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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드론참수 명분 묻자···美국방도 "증거 못봐" 정당성 논란

중앙일보 2020.01.13 14:18
지난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이란 군부 실세인 거셈 솔레이마니를 살해한 명분으로 내건 '미국에 대한 임박한 위협'이 실재했는가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美국방, 美대사관 공격 증거 "못 봤다"
폼페이오 "언제, 어느 대사관인지 몰라"
트럼프 "공격 계획있었다고 믿고 있다"
의회 "임박한 위협 보고받지 못했다"

176명 희생되자 솔레이마니 제거가
'임박한 위협'이었는지 논란 재점화

美, 이란에 조건없는 협상 제안
공습 정당성 확보, 외교 치적 쌓기

 
트럼프 행정부 외교·안보 최고위 관료들은 지난 주말 TV 주요 시사 프로그램에 총출동해 솔레이마니를 살해한 공습 작전의 정당성을 설파했다. 하지만 이란으로부터의 '임박한 위협'을 직접 확인했냐는 질문에는 모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앞서 지난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솔레이마니가 미국 대사관 네 곳에 대한 공격을 계획했다고 밝혔다. 참모들은 대통령 발언이 사실이라고 확인하지는 않으면서 솔레이마니 공습은 정당했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에스퍼 장관은 12일(현지시간) CBS 일요 시사프로그램 '페이스 더 네이션'에 출연해 "며칠 안에 공격이 있을 것이란 정보를 얻었다"면서 "하나 이상의 국가에서 전개되며, 이전 공격보다 더 커질 예정이어서 이란과의 공개적인 적대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스퍼 장관은 솔레이마니가 미국 대사관 4곳에 대한 공격을 계획했다는 구체적인 첩보를 접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첩보가 하나도 없었냐'는 질문에 그는 "나는 못 봤다"면서 "그들이 아마도 우리 대사관을 노릴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대통령의 견해이고 나는 그걸 공유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첩보의) 실체가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구체적인 증거를 들지 않았다"고 옹호했다.

 
 지난 8일 미 의회에서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보고를 마치고 나온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8일 미 의회에서 이란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보고를 마치고 나온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 [로이터=연합뉴스]

 
이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별도의 인터뷰에서 대사관 공격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언제, 어느 곳이 될지는 몰랐다고 답했다. 폼페이오는 "솔레이마니가 계획한 일련의 임박한 공격이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서 "정확한 시기와 위치는 모르지만 (위협은) 실재했다”고 말했다. 그러자 대이란 제재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에서 한 기자는 "장관이 생각하는 '임박한' 이란 단어의 정의가 도대체 뭐냐"고 묻기도 했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폭스뉴스에 출연, "그들이 미국인을 죽이고 미국 시설을 파괴할 길을 찾고 있다는 강력한 첩보가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미국의 "정교한 첩보 능력으로도 정확한 목표물을 알아내는 것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정황으로 봐서 이란의 미래 공격 목표가 최소 4개국의 미국 대사관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일선 부처에서는 아예 구체적인 첩보가 없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고위 관료들은 워싱턴포스트(WP)에 이라크 바그다드 미국 대사관 공격에 관한 모호한 첩보가 있었는데, 그마저도 완전히 형성된 계획은 아니었다고 전했다. 바그다드 이외 다른 지역 미 대사관에 대한 위협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 없다고 말했다. 
 
의회 보고 여부도 논란이 됐다. 의회는 이란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보고를 행정부로부터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행정부는 보고했다는 입장이다. 애덤 쉬프 하원 정보위원장은 CBS '페이스 더 네이션'에서 트럼프와 에스퍼가 "첩보를 과장하고 있다"면서 "전쟁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을 그렇게 다루는 건 위험하다"고 비판했다.
 
임박한 위협이 실재했는지 논란이 다시 불붙은 것은 이란의 미사일 오발로 여객기에 타고 있던 176명 전원이 숨진 것으로 밝혀지면서다. 당초 트럼프는 "사망자가 한 명도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솔레이마니 제거 작전이 성공했다고 자평했다. 
 

트럼프는 지난 9일 오하이오주에서 열린 2020년 첫 대선 유세에서도 이를 강조한 뒤 "그래서 우리는 (이란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여러 사람이 운이 좋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하지만 이란의 여객기 격추가 드러나자 애초 원인을 제공한 미국의 솔레이마니 제거가 정당방위에 해당하는지를 되묻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과의 협상 가능성이 커졌다는 메시지를 집중적으로 내보내고 있다. 솔레이마니 제거로 세계가 더 안전해졌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면서 모두가 원하는 이란의 정상국가화로 한 걸음 다가섰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에스퍼 장관은 '페이스 더 네이션'에서 "이란이 정상 국가가 되는 일련의 조치들,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방법에 관해 전제조건 없이 앉아 논의할 용의가 있다"고 말했다. 이란에 전제 조건 없는 협상을 제안한 것이다.
 
전날 오브라이언 보좌관은 정치전문매체 악시오스 인터뷰에서 "이란이 협상 테이블로 돌아올 가능성이 상당히 커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도 "이란은 질식당하고 있고 (협상) 테이블로 나오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미국의 솔레이마니 제거와 이란의 여객기 격추로 강경파인 군부가 큰 타격을 입으면서 온건 성향의 대미 협상파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에스퍼 장관은 이란의 여객기 격추 사실 시인 이후 발생한 반정부 시위에 대해 "이란 국민이 일어나서 자신들의 권리와 더 나은 정부, 다른 정권을 향한 열망을 주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면서 이란 내부 갈등도 부각했다.
 
2018년 이란 핵 합의(JCPOA) 탈퇴 이후 이란과 새로운 협상 기회를 모색해 온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이 성사될 경우 또 하나의 '외교 트로피'를 자랑할 수 있게 된다. 이란 내 강경파가 코너에 몰리자 이를 기회로 이란에 협상을 압박하는 이유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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