의 경우 실제로는 목표치보다 더 쓰며 65.4%의 집행률을 기록했다. 올해 예산 배정도 전체의 71.4%를 상반기에 뒀다. 2013년(71.6%) 이후 최대다.
 
나랏돈 빨리 풀어도 성장은 저하, 상반기 예산집행률, GDP 성장률, 조기절벽에 5년 연속 추경.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나랏돈 빨리 풀어도 성장은 저하, 상반기 예산집행률, GDP 성장률, 조기절벽에 5년 연속 추경.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재정 조기 집행은 연례행사화 됐다. 2009년부터 정부는 계속해서 상반기에 돈을 더 쓰고 있다. 이유는 경기 활성화다. 나랏돈을 되도록 빨리 써 경기 회복의 마중물로 삼겠다는 것이다. 효과가 나타났을까? 수치만 보면 신통치 않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4월에 “2분기 이후 재정 조기 집행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공언했다.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지난해 분기 성장률은 1분기에 전기 대비 -0.4%에서 2분기 1%로 나아졌지만 3분기 0.4%로 다시 가라앉았다. 재정을 빨리 썼음에도 한국은행은 지난해 성장률 전망치를 4월 2.5%에서 7월에 2.2%로 내려 잡았다.  
 
쓸 돈은 정해져 있는데 곳간을 일찍 열었으니 연말에 쓸 돈은 모자랄 수밖에 없다. ’재정 조기 집행 → 연말 재정절벽’ 현상이 반복된다. 이럴 때 정부가 내미는 카드는 추경이다. 재정 조기 집행처럼 추경도 거의 매해 반복됐다. 최근에는 추경이 없던 해를 세는 게 훨씬 빠르다. 2000년 이후 2007년, 2010~2012년, 2014년 등 다섯 해만 추경이 편성되지 않았다.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는 5년 연속 추경이 편성됐다. 그나마 2016~2018년에는 3년간 세수가 목표치보다 더 걷혔는데, 올해는 ‘세수 펑크’ 가능성이 크다. 올해 하반기에도 재정 절벽이 발생할 경우, 이를 메꿀 여력도 줄어든 것이다.
조기절벽에 5년 연속 추경.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조기절벽에 5년 연속 추경.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김원식 건국대 경영경제학부 교수는 “재정 조기 집행이 상반기에 경기 하강 속도를 일시적으로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연간 성장률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기는 어렵다”며 “특히 하반기에 재원이 부족하다 보니 추경을 편성하면서 재정 지출만 늘어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조기 집행 자체에 무게를 두며 검증이 헐거워진다는 것도 문제다. 일례로 정부는 재정 집행 가속화, 균형 발전 등을 이유로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 사업 규모를 확 늘렸다. 예타 조사는 나랏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을 해도 될지 말지 따져보는 역할을 한다. 예타 조사는 줄이면서 정부는 집행률에 목을 매는 모양새다. 김갑순 동국대 경영대학 교수는 “각 부처나 공공기관에 대해 기간을 정해놓고 빨리 쓰라고 압박을 가하면 기관은 사업 계획이 부실한 상태에서 지출을 강행할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되면 예산을 낭비하고 재정 지출 효율성을 떨어뜨린다”고 지적했다. 
 
올해 재정 집행에 더욱 속도를 내는 게 4월 총선을 염두에 둔 표몰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정부는 총선 전인 올 1분기에만 전체 예산의 37%를 풀겠다고 밝혔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총선을 앞두고 경기가 좋지 않자 마음이 급한 정부가 지나치게 서둘러 나랏돈을 집행하는 모습을 보인다“며 “투자 확대, 산업 경쟁력 강화 등 꼭 필요한 곳에 나랏돈이 제대로 쓰일 수 있도록 재정 집행에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기가 어려울 때 재정을 적극적으로 써야 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각 재정 사업에 철저한 경제성 검증을 통해 효율적으로 쓰여야 경기 부양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ha.nam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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