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화성서 온 의사 vs 금성서 온 환자, 샌드위치된 소방대원

중앙일보 2020.01.13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클리어(37)

 
며칠 감기 기운이 있던 아내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응급실로 향해야 했다. 집 바로 옆에 응급실이 있었지만 기왕이면 큰 데서 진료받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사진 연합뉴스]

며칠 감기 기운이 있던 아내의 상태가 심상치 않아 응급실로 향해야 했다. 집 바로 옆에 응급실이 있었지만 기왕이면 큰 데서 진료받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사진 연합뉴스]

 
갑자기 몸이 불덩이 된 아내  
#아내가 며칠간 감기 기운이 있더니 어젯밤엔 영 맥을 추질 못했다. 단순한 감기가 아닌 모양이었다. 어지간해선 아픈 티를 내지 않는 사람이다. 자꾸 괜찮다고만 하는 게 오히려 더 걱정되었다. 이마에 손을 올려보니 불덩이다. 무언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틈새로 불안이 쏟아져 들어왔다.

 
황급히 병원을 찾았지만, 밤이라 문을 연 곳이 없었다. 별수 없이 응급실로 향해야 했다. 다행히 집에서 20분 거리에 큰 응급실이 있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대학병원이었다. 덕분에 고민이 줄었다. 아내 상태가 심상치 않아 보였기에, 기왕이면 큰 데서 진료받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신고한 지 10분도 채 걸리지 않아 119가 도착했다. 내가 낸 세금이 허투루 쓰이진 않는구나. 우리가 그래도 의료시스템만큼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든든했다.
 
119는 아내를 집 바로 옆에 있는 응급실로 데려가려고 했다. 나는 얼른 그들을 말리고 나섰다. 119는 아무래도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환자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내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를 조곤조곤 설명한 후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부탁했다. 내 얘기를 듣자 소방대원은 당황한 표정을 띄웠다. 환자 상태를 간과한 게 조금은 부끄러웠던 눈치였다. 그렇다고 밤늦게 고생하는 사람들을 탓하기는 싫었다. 이렇게 이송해주는 것만 해도 충분히 감사하다고 그들을 격려해 주었다.
 
아내를 태운 구급차가 응급실로 들어섰다. “여기 응급 환자가 있습니다. 빨리 봐주세요.” 나는 큰소리로 외치며 들어섰지만, 다들 심드렁한 모습이었다.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지만, 나는 그 찝찝함을 애써 지우며 ‘아직 접수를 안 해서 그러나 보다’라고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내를 의자에 앉힌 후 원무과로 뛰어갔다. 이때 나는 깨달았어야 했다. 오늘 밤은 무척 길고 힘들 거란 것을.
 
다행히 환자는 의식이 명료하고 생체징후도 모두 정상이었다. 가까운 응급실에서 진료해도 충분하다고 판단했지만 보호자는 무작정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요구했다. [사진 연합뉴스]

다행히 환자는 의식이 명료하고 생체징후도 모두 정상이었다. 가까운 응급실에서 진료해도 충분하다고 판단했지만 보호자는 무작정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요구했다. [사진 연합뉴스]

 
스피커 통해 흘러나온 출동 지령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야!” 나도 모르게 신음을 냈다. 발목을 접질린 사실을 깜빡했다. 조금 전 출동에서 술 취한 환자를 만났었다. 그는 인사불성으로 난동을 부렸는데, 나는 그와 실랑이를 벌이다 넘어지며 발목을 접질렸다. 불과 30분 전 일이다. 다리를 절뚝이며 구급차에 올랐다. 복귀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다시 출동이다. 아무래도 오늘 밤은 조용히 지나가지 않을 모양이다.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의식이 없는 환자라고 했다. 뇌출혈? 저혈당? 뭐가 됐든 다급한 환자임이 틀림없다. 의식불명의 환자라면 주의할 게 한둘이 아니었다. 몸은 힘들었지만, 의지를 다잡았다. 취객을 상대하면서 잠시 내려놓았던 자존감을 한껏 고무시켰다. “그래, 나는 구급대원이다. 소중한 생명이 나에게 달려있다. 조금만 기다려다오.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만.” 구급차가 몇 번의 커브를 돌았다. 그때마다 속도를 못 이기고 몸이 휘청였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듯, 우리를 태운 차는 날아가고 있었다.
 
다행히 환자 상태가 심각하지는 않았다. 열은 조금 있었지만, 생체징후는 모두 정상이었다. 기운이 없는지 대답이 조금 굼떴지만, 의식상태는 명료했다. 가까운 응급실에서 진료해도 충분하다는 판단이 섰다. 하지만 보호자가 딴지를 걸었다.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르는 거 같다고 빈정거렸다. 비록 의사만큼은 아니겠지만, 나도 이 분야를 전공하고 오랜 시간 필드에서 뛰었다. 일반인에게 무시당할 수준은 아니라고 자부한다. 그래서 그의 말에 몹시 기분이 상했지만 내색할 수는 없었다.
 
보호자는 무작정 대학병원으로 이송을 요구했다. 그 요구를 들어준다면? 안 그래도 혼잡한 대학병원에 경증 환자를 하나 더 얹어 놓는다? 머지않아 나에게 닥칠 수모가 상상이 되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신이여 오늘 밤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나이까? 가까운 응급실에서 치료받자고 몇 번이나 간곡히 사정해 보았지만, 보호자는 막무가내였다. 결단의 순간이 왔다. 나는 현실과 타협했다. 요구를 묵살했다가 민원이라도 들어오면 큰일이니까. 모욕은 한순간이지만 직장은 평생이다. 가장으로서 책임감을 떠올렸다. 집에서 자고 있을 처자식 생각에 마음을 질끈 동여맸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응급실로 들어섰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응급환자라고 외치는 보호자가 밉기까지 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의사에게 환자를 인계했다. “경증 환자를 여기로 데려오면 어찌합니까? 뻔히 사정을 다 아시면서?”예상대로의 반응이었다. 보호자 요구가 강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해보았지만, 의사는 한심하다는 표정이었다.
 
“119가 무슨 무료 택시도 아니고….”의사가 돌아서며 중얼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나는 그 말을 애써 못 들은척했다. 굳이 말싸움해서 얻을 이득이 없었으니까. 빨리 잊어버리자. 차라리 처음부터 못 들은 척하는 게 마음이 편했다.
 
복귀하는 내내 가슴이 찢어지는 기분이었다. 잊고 있던 발목이 다시금 아파졌다. 왈칵 서러움이 복받쳐 눈물이 나왔다.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광고 닫기